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백연식 기자] 페이스북이 방송통신위원회가 명령한 행정처분 취소 소송 1심에서 승소한 뒤 ISP(Internet Service Provider) 및 통신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 정치권도 국내 CP(Contents Provider, 콘텐츠제공사업자)에게 역차별이라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입장이다.

18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과방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주최한 ‘페이스북 판결로 본 이용자보호제도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변재일 의원은 “박선숙 의원이 2심 법정에 국회에 발의된 법안의 입법 취지를 제출하자는 의견을 냈다”며 “공동 주최한 의원들의 의견을 모아 이날 발제와 토론 내용도 함께 제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재판부가 페이스북의 손을 든 이유는 우선, 속도 저하에 따른 페이스북의 고의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페이스북 접속 경로 변경이 이용자에게 불편을 초래한 것은 맞지만 이용 자체를 막은 적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페이스북이 기존의 접속 경로를 완전히 차단하고 새로운 접속 경로로 전부 변경한 것이 아닌 일부 접속 경로를 변경한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1심 판결에 문제점이 있다며 법률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법적인 문제점을 정리했다.

페이스북은 국내 이용자에게 왜 피해를 줬나

페이스북은 국내 통신사업자 망에 캐시서버를 설치하기 위한 국내 통신사(ISP)와 협상을 진행하던 중 무상설치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지난 2016년 12월 국내 서버로 연동됐던 SK브로드밴드 이용자의 접속경로를 해외로 임의 변경했다. 페이스북의 접속경로는 KT에만 연동이 돼 있어 결과적으로 페이스북의 라우팅 변경으로 인해 SK브로드밴드의 해외 구간 트래픽이 폭증함에 따라, SK브로드밴드 이용자의 페이스북 이용 등에 장애가 발생했다.

또한 페이스북은 2017년 2월, LG유플러스에 대해서도 무선 트래픽 전송 경로를 변경해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주게 됐다. SK브로드밴드는 해외 구간 용량을 긴급 증설해 이용자 피해에 대응하고 페이스북에 라우팅 원복을 지속 요청했으나 페이스북은 2017년 10월에 이르러서야 이를 원상 복구했다.

페이스북은 2015년 11월 SK브로드밴드에 KT와 동일한 방식으로 SK브로드밴드 IDC에 자사 서버 설치를 하겠다고 제안하면서 KT와는 달리 네트워크 이용요금을 무료로 해줄 것을 SK브로드밴드에 요구했다. 그러나 SK브로드밴드는 페이스북에게 적정요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양사간 합의가 되지 않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후 2016년 당시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상호접속료 부과 방식에 관한 상호접속에 관한 고시를 시행하면서 이 사건이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기존에는 SK브로드밴드 가입자가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며 KT 망을 이용해도 두 통신사 간에 별도의 비용 정산이 없었지만(무정산) 2016년부터 시행한 개정 상호접속 고시로 발신 통신사 쪽에서 일정한 사용료를 내도록 변경했다.

당시 페이스북의 경우 국내 통신사 중 KT만 통신망 이용료 계약을 맺고 있었는데, 상호접속 고시 개정·시행으로 오히려 KT가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게 접속료를 지급해야 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됐고, KT는 페이스북 측에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 대한 별도의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결국 접속료 계약을 맺지 않은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의 접속 경로 라우터를 페이스북이 임의로 변경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은 ‘방통위 - 페이스북 행정소송 판결의 법적 문제점 검토’ 보고서를 통해 “결국 상호접속 고시 개정에 따라 KT에 지불하는 망 이용대가가 늘어나자 페이스북이 SKB와 LGU+에 캐시서버 설치를 무료로 요구하는 과정에서 페이스북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접속 경로를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이미지=플리커)
(이미지=플리커)

