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디지털투데이 민병권 기자] 전동화 총력전. 2019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메르세데스-벤츠의 프레스 컨퍼런스 무대를 가득 채운 11대의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이하 PHEV)들은 그런 인상을 주기 충분했다. 특히 벤츠는 이번 모터쇼에서 3세대 PHEV인 GLE 350 de(디젤 PHEV)를 세계최초로 공개하고, 처음으로 앞바퀴굴림 소형차에 PHEV 기술을 접목한 A·B 클래스 등 다양한 PHEV 모델들을 선보였다.

이번에 시승한 중형 SUV GLC의 PHEV 버전도 그 중 하나다. 이 차는 낯설지 않다. 국내에서 GLC 350 e라는 이름으로 판매한지 1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벤츠의 전기차 및 관련기술 브랜드 EQ가 국내에 상륙할 때 첫 번째 주자를 맡았다. 벤츠는 EQC 같은 순수 전기차 외에 전기 하이브리드 기술을 사용한 차에는 ‘EQ파워’라는 브랜딩을 하고 있다.

시승차 차명은 GLC 300 e이다. 올해 초 GLC가 부분 변경되면서 PHEV 버전도 기술적인 업그레이드를 거쳐 새로 나왔다. 전기만으로 100km를 주행할 수 있는 GLE 350 de만큼은 아니지만 GLC 300 e 또한 벤츠의 3세대 하이브리드 기술(2009년 S 400 하이브리드가 1세대)을 품은 차다.

기존 GLC 350 e는 2.0리터 4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으로 211마력, 35.7kg·m 힘을 내고 116마력, 34.7kg·m 전기모터가 보조했다. 3.5리터 엔진 수준의 성능을 암시하는 ‘350’이라는 차명처럼 0→100km/h 가속을 5.9초에 끊을 수 있는 시원한 달리기 실력을 가졌다.

이번엔 모델명이 300으로 낮아졌으니 엔진 성능을 낮추고 효율을 높인 것이 아닐까 넘겨짚기 쉽다. 헌데, 그 반대다. 배터리 용량을 키우고 모터가 더 큰 힘을 내 더 빨리 달리고 더 멀리 가기도 한다. 신형 모델 차명이 유럽에선 GLC 300 e이지만 북미에선 GLC 350 e로 발표됐다는 점을 알면 오해가 풀릴 것 같다.

제원상 엔진(내연기관) 성능은 그대로다. 전기구동시스템을 추가하느라 일반 GLC보다 200kg 무거워졌지만 엔진 토크가 높아서 굳이 전기모터 지원을 받지 않더라도 답답하지 않게 달릴 수 있다. 신형의 전기모터는 출력이 122마력으로 높아졌고 토크는 44.9kg·m로 엔진보다도 강력해졌다. 이제 시스템 출력과 토크는 320마력, 71.4kg·m에 달한다.

350이라는 숫자에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것보단 낫지만 아무래도 300은 겸손이 지나친 것 같다. 일례로 GLC 300은 2.0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으로 245마력을 내고 0→100km/h 가속이 6.5초다. GLC 300 e는 5.7초면 된다.

GLC 350 e도 전기만으로 최대 135km/h까지 속도를 높일 수는 있었지만 전기 주행가능거리가 국내 및 미국 EPA 기준 15km로 몹시 짧게 느껴졌다. 신형은 유럽 WLTP 기준 39-43km, NEDC 기준 46-49km이다. GLE 350 de의 100km에 비할 수는 없지만 구형보단 한결 나아졌다. 시승차는 배터리가 가득 찬 상태에서 EV 주행가능거리가 33km로 표시됐고, 시내를 10km 전기로만 주행한 후 딱 23km로 떨어졌다.

전기 구동 시스템의 수비 범위가 넓어진 큰 비결은 8.7kWh였던 배터리 용량을 13.5kWh로 키운 것이다. 하지만 7단이었던 자동변속기를 9단으로 바꾸고 여기에 최적화된 전기모터와 냉각시스템, 토크컨버터, 클러치들을 넣는 등 3세대 하이브리드 기술로 업그레이드한 종합적 결과다.

