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백연식 기자] 페이스북이 방송통신위원회가 명령한 행정처분 취소 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페이스북은 SK브로드밴드 및 LG유플러스 가입자를 대상으로 국내 접속 속도를 일부러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방통위가 물린 과징금 처분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핵심 쟁점은 페이스북이 고의로 접속 경로를 변경했는지, 이에 따라 이용자들의 이익이 침해됐는지 여부다.

방통위는 이용자 민원과 트래픽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페이스북이 고의로 이용자가 서비스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을 만큼 피해를 유발했고, 과징금 처분은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페이스북은 속도가 다소 느려진 것은 맞지만, 서비스를 사용할 수 없을 만큼의 수준은 아니었다고 반박해왔다. 방통위가 이용자 피해를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는 선고 직후 항소를 준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부처 한 관계자는 “이용자 침해 여부를 입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전 세계적으로 이를 인정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며 “방통위가 이를 입증하지 못한 것 같다. 방통위가 처음부터 약간 무리해 과징금을 부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2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박양준 부장판사)는 페이스북이 지난 2018년 제기한 방통위 상대 행정소송에서 페이스북에 내린 시정명령과 과징금 3억9500만원 등 모든 행정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방통위는 페이스북이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임의로 접속 경로를 변경,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고객이 피해를 입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3억9600만원 과징금을 처분한 바 있다.
 
지난 2016년 하반기, SK브로드밴드의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 이용자들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이용 장애를 겪었다. 2017년 초엔 LG유플러스 가입자가 SK브로드밴드 이용자와 비슷한 현상을 경험했다. 접속(로그인)이 잘 안되고, 사진이나 글을 올릴 때 자꾸 장애가 발생했다. 다른 이용자가 올린 콘텐츠를 볼 때도 로딩이 잘 되지 않았다. 동영상 재생 등 트래픽을 많이 유발시키는 경우는 장애가 더욱 발생했다.
 
통신사 고객센터 등에 이용자 불편 문의가 폭증하자 결국 방송통신위원회와 당시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나서게 됐다. 주무 부처인 방통위가 조사한 결과 페이스북이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가입자의 접속 경로를 홍콩으로 우회해 장애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원래 페이스북의 경우 미국에서 일본을 통과해 한국으로 연결된 접속 경로를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 페이스북의 경우 국내 통신사 중 KT만 통신망 이용료 계약을 맺었는데, 당시 미래부에서 상호접속료 부과 방식을 변경한 것도 페이스북이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가입자의 접속 경로를 홍콩으로 우회한 이유 중 하나였다.
 
기존에는 SK브로드밴드 가입자가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며 KT 망을 이용해도 두 통신사 간에 별도의 비용 정산이 없었다. 하지만 2016년부터 상호접속 고시 개정으로 발신 통신사 쪽에서 일정한 사용료를 내도록 바뀌었다. 다시 말해 오히려 KT가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게 금액을 지급해야 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페이스북은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와 통신망 이용료 협상을 벌일 수 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페이스북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접속 경로를 바꾼 것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결국 방통위는 작년 3월 페이스북에 3억96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페이스북의 행위가 전기통신사업법상 이용자 이익저해 행위 중 ‘정당한 사유 없이 전기통신서비스의 가입·이용을 제한 또는 중단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방통위의 과징금에 불복한 페이스북은 두 달 뒤인 지난해 5월 서울행정법원에 방통위의 과징금 부과 등 행정처분에 대한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당시 페이스북 관계자는 방통위의 결정에 대해 “사용자에게 가급적 최선의 서비스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이번 제재는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국내 통신사업자와 협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진=플리커
사진=플리커

페이스북에 부과된 과징금 3억9600만원은 사실 크지 않은 금액이다. 페이스북에게 타격이 가는 금액이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이 방통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 판결이 가지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방통위의 제재는 통신망 품질관리 책임이 통신사로 대표되는 ISP(Internet Service Provider, 인터넷서비스 제공사업자) 뿐 만 아니라 CP(Contents Provider, 콘텐츠제공사업자)에도 있음을 규정한 세계 첫 번째 사례이기도 하다. 만약, 페이스북이 한국에서 망 품질관리 책임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비슷한 소송을 당할 수 있다. 또한 페이스북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닌, 구글 넷플릭스 등 다른 CP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네이버나 카카오 등 국내 CP들은 자사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 위해 통신사와 계약을 맺고 연 수백억원 수준의 망 사용료를 내고 있다. 페이스북의 경우 현재 통신사들과 계약을 맺고 일정 수준의 망 사용료를 내고 있지만 구글의 경우는 전혀 내지 않고 있다. 다만, 페이스북과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는 올해 1월에 통신 망 사용료에 합의한 상황이다.
 
예전부터 통신망 품질관리는 통신사만이 부담해야 했지만 이동통신 세대가 진화하면서 데이터 트래픽의 양이 늘어나고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글로벌 거래 CP가 헤비 트래픽을 발생하면서 최근 이슈가 되는 중이다.
 
이번 사건은 2심 결과 여부에 상관 없이 대법원까지 갈 것으로 보인다. 2심에서 방통위가 패하더라도 3심까지 신청할 것이 유력하며 이는 페이스북도 마찬가지다. 방통위는 선고 직후 “재판 결과를 존중하지만 항소를 바로 준비하겠다”며 “판결문을 입수하는대로 분석해 자세한 대응방향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스북 측은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페이스북은 한국 이용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글로벌 인터넷 시장에서도 트래픽 기반 정산이 확산되고 있고, 이는 한국이 먼저 제도화한 방향과 일치한다”며 “트래픽 기반 정산은 대용량 트래픽을 발생시키면서도 망이용료 부담을 회피해온 대형 글로벌CP에 대해 의미 있는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