법원은 왜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나

방통위는 페이스북의 접속 경로 임의변경에 따른 이용자 이익 저해 행위로 판단해 제재했다. 방통위는 지난 2018년 3월 페이스북에 대해 시정명령 받은 사실의 공표, 업무 처리절차 개선, 과징금 3억 9600만원 등을 부과하기로 의결했다. 페이스북이 이용자의 접속 속도를 떨어뜨려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렵게 한 행위에 대해 전기통신사업법상 금지행위인 이용자 이익 저해행위로 판단한 것이다. 이에 페이스북은 방통위의 제재에 불만을 품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재판부는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페이스북이 방통위를 상대로 제기한 처분취소소송에서 페이스북 주장을 받아들여 방통위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했다. 페이스북이 접속경로를 변경해 이용지연‧불편을 초래했으나, 법 위반에 해당하는 ‘이용 제한’이라고 볼 수 없고, ‘현저한 이익 저해’도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실상 페이스북의 주장 대부분을 인정했다고 보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페이스북 같은 CP(Contents Provider, 콘텐츠제공사업자)가 네트워크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 보장해야 할 의무 또는 접속 경로를 변경하거나 변경 시 ISP(Internet Service Provider, 인터넷서비스 제공사업자)와 협의를 해야할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재판부가 판단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번 판결의 핵심은 망품질 관리의 책임이 CP가 아닌 통신사에 있다고 봤다는 것에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페이스북이 접속 경로를 변경한 것에 대해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했다. 지난 2016년 1월, 정부의 상호접속기준이 개정됨에 따라 KT가 과다한 접속료를 요구했는데 페이스북은 접속 경로의 변경으로 인해 이용 자체가 어려워질 정도로 서비스 품질이 저하될 것을 사전에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즉, 페이스북의 속도 저하에 대한 고의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페이스북 스스로 자사 이용자들의 서비스 이용을 제한할 아무런 이유가 없고, CP는 자유롭게 접속경로를 변경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CP의 접속경로 변경으로 인해 접속이 지연되거나 불편을 초래되는 경우까지 이용의 제한에 해당된다고 하면, 이 사건 장점 조항의 위반 여부가 ISP의 전송용량과 다른 CP들의 트래픽 양 등 외부의 여러 요소에 의해 좌우돼 수법자의 법 집행 여부에 관한 예측 가능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게 된다”며 “SK브로드밴드나 LG유플러스가 해외 전송망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면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이용이 지연되거나 이용자 불편을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페이스북이 통신사들과의 인터넷망 접속 관련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망 사용료를 추가로 지급하지 않기 위해 접속 경로를 변경했고 이용자들에게 피해가 발생해 제재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하더라도, 추가적인 입법을 통해 명확한 제재수단을 마련하기에 앞서 전기통신사업법의 문언적·체계적 해석의 범위를 벗어나면서까지 제재 범위를 확대할 수는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페이스북의 라우팅 변경 설명도 (자료=안정상 수석위원 보고서/ 이미지 편집=백연식 기자)
페이스북의 라우팅 변경 설명도 (자료=안정상 수석위원 보고서/ 이미지 편집=백연식 기자)

법원의 1심 판결, 무엇이 문제라고 지적받나

재판부는 원고(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행위는 전기통신서비스의 이용을 지연하거나 이용에 불편을 초래한 행위에 해당할 뿐, 이용의 제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안정상 수석전문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이용 제한과 같은 개념은 개별 사안의 특성을 고려해 사법적 정의(定義)와는 다른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즉 페이스북 사건의 경우 규제기관이 입법취지를 고려해 합목적적으로 해석 가능하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건의 경우 이용 자체는 가능했지만 실질적으로 서비스 이용을 어렵게 한 행위는 ‘이용 제한’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라고 안 위원은 해석했다.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행위 역시 법원이 보는 바와 같이 단순히 접속이 지연되거나 불편이 초래된 경우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페이스북의 핵심 서비스인 동영상 및 사진 서비스 이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즉, 접속 지연으로 페이스북의 주요 기능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 본질적인 기능(동영상, 사진)이 수행되지 않았다. 접속 속도는 콘텐츠 이용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접속 속도 지연은 페이스북 이용의 포기를 유발하는 주요인이다. 따라서 이번 재판부의 판단은 SNS의 성질, 이용자의 CP 이용 특성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사실인정의 오류를 지적받을 수 있다.

최경진 가천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18일 열린 토론회에서 “법원이 페이스북 접속 경로 임의 변경을 이용 제한이 아니라 판단한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며 “법률가는 문리적 해석이 아닌 규범적 해석을 해야 하는데, 법원의 판결은 이용 제한의 범위를 지나치게 한정했다”고 설명했다.

페이스북은 망 지연에 따른 이용자 피해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페이스북은 접속경로를 스스로 설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고, 특정 접속경로를 통해 흐르는 트래픽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접속경로를 일시에 다량 변경하는 경우, 병목현상 등으로 인해 접속장애가 발생한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접속경로를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을 거친 상호접속 전문가인 이상우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은 “접속경로 변경 당시는 아니나 페이스북도 몇 시간이면 이용자 피해를 알았을 것”이라고 언급한 적 있다.

안 수석위원은 “재판부의 논리는, 예컨대 어느 택시회사가 러시아워 시간에 의도적으로 특정 한강다리로 수백 대의 택시를 운행하도록 하여 교통장애를 발생시켰으나, 교통 장애 발생 여부는 다른 차들의 통행량 등 일반적인 교통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택시회사의 책임이 없다는 논리와 동일한 의미로 비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판결문에서 법원은 국제기준을 현저성의 주요 판단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각국의 인프라 환경, 국내 상황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해석원칙 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독단적 판단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와 관련 안 수석위원은 “해외의 낮은 기준으로 국내 이용자가 겪은 접속지연이 현저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은 국내 인터넷 환경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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