배터리팩은 여전히 트렁크 바닥 아래에 있다. 배터리팩을 얹기 위해 일반 GLC보다 리어 액슬을 낮추고(지상고를 높이고) 보디 쉘을 바꿨다지만 트렁크 바닥이 높아지는 것은 막지 못했다. 뒷문을 열었을 때 트렁크 턱보다 트렁크 바닥이 더 높은, 어색한 모양이 되어버렸고 신형도 그건 어쩌지 못했다. 다행인 것은 395리터(확장 시 1445리터)로 줄어든 적재용량 외엔 일반 GLC와 비교해 감수할 불편함이 딱히 없다는 것이다.

부분변경으로 차체 앞뒤 디자인이 바뀌고 실내에 12.3인치 풀 디지털 계기판과 10.25인치 터치 디스플레이, 안드로이드 오토와 애플 카플레이 지원, MBUX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적용된 것도 PHEV 모델에 대한 만족감을 높인다. 비록 최신 벤츠들처럼 계기판과 중앙 화면이 하나로 연결되진 않아 구형 느낌은 여전하지만, 첨단 파워트레인에 크게 뒤쳐지지 않는 수준으로 보완이 된 것 같다. 일반 GLC와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은 여전히 불만으로 삼을 수 있지만 실 수요층은 오히려 이를 선호한다고 한다.

다행히 주행감도 일반 GLC와 비교해 모난 구석이 없다. 하이브리드카, PHEV는 엔진과 전기모터, 변속기, 제동장치 등이 역할을 분담하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을 일으키기 십상인데, GLC 300 e는 조화롭고 능숙하게 잘 처리해낸다. 교통량이 많은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가다 서다 반복하며 흠을 찾아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집이나 직장 근처에서 충전할 여건만 된다면(자체 충전기 용량도 3.6kW에서 7.4kW로 키웠다) 엔진과 전기 시스템 조화를 신경 쓸 기회조차 없을지 모른다. 주유소 갈 기회도 드물어질 것이다. 전기차로 빙의해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워낙 긴데다,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깊게 밟아 엔진 힘까지 사용하려는 의지를 나타내지만 않으면 엔진이 굳이 개입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로 벤츠의 3세대 PHEV 기술 특징 중 하나는 고전압 전기 시스템으로 전기 냉매 압축기와 히터 부스터를 가동하기 때문에 엔진 시동을 걸지 않아도 여름과 겨울철 실내 온도 조절이 가능한 것.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달리는 동안 꽤 빠르게 속도를 높여보기도 했지만 엔진은 끝까지 끼어들지 않았다. 가속페달이 반발력으로 엔진 개입 시점을 알려주는 햅틱 기능이 유용했다. 반대로 엔진과 전기모터를 골고루 사용할 때는 EQ 부스트 효과로 ‘350’ 이상의 빠른 추진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동력성능에 대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연료 한 방울 더 아끼고 배출가스 뿜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친환경차의 모습만 가진 것이 결코 아니다.

전기차를 타고 싶지만 인프라가 허락하지 않거나, SUV를 타고 싶지만 전기차 같은 정숙하고 매끈한 주행도 원하거나, 아낄 때는 아끼지만 달릴 때는 제대로 달리고 싶거나, GLC 300 e는 짬짜면처럼 좋은 답이 된다. 그리고 벤츠는 짬짜면 맛집이 되려 한다. 올해 말까지 10종 이상의 PHEV 모델을 갖추고 내년에는 20종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소형차부터 S-클래스까지, 해치백부터 세단, MPV, SUV까지 크기와 종류도 다양하다. 지금과 달리 벤츠 하이브리드가 흔해질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

전방 카메라 영상을 활용한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전방 카메라 영상을 활용한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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