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이 저출산과 고령화가 두드러지는 인구구조 변화 속에서 생산가능인구(15~64세) 확충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정부는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정년을 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활력대책회의를 열고 '인구구조 변화 대응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엔 고령 근로자를 정년이 지난 뒤에도 계속 고용하도록 기업에 의무를 지우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두고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항할 법적 장치론 최선책이란 목소리와 고령자에 투입되는 높은 인건비에 못 이겨 청년 고용을 마다하는 기업들이 늘 것이란 의견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법무법인 GL 강남사무소에서 만난 진형혜 한국여성변호사회 사무총장은 "정부의 정년 연장 방안은 철회돼야 한다"며 "지금이 여성 고용을 끌어올릴 적기"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57.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64.8%에 8%p 가량 못 미친다. 진 사무총장은 고용과 복지를 아우르는 정책의 부분 개선을 통해 '경력단절 포비아(공포증)'를 해소하고 더 나은 육아환경을 마련해야 한단 입장을 내놨다. 이로써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을 OECD 평균으로 상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출산을 적극 장려할 수 있단 얘기다.

<아래는 진형혜 한국여성변호사회 사무총장과의 일문일답>

Q. 최근 정부와 업계 안팎에선 '65세 정년 연장'이 화두다. 찬성과 반대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는가.

A. 정부는 정년 연장 방안을 철회해야 한다. 기업은 60세를 넘긴 이들을 '예우' 차원에서 고용하고 있으며 양질의 결과물를 바라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재계는 결국 막대한 인건비만 떠안게 될 것이다. 게다가 구직자 가운데서도 상대적 약자로 꼽히는 경단녀과 장애인은 시장 재진입이 불가능에 수렴할 확률이 높다.

진형혜 여변 사무총장(법무법인 지엘 변호사). (사진=신민경 기자)
진형혜 여변 사무총장(법무법인 지엘 변호사). (사진=신민경 기자)

Q. 돈은 돈대로 쓰면서 고용 효과는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단 말로 들린다.

A. 우리나라 기업은 임금과 복지 등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 근로자 간에 큰 차별을 두고 있다. 정규직은 근속에 따라 호봉이 오르는 데다 4대 보험 가입률과 퇴직금·상여금 적용률이 100%에 가깝다. 정규직의 정년을 수년 더 끌게 되면 민간기업으로선 자금 투입 부담이 계속해서 높아지는 반면 실질적인 생산성은 얻을 수 없단 것이다.

Q.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높일 우려가 있는 정년 연장 방안 대신 다른 효과적인 대안은 없을까.

A. 고숙련·고학력 여성들의 경제활동 재참여를 촉진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고 가능한 방안이다. 최근 출산절벽이 가팔라지고 있는 건 재취업 의지를 가진 여성을 억압하는 풍토가 직장 안팎에 퍼져 있는 데 대한 대항의 표현이다. 출산을 앞둔 직장인 여성이 '쌓아온 경력을 이어나갈지 아이 양육을 위해 그만둘지'를 고민하는 일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한다. 여성이 양육과 커리어를 '양자택일'이 아닌 '양자모두'의 문제로 다룰 수 있도록 유연한 직장환경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Q. 저출산화를 두고 직장 내 풍토만 탓하기엔 기업이 처한 상황도 딱해 보인다.

A. 맞다. 대기업 수준이 아닌 이상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은 현행 1년인 육아휴직 기간을 완전히 보장하거나 대체인력을 뽑아 공백기를 메꾸기가 쉽지 않다. 많은 통계에서 육아 휴직을 낸 여성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변심이나 개인사로 인해 복귀가 아닌 퇴사를 결정한단 사실이 입증됐다. 때문에 고용주가 상대적으로 퇴직과 휴직 확률이 낮은 남성이나, 비혼주의를 주창하는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데 대해 무작정 비난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진형혜 여변 사무총장(법무법인 지엘 변호사). (사진=신민경 기자)
진형혜 여변 사무총장(법무법인 지엘 변호사). (사진=신민경 기자)

Q. 여성 근로자가 임신과 출산 전후에 겪는 '경력단절 포비아'를 정책적으로 최소화할 방법은 없나.

A. 기업주가 나서서 경단녀의 애로를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 교육계에서 계약직 교원의 일환인 '기간제 교사' 제도를 만들었듯이 정부 차원에서 '휴직 여성 대신 투입돼 일정 기간 동안 근무하는 제도'를 마련해 인력 풀을 확보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여성은 합의된 휴직기간이 끝난 뒤 재투입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투명성을 두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최근엔 일에 얽매이지 않고 단기적으로 새로운 계획을 꾸리고자 하는 세대가 득세하고 있어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육아휴직자 공석 전용 임시직'을 새 고용 모델로 확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력이 있는 기업에 한해 '남성육아휴직 의무화'가 시행되도록 강제하는 것도 '경단녀' 양산을 줄일 방법이 된다. 종전에 권고나 선택 사항이었던 '육아휴직'에 대해 정부가 남성에게 의무적으로 적용시키는 규정을 만든다면 육아 동참효과를 높여 저출산화와 경단녀 양산을 막을 수 있다. 

Q. 개선 가능한 정책의 스펙트럼이 생각보다 더 넓은 듯하다.

A. 정책은 여성들의 고충이 어느 지점에서 출발하는지에 조명돼야 할 것이다. 출산 이후 본래 직장이나 새로운 고용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지 여부는 '여성이 양육에서 얼만큼의 부담을 느끼는가'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치열한 현실에서 겪을 갖은 부당함이 두려워 비혼과 저출산이란 결론에 도달하는 것인데, 사회에선 육아 휴직기간을 늘리는 등 조삼모사식 대안만 내놓고 있다.

Q. 여성을 둘러싼 육아환경을 어떤 방향으로 바로 잡으면 좋을까.

A. 일하는 동안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 양육시설이 양과 질 측면에서 모두 못 미친다. 어린이집 내 인력의 교육 수준과 인성 관련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 또 국·공립어린이집을 대거 확충할 필요도 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어린이집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Q. 양육 부담의 절감이 젊고 숙련된 여성노동력을 시장에 끌어들이는 원동력이 될지.

A. 그렇다. 여성고용은 전형적인 M자 형태다. 2030의 고용 분포가 가장 많고 30대 중후반과 40대 초반은 성장세가 꺾이는 변곡점이다. 여성들이 출산이나 육아로 인해 일을 완전히 손에서 놓지 않도록 기업이 일 평균 한자릿수 시간의 노동을 보장해주는 게 최적의 방법이다. 가정을 돌보는 시간에도 경력단절이 이뤄지지 않도록 기업과 정부, 여성 스스로가 힘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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