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백연식 기자] 페이스북이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페이스북이 통신사들과의 망 사용료 협상 때문에 일부러 접속 경로를 변경했더라도 현행법 내에서는 규제가 어렵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또한 망품질 관리의 책임이 CP(Contents Provider, 콘텐츠제공사업자)가 아닌 ISP(Internet Service Provider, 인터넷서비스 제공사업자)에 있다고 판결한 것이 중요하다. 페이스북을 비롯해 유튜브·넷플릭스 등 글로벌 콘텐츠 제공사업자들은 국내 통신사들에 많은 망 부담을 주면서 사용료를 제대로 내지 않아 불공평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재판부는 페이스북의 접속 변경으로 이용자들의 접속 속도가 저하됐더라도 이는 불편을 초래할 뿐 이용 자체를 제한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방통위는 처분의 근거로 페이스북의 접속 경로 변경으로 인해 인터넷 응답속도가 급격히 저하됐다는 점을 들고 있지만, 이는 처분의 적법성을 뒷받침할 객관적·실증적 근거라고 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또한 재판부는 “CP는 네트워크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 보장해야 하는 의무 또는 접속 경로를 변경하지 않거나 변경 시 미리 특정 ISP(통신사) 협의를 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며 “페이스북은 기존의 접속 경로를 완전히 차단하고 새로운 접속 경로로 전부 변경한 것이 아니라 그 중 일부의 접속 경로를 변경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방통위의 완벽한 패배다. 심지어 방통위는 이같은 재판부의 판결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무지(無知)와 방만(放漫)이다. 방통위 통신시장조사과 관계자는 “재판부의 판결을 존중한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는 승소할 것으로 생각했고 재판부에서 그렇게 판결했으므로 그에 따른 후속 처리는 곧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이미지 (사진=플리커)
페이스북 이미지 (사진=플리커)

방통위는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망 무임승차’를 주장하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국내 기업의 역차별을 막겠다는 정부 정책에 이번 판결이 장애물이 된 점은 분명하다. 구글, 넷플릭스 등 글로벌 CP들은 통신사들과의 망 사용료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물론 대법원까지 갈 사안이지만 1심 판결을 봤을 때 방통위가 재심에서 이를 뒤집을 확률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정부부처 한 관계자는 “이용자 침해 여부를 입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전 세계적으로 이를 인정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며 “방통위가 이를 입증하지 못한 것 같다. 방통위가 처음부터 약간 무리해 과징금을 부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 유민봉 자유한국당 의원은 접속 경로 변경 등으로 속도가 저하돼 전기통신서비스의 이용을 지연하거나 이용에 불편을 초래하는 행위를 제재하기 위해서는 별도로 명문의 규정을 둬야 한다며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부가통신사업자에게 망 용량 확보 등 품질 유지의 책임을 묻는 내용이다. 이미 이번 판결은 이미 예고된 결과다. 결국 법 개정을 통해 바로 잡을 수 밖에 없다. 다행히 방통위는 이런 상황이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의 금지행위 조항이 일부 미비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법 개정을 서둘러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재영 방통위 사무처장은 “이용자 보호는 인터넷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사업자가 기본으로 져야하는 책무이지만 현행법에는 기간통신사업에 금지행위 조항이 적용되도록 해석되는 부분이 있다”며 “입법 취지에 맞게 기간통신사업자나 부가통신사업자 모두 동일하게 이용자 보호 책무를 가질 수 있도록 법 개정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글로벌 CP들은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데 법에 규정된 이용자 보호 의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며 “국내 사업자는 중소기업이어도 강한 규제를 받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에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이스북의 고의성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이용자는 페이스북의 접속 경로 변경으로 서비스 이용에 피해를 입었다. 망중립성 및 망품질 이슈에서 CP 또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국내 기업이 글로벌 거대 기업에 비해 역차별을 받는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 방통위의 법 개정 추진이 늦었지만 반가운 이유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과 같지만 아예 안 고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조속히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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