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다가오는 명절에 쉴 사람을 뽑으려면 제비 뽑기를 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가족을 만난다면 다른 누군가는 반드시 면세점 손님을 맞아야 하는 거죠. 서로 미안한 마음을 품지 않아도 되는 휴일을 보장 받고 싶습니다."

4일 면세점과 백화점 등 대형유통사 종사자들로 구성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조합원들이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업계 종사자 건강권 보장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제도적 뒷받침을 촉구했다.

(사진=신민경 기자)
4일 오전 10시30분 국회 정론관에서 '유통업 종사자 건강권과 쉴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신민경 기자)

자신을 '면세점 판매직원'이라고 밝힌 김인숙 부루벨코리아노조 조직국장은 이날 "면세점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로 한 달에 하루도 마음 편한 휴식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서 "대기업이 관광객을 최대한으로 유치해 매출 증가에 힘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면세점의 구성원이자 주인인 노동자에게 적절한 휴식권을 보장하는 게 급선무 아니겠느냐"고 했다.

면세점과 복합쇼핑몰은 연중무휴다. 의무휴업의 제도권에 있지 않아서다. 대형마트 종사자들이 보장 받는 월 2회 휴일도 이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김 조직국장이 달마다 정기적인 휴일이 보장되도록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비스연맹 노조원들은 복합쇼핑몰과 면세점의 의무휴무일을 주 1회로 지정하고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여당은 유통업 개정안 입법을 '정기국회 10대 우선 입법과제'로 꼽은 바 있다. 하지만 소위 안건에서 조차 잇달아 누락되며 현재까지도 국회 상임위원회의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선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부위원장은 "유통환경이 복합쇼핑몰 중심으로 형성된지 오래인데 현행 유통법은 여전히 대형마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연중무휴 쉬지 못하는 복합쇼핑몰과 면세점 종사자들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보장하는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선 반드시 논의되고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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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형유통매장 정기휴점제도 입법화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이 발언 중이다. (사진=신민경 기자)

이밖에 백화점 판매직 종사자들이 건물 내 화장실과 휴게실 등의 사용에 있어서 겪는 어려움도 제기됐다. 나윤서 록시땅코리아노조 위원장은 "하루 평균 9시간 이상을 '대기자세'로 서서 근무 중인 상황인데 직원용 휴게실은 너무 먼 데다 수용 가능한 인원이 30명 정도 밖에 안 돼 직원 수백명이 가서 쉬기엔 한계가 크다"면서 "보통 바닥에 넓게 핀 박스를 깔고 앉아 쉰다"고 했다.

이어 "걸어서 30초면 갈 수 있는 화장실도 고객용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가지 못하고 계단이나 엘레베이터를 이용해 직원용 화장실을 써야만 한다"면서 "소비자가 많이 몰릴 땐 먼 화장실까지 가기엔 엄두가 안 나 참을 때가 많은데 이때문에 방광염 질환자들이 주변에 많아졌다"고 했다. 이처럼 불편함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속속 나왔지만 정작 현장에선 문제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게 나 위원장의 얘기다. 그는 "정부의 제도적 보장만이 백화점 현장 내 딱딱하고 불합리적인 관행을 녹일 수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서비스연맹 노조원들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권고'를 언급하며 정부의 응답을 요구했다. 앞서 지난 6월 24일 인권위는 전원위원회에서 산업통상자원부엔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일 적용범위 확대'를, 고용노동부엔 '선 상태의 대기자세를 유지하거나 고객용 화장실 이용을 금지하는 관행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노조원들은 "대기업들은 연중무휴로 백화점과 면세점 등을 운영하며 소비자의 주말을 책임졌지만 정작 노동자의 안위는 외면했지 않느냐"면서 "인권위의 권고가 그저 제안의 의미로만 끝나선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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