[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고액 보수와 배당을 받는 대주주가 경영 부실을 따져 묻는 자리만 콕 집어 회피하는 건 재계의 오랜 관행이다. 올해도 대리점 물량 밀어내기 의혹을 받고 있는 남양유업의 홍원식 회장이 국정감사(국감)장에 모습을 비추지 않아 눈총을 받고 있다. 재계 안팎에선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피하려면 그룹 내 지배권력의 정점에 올라 있는 오너가 적극적으로 현안을 챙길 필요가 있단 의견이 나온다.

홍 회장은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중기위) 국감에서 증인으로 출석하기로 돼 있었다. 재환기된 갑질 문제에 대한 검증 차원에서다. 지난달 중순 추혜선 정의당 의원과 전국대리점살리기협회가 남양유업의 대리점 갑질관행 지속 의혹을 제기했다.

(사진=신민경 기자)
(사진=신민경 기자)

앞서 2013년 남양유업은 일부 대리점주에 감당이 어려울 만큼의 물품들을 떠넘겨 강매를 유도한 사실이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과 과징금 제재를 받은 바 있다. 그 뒤로도 대리점을 향한 '갑질'이 이어졌는지 여부를 두고 사측과 협회측의 주장이 맞선 것이다.

하지만 이날 국감장엔 홍 회장 대신 이광범 대표가 나왔다. 이에 대해 남양유업 측은 "홍 회장이 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 현안을 잘 모른다"며 "회사 사정에 밝은 현직 이 대표가 참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홍 회장의 국감 불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점이다. 그는 지난 2015년 9월 공정위 국감에서도 증인으로 나설 것을 통보 받았다. 밀어내기 사태 관련 증거은폐 의혹과 상생협약 위반 사실 관련해서다. 그러나 이때도 홍 회장은 불참을 알린 뒤 이원구 당시 대표이사와 감사팀장을 증인대로 세웠다.

일련의 사건들로 남양유업은 수년간 일명 '갑질기업'이란 평판을 얻어 왔다. 이 기업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소비자 불매운동은 들불처럼 번져 온·오프라인 시장까지 확대됐다. 올해엔 홍두영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이자 홍 회장의 외조카인 황하나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되며 '마약 연루 기업'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지난달 17일 추 의원과 일부 피해점주는 기자회견을 열고 "국감장에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을 부를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김대형 전국대리점살리기협회 사무국장 제공)
지난달 17일 추 의원과 일부 피해점주는 기자회견을 열고 "국감장에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을 부를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김대형 전국대리점살리기협회 사무국장 제공)

회사가 악화일로를 걷는 동안 홍 회장은 총대를 메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그는 지난 2003년 건설사로부터 거액의 리베이트를 받고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들켜 구속됐다 풀려난 뒤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공식석상에선 등장하지 않지만 홍 회장은 해마다 높은 연봉을 받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그룹에서 16억1931만원을 수령했다. 지난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지난해 매출 1조원 이상 올린 식품회사 23곳 가운데 남양유업은 전년대비 매출 하락폭이 가장 큰 기업으로 꼽혔다. 지난해 연 매출이 1조700억원 수준에 그쳐 내년도 1조 클럽 유지가 불투명하단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홍 회장은 현재 남양유업 지분의 51.68%를 쥐고 있다. 그의 부인 이운경씨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까지 합하면 오너 일가 지분이 53.85%로 과반을 넘어선다.

대주주의 연이은 국감 불출석과 "현안에 밝지 못하다"는 사유가 빈축을 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많은 지분과 연봉을 취하면서도 힘든 회사 사정을 나몰라라하고 있어서다.

이에 재계 총수의 사업체 내 역할이 보다 능동적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단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대 지분을 보유했단 이유만으로 권력을 누리는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국민의 우려와 의문 등에 적극적으로 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재환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 권력은 주주와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분점되는데 대다수 기업들이 국민으로부터 얻는 혜택에 비해 충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면서 "국감에 출석해 의견을 진술하지 않는 건 법적으론 문제가 안 된다 할지라도 사회적 책임과 도덕적 측면에선 비난 받을 여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위기에 빠진 기업의 경영을 정상화시키고 대중의 공분과 의심을 헤아리는 것도 '현대판 오너'가 해야할 일 중 하나라는 게 원 교수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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