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백연식 기자] 방송통신위원회가 페이스북이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인터넷망 상호접속 제도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 지고 있다. 현재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연말까지 인터넷망 상호접속 제도(IX, Internet eXchange)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정부가 IX를 지난  2016년 1월 무정산에서 정산 시스템으로 개정한 후 CP(Contents Provider, 콘텐츠제공사업자)들은 망 비용 부담이 증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기정통부가 지난 2016년 IX를 개정한 이유는 ISP(Internet Service Provider, 인터넷서비스 제공사업자)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IX에 대해 원점부터 재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현재 상호접속 제도를 어떻게 개정하는 것이 옳을까.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2일 청문회에서 “최대한 국민 편익에 맞는 방향으로 정책을 만들겠다”며 “국내 CP 역차별을 해소하고 중소 CP의 부담을 낮추도록 하겠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 6일 오후, 광화문 우체국에서 과기정통부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IX에 대한 스터디(설명회)가 열렸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과 전자통신연구원(ETRI) 등에서 2016년부터 시행된 상호접속 고시 개정 작업을 주도했던 이상우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은 현재 상호접속 제도를 큰 틀에서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상우 위원은 “일정수준의 사업자들의 (망 이용료) 요금 인상 시도가 있었다. 요금 인상시도가 실패했지만 CP들의 부담은 존재한다. 중소사업자, SO사업자들의 부담은 완화해야 한다”며 “해외CP와 국내CP의 역차별이 불거진 상황에서, 현재 (정산 방식의) 상호접속 제도가 초기단계인데, 역차별 해소에 기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여를 못했다. 현재 상호접속제도의 긍정적인 모습을 봤을 때는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호접속고시 개정으로 망사용료가 인상됐다는 주장은 반은 틀리고 반은 맞다. 법안의 도입 취지는 (망사용료의) 경쟁 하한선을 만들기 위해서였는데, 이를 통해 하한선보다 위에 위치한 국내 CP들의 망사용료는 떨어뜨리고 아래에 있었던 해외 CP의 망사용료는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다만 법안이 이같이 작용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합리적인 사업자들이 활발한 경쟁을 펼칠 때를 가정했다”고 덧붙였다.

상호접속고시 개정으로 같은 계위(티어)간 ISP의 정산이 의무화되면서, CP들도 비용이 어느 정도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IX를 개정한 이유는 늘어난 비용이 망 이용료의 하한선으로 작용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ISP간 경쟁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경우 결국 하한선보다 적은 사용료를 지불하는 구글·페이스북 등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되고,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CP들의 사용료는 하한선 근처까지 떨어지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위원은 “ISP는 보내는 트래픽이 훨씬 많고 받는 트래픽이 적은 CP를 유치하면 할수록 한계비용(생산량을 한 단위 증가시키는데 필요한 생산비의 증가분)이 발생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인터넷 생태계의 모든 사업자들이 비용을 공평하게 부담하게 만들자는 취지였다”고 덧붙였다.

이상우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이 상호접속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백연식 기자)
이상우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이 상호접속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백연식 기자)

그동안 왜 무정산 방식이 사용됐나

ISP(통신사)는 각자 인터넷 망을 구축해 가입자들과 CP를 유치한다. 하지만 다른 인터넷 망과의 연결이 없을 경우 정보교환이 제한된다. 이 때문에 ISP들은 서로 접속계약을 맺는다. 이런 접속은 직접접속(피어링, peering)과 중계접속(트랜짓, transit)으로 구분한다. 피어링은 계약당사자간에 교환되는 트래픽 중 제3자의 망으로 전송할 의무가 부여되지 않는 계약을 말한다. 반대로 트랜짓은 서로가 교환한 트래픽을 다른 망으로 전송할 의무가 있다.

한 통신사의 망을 쓰는 CP의 트래픽은 이처럼 접속계약에 따라 여러 개의 직접·중계접속된 통신사 망을 거쳐 이용자에 전달된다. 이런 과정에서 이전의 정산을 하지 않는 접속계약은 사업자간에 요구가 맞아 떨어져 나타나게 된 것이다. 서로 오가는 트래픽의 규모가 비슷한 망끼리 상호간 정산 없이 트래픽을 교환하는 방식이다. 트래픽 교환비율이 비슷하다면 서로가 받게 되는 비용과 편익이 유사하고, 오히려 정산을 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용자가 업로드보다 다운로드를 많이 하는 ‘서버-클라이언트’ 모델이 대표적인 인터넷 사용유형으로 자리잡고, 유튜브와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등장하면서 오고가는 트래픽의 규모에 불균형이 생겼다. 이에 따라 직접접속임에도 한쪽에서 대가를 지불하는 페이드-피어링(paid-peering)이 등장했다. 대가를 지불하는 게 싫다면 중계접속으로 바꿀 수도 있지만, 피어링에 비해 이용자 입장에서는 속도 등 서비스 품질이 저하되는 문제가 생긴다.
 
