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안드레아 셰프의 샌드위치는 이제까지 먹어본 것 중 최고였어요. 맛도 맛이지만 미친듯이 취했거든요."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에 '쿠킹 온 하이'란 미국 방송 프로그램이 올라 있다. 제한 시간 30분 안에 셰프 2명이 '대마'를 재료로 활용해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평가자 2명이 완성된 요리를 맛본 뒤 '더 짜릿한' 기분을 선물한 음식에 높은 점수를 주는 식이다. 이 방송의 재밋거리는 '누가 우승 트로피인 황금 냄비를 갖게 될 것인가'보다 '취한 평가자 2명이 어떤 우스꽝스러운 언행을 할 것인가'에 있다. 출연진들의 풀린 눈과 어눌한 발음이 있는 그대로 방송된다. 그래서 언뜻 봐선 프로그램의 의도가 '요리 대결'인지 '마약 장려'인지 분간이 안 간다.

넷플릭스 미국 예능방송 '쿠킹 온 하이' 캡처.
넷플릭스 미국 예능방송 '쿠킹 온 하이' 캡처.

제작자는 방송 말미에 '의료용 대마만 사용했고 현지 법을 준수했다'는 자막을 달았지만 우리나라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하다. 대마를 마약으로 분류해 판매와 구매 자체가 불가능한 나라에서 대마 사용을 부추기는 영상이 유통되는 게 말이 되냐는 지적이다.

미국의 경우 50개주 중 11개주에서 대마를 합법화했다. 반면 국내에선 대마를 단순 투약하거나 소지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밀반입하다 걸렸을 때 받는 형벌은 5년 이상의 징역이나 무기징역이다. 서로 다른 법의 잣대 아래에 있는 미국인 출연진과 한국인 시청자가 '마약'에 대한 해석을 두고 맞부딪치는 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서로 다른 法 잣대…美 11개주 '합법' vs 韓 단순 소지도 '불법'

최근 들어 해외에서 오랜 유학을 끝내고 입국한 재벌가 자제들이 '국민 정서에 반하는' 마약 범죄에 휘말리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이 미국에서 구입한 액상 대마를 국내 항공편으로 들어오려다 지난 1일 적발됐다. 앞서 지난 4월엔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손자 최영근씨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손자 정현선씨가 '대마 구입과 흡입' 혐의를 받아 긴급 체포된 바 있다.

이들의 탈선은 결국 기업 이해관계자의 피해로 이어진다. 주주가치를 낮추고 경영환경을 불안정하게 만들어서다. 마약사범이 재벌가 자손이란 이유만으로 기업 경영에 실무자로 나서게 된다면 사회적 분개 여론은 더 커질 것이다. 재벌 3세들과 마약 간의 질긴 고리를 끊어내려면 무엇이 개선돼야 하는지 직접 법조계 전문가들로부터 조언을 구했다.

송병호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한국범죄심리학회 회장)
송병호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한국범죄심리학회 회장)

 송병호 교수 "마약 수사 인력 확대-전문성 보강해야"

송병호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한국범죄심리학회 회장)는 제도의 미비가 잇단 마약 파문을 부추겼다고 보고 형벌을 강화할 것을 주장한다.

송 교수는 "버닝썬 사태로 점화된 탈법 이슈들 때문에 국민의 피로감이 커지고 규범력은 약해졌다"면서 "가진 사람들이 철저하게 수사 받는 모습이 국민에겐 일방예방 효과로 작용할 것이다"고 말했다. 일방예방 효과란 특정인에 대한 형벌을 겁주기로 사용해 잠재적 범죄자의 범죄욕구를 낮추는 것을 일컫는다.

송 교수는 "부족한 마약 수사 인력을 늘리고 전문성을 보강한 뒤 마약 사범들을 일제히 구속 조치해 연쇄 범죄나 은닉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신업 법무법인 하나 변호사. (전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
강신업 법무법인 하나 변호사. (전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

강신업 변호사 "예방-처벌-치료가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시스템 확립해야"

반면 강신업 법무법인 하나 변호사(전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는 강한 형벌이 재벌가 자제들의 탈선을 해결할 대안이 될 수는 없단 입장이다. 강 변호사는 "살인죄의 구형은 무기징역이 기본인데도 계속해서 범해지지 않느냐"면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구멍 메우기'식으로 특별법을 만들거나 예외적으로 엄격한 형벌을 적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강 변호사는 마약 투약과 중독 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을 심리 치료로 보고 있다. 그는 "마약은 인간의 약점을 파고든다"며 "종일 밥벌이에 힘쓰는 직장인들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지만 돈과 시간적 여유가 많고 삶의 동기가 강하지 않은 재벌들의 경우 마약과 도박, 성욕 등 다양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했다.

마약이 '범죄'인 동시에 '병'이기도 하단 얘기다. 이를 위해선 예방과 처벌, 치료가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사회적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는 게 강 변호사의 설명이다.

박진실 법무법인 진실 마약전담 변호사.
박진실 법무법인 진실 마약전담 변호사.

박진실 변호사 "학교 정규과정 통해 마약 위해성-중독성 숙지토록 해야"  

같은 맥락에서 박진실 법무법인 진실 마약전담 변호사는 예방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박 변호사는 "마약을 터부시하던 사회적 분위기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키웠고 결국 끔찍한 중독성을 낳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가 왜 마약을 하면 안 되는지' '마약이 우리 몸에 어떻게 안 좋은지'에 대해 학교 정규과정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마약의 위해성과 중독성을 숙지하고 스스로 절제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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