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말 재계 25위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이끌던 박삼구 회장이 자진 사퇴했다.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이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한정' 판정을 받아 한 때 주식 거래가 정지되는 등 시장에 혼란을 초래하자 책임을 지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이보다 앞서 지난 3월13일엔 권원강 교촌에프앤비 회장이 창립 28주년 기념일 행사에서 경영 퇴임을 공식 선언했다. 한 임원의 직원 폭행 영상이 공개되면서 갑질 논란에 휩싸였던 것이 주요 배경이다. 영상 속 임원은 권 회장의 6촌 동생이다.  

한국콜마 윤동한 회장도 지난달 11일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일간 갈등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정부 비난과 여성 비하 등의 내용이 담긴 친일 극우 성향 유튜브 영상을 임직원들에게 시청하도록 한 것이 문제가 됐다.

오너일가 그 뒤를 잇고 있는 2.3세 그들은 누구?(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못이겨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기업 총수들이 속출하고 있다. 예전처럼 본인의 불법이나 탈법 때문이 아니다. 부적절한 언행이나 처신, 친인척의 '잘못된 행동'이 소비자 불매운동으로 이어지면서 총수 사퇴까지 불렀다.

총수 입장에선 사퇴가 회사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셈이다. 자신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더라도 매출 악화로 회사가 휘청거리는 상황 만큼은 막고 싶었던 것이다. 일각에서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의 희생양'으로 평가하는 이유이도 하다. 

더 큰 우려는 잇단 총수들의 사퇴가 자칫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총수 부재가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고 향후 기업 경영에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다는 식의 거창한 얘기가 아니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이 명확하지 않으면 '당하는 쪽'은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사람은 본디 자신의 잘못보다 더 큰 벌을 받으면 반드시 억울함을 간직한다. 가슴에 불신을 품는다. 기업 총수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여론에 떠밀려 자리에서 물러난 총수가 '기업보국(企業報國)'의 마음을 가지긴 만무하다. 불매운동을 벌인 국민들에 대해 억하심정을 가지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그런만큼 신상필벌의 원칙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평하게 적용해야 한다. 한 집단의 우두머리라는 이유로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최고의 인성'을 요구할 수는 없다.

듣고 보기 싫은 말이나 행동이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총수에게 사퇴라는 책임을 지우는 건 안된다. 사죄로 끝날 일을 소비자들이 힘을 모아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듯한 모양새는 분명 과하다. 도덕적인 문제는 각자 기준이 다른만큼 법적인 부분보다 더욱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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