이처럼 대가 지불에 대한 이슈가 생겨날 경우 ISP는 접속을 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현재로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2004년에 전 세계에서 최초로 기간통신사에게 인터넷 상호접속 의무를 부여하고, 통신사가 부당하게 인터넷망을 단절하거나 접속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과열경쟁으로 인한 폐해를 우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트래픽 정산소를 세워 통신사들이 주고받는 트래픽의 통계를 내고, 사업자간 규모를 3계위로 나눠 정확한 파악에 나서기도 했다. 같은 계위에 묶인 통신사끼리는 실제 트래픽에 기반해 직접접속과 중계접속의 트래픽을 구분한 뒤 대가를 정산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1계위(티어) 사업자인 KT와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끼리 직접 주고받는 트래픽은 무정산에서 상호정산으로 바뀌고, 2계위 사업자와 CP처럼 전용회선료를 통신사에 내던 사업자들도 트래픽 대가를 정산하도록 했다. 이것이 2016년부터 시행된 상호접속제도 내용이다. 다만, 접속의무가 생기면서 각 ISP는 접속 비용 부담을 낮출 수 있는 CP 유치에 적극 나섰고, 이 과정에서 CP가 지불하는 망이용대가도 전반적으로 감소한 것이 사실이다.
 
피어링(peering)은 직접 연결되는 만큼 폭증하는 트래픽에도 서비스 품질은 트랜짓보다 훨씬 우수하다. CP 입장에서는 고객에게 빠른 데이터 전송을 제공하기 위해 비싸더라도 트랜짓 대신 피어링을 선호한다.

이 위원은 “CP들에게 돈을 받아서 사업자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말이 있는데 CP는 보내는 트래픽이 많고 받는 트래픽이 적다. 반면, 가입자는 보내는 트래픽이 적고 받는 것이 많다”며 “KT는 CP를 유치할 수록 한계비용이 발생한다. 결국 가입자 유치 경쟁을 더 활발하게 하게된다. 유치할 때마다 KT는 접속 수익이 발생한다. KT는 CP를 유치함으로써 한계비용을 발생시켜 장기적으로 (망 이용료를) 올리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KT는 (트래픽을) 100을 보내고 SK브로드밴드가 300을 보낸다면 KT는 억울할 수 밖에 없는데 (정부의 제도로) 끊을 수는 없다. 우리는 제도적으로 접속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계위간) 무정산 방식이 개정된 이유”라고 덧붙였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경쟁을 막았다...경쟁 유발해야 역차별 없어져

2016년에 시행된 정산 방식의 상호접속 제도가 경쟁의 활성화 취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은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CP들이 어느 정도의 트래픽을 유발하고, 계약을 맺은 ISP에 망사용료를 얼마나 내는지 서로 알 수 없었다. CP와 통신사간 협상이 어려워지고 결국, 당초 상호접속 개정을 통해 의도했던 경쟁 역시 이뤄지지 않게 된 것이다.

이 위원은 “제도 도입 초기다. 제도 도입 초기에 경쟁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네이버 가 얼마나 트래픽을 유발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며 “어느 특정사업자가 얼마만큼 트래픽을 유발하고 얼마를 내는지가 공개되야 한다. 정보의 사업자간의 비대칭이 완화된다면 경쟁이 촉진될 수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경쟁을 제한하는 요소다. 방통위 등 정부가 나서서 망이용대가 관련 자료제출을 강제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고 지적했다.

현행 상호접속고시가 글로벌 표준과 상이하다는 CP 측 주장에 대해, 이 위원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해외 망사업자의 경우, 우리나라와 달리 CP를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 통신사가 대형 CP를 유치해 B 통신사로 너무 많은 트래픽이 유발될 경우, B 통신사는 A 통신사에 대한 상호접속을 끊을 수 있다. 이를 통해 ISP는 보다 우월적 입장에서 CP와의 협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2004년에 전 세계에서 최초로 기간통신사에게 인터넷 상호접속 의무를 부여하고, 통신사가 부당하게 인터넷망을 단절하거나 접속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전까지는 사업자간 계약에 따라 상호접속이 이뤄졌는데, 1위 사업자이던 KT가 후발사업자의 중계접속을 허용하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과거 무정산 방식과 달리 2016년 인터넷망 상호접속제도가 개선되면서 최소한의 경쟁 하한선이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이 위원은 “KT가 네이버에 상호접속료를 현재 1만원에서 1000원 인상해 1만1000원을 요구했다고 가정하면 네이버는 좀 더 저렴한 요금인 9000원을 제시한 SK브로드밴드를 선택하면 된다. 이에 따라 KT는 SK브로드밴드에 네이버를 뺏길 경우 그동안 받은 수익이 없어지기 때문에 1만원을 유지하거나 9000원으로 낮출 수 밖에 없다”며 “그러나 구글은 현재 내는 망이용료가 없기 때문에 통신사 입장에서는 얻을 게 없다. 하한선보다 낮은 대가 때문에 페이스북과 정산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과기정통부 통신경쟁정책과 관계자는 “(2016년 시행된 현재 상호접속제도 등) 그동안 있었던 모든 제도를 원점에서 검토하고 있다”며 “상호접속제도 관련 현재로써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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