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유다정 기자] 보건복지부 및 정부가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화를 국내에도 도입할 입장을 밝힌 가운데, 관련 업계서는 아직 국내법 개정 시기까진 5~6년이라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며 '게임은 문화라는 관점에서 논의를 시작할 때'라고 반박에 나섰다.

21일 오후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와 문화연대가 '문화의 시선으로 게임을 논하다'라는 세미나를 강남구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엔스페이스에서 주최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

지난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WHO 총회 B위원회에서 '게임 장애(gaming disorer)'가 포함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라는 분류 체계가 있으며, 이는 통계법에 근거해 5년마다 개정한다. 다음 KCD 개정 시기는 오는 2020년이고, WHO의 ICD-11 개정안의 권고는 2022년 1월 발효이므로 게임장애 질병분류 국내 도입은 빨라야 2025년(2026년 시행)으로 예상된다. 

국내서도 국무조정실에서 합의를 위해 민관협의체를 구성했다. 그중 시민단체 위원으로 참여 중인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본 세미나에서 사회를 맡았다. 그는 "협의체 구성 자체가 (ICD-11 찬성이 많은) 정신의학계가 다수이고, 문화 쪽이라고 해봐야 저 정도"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기자에게도 "지난 7월 킥오프 회의에서는 거의 위원들 소개만 한 정도"라며 "보건복지부 등 정부 쪽에서는 거의 도입을 기정사실화한 가운데 어떤 식으로 도입할지 논의하자는 식으로 나와 제가 화가 나서 항의를 많이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동연 교수는 "아직 정식 도입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문화적 관점에서 게임을 보고 논란이 해결될 수 있는 논의가 계속되길 바란다"며 세미나를 시작했다. 

발제를 맡은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서울과학기술대학교 강사)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게임이 비생산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게임은 시간을 많이 들이게 되는데, 자본주의에서 시간은 곧 돈이다. 돈이 안 되는 비생산성은 기존 질서를 깨는 일종의 저항이라 안 좋게 보는 것"이라며, "이는 역설적으로 게임이 놀이임을 반증한다"고 말했다. 놀이는 놀이하는 자(플레이어)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자본을 (재)생산하는 행위인 노동과는 거리를 갖는다. 

박종현 국민대학교 법학과 교수
박종현 국민대학교 법학과 교수

게임이 문화라는 점이 본 논의에서 중요한 이유는 우리나라가 '문화국가'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에선 '문화의 기본적 속성인 자율성·창조성 보장을 위해 국가는 문화에 원칙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자본 등 비국가권력체계의 위협이나 외국 문화에 종속됨을 방지하거나, 국가안전보장·공공복리를 위해선 개입이 가능하나, 그마저도 직접적이고 조정적 개입은 지양해야 한다. 지난 2000년 과외교습금지사건 혹은 2004년 학교주변극장판결(학교 주변에 극장 설립을 제재하려는 시도)를 헌법재판소에서 부결시킨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박종현 국민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복지의 두 축은 청소년의 자유와 보호라는 관점에서 상충된다. 그렇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게임 문화를 규정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며 "(KCD 개정으로) 시대착오적인 규제로 실효성은 없고 문화 발전에 부담을 주는 규제가 출현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계인국 고려대학교 정부행정학부 교수, 김영진 인천대학교 법학부 교수, 이경혁 게임평론가, 강신규 문화과학 편집위원 등도 모두 결정을 내리긴 시기상조라며, 게임과 문화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계인국 교수는 "커피가 몸에 해롭다고 했다가, 이롭다고 했다가 계속 반복되고 있지 않냐"며 "커피라는 물질이 몸에 들어갔을 때 이런 부분에선 나쁜 반응을, 또 저런 부분에선 좋은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그때 그때 새롭게 나오는 '팩트'(사실)들을 발표하는 것이다. 나쁜 반응이 나올 때도 '커피는 나쁘다'라는 결론이 아니라 '나쁜 요소도 있다'라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그러면서 "독일에선 게임을 문화재로 보지만, 게임과몰입에 대해서도 얘기가 나온다"며 "게임이 어떤 요소와 결합됐을 때 과몰입을 유발하는 지 연구하고, 어떤 부분을 규제할 지 다차원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이종임 교수, 계인국 고려대학교 정부행정학부 교수, 김영진 인천대학교 법학부 교수, 이경혁 게임평론가, 강신규 문화과학 편집위원, 박종현 교수
왼쪽부터 이종임 교수, 계인국 고려대학교 정부행정학부 교수, 김영진 인천대학교 법학부 교수, 이경혁 게임평론가, 강신규 문화과학 편집위원, 박종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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