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아베 내각이 일으킨 한일 무역 분쟁은 참으로 어리석고 비이성적인 일이다. 자기발등부터 찍고 시작하는 싸움은 처음 본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 이번 전쟁의 무서움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이건 통상의 싸움인, ‘너 죽고 나살자’가 아니다. ‘나 죽을 테니 너도 죽어봐라’의 이판사판으로 벌리는 싸움이다.

이 사태가 벌어진 후 어느 분이 내게 ‘한일 무역전쟁을 보면서 무역 전문가로서 해법이 무어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다. 무역과 관계없이 정치인들이 일으킨 문제라 무역에서 해결할 방법이 없다. 정말 무역에 관한 문제라면 ‘이번 클레임은 내가 손해 볼 터이니, 다음 주문시 추가로 10% 더 넣어 달라!’는 것처럼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이 문제는 돈이 아니고, 과거의 역사 문제이면서, 정치인들이 선동하는 양 국민 간의 감정싸움으로 점점 더 에스컬레이팅되고 있다. 무역하는 당사자로서는 기가 막히고 속이 터질 일이지만, 막상 기업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환경이고, 대책을 만들어야 할 리스크 중의 하나이다. 한국은 유난히 정권 리스크가 큰 나라이다.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기업 한두 개가 사라진다. 그 와중에 새로 생기는 대기업은 거의 없다.

홍재화 필맥스 대표
홍재화 필맥스 대표

 무역인이 접할 수 있는 리스크에는 국제 정치경제 리스크가 있다. 이 리스크는 꼭 국제 무역하는 기업만 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태로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대일비난을 하고 가서 스시와 일본 술 청주를 먹었다는 여의도의 일식당이 날벼락을 맞았다. 일본 업체의 투자를 받았다는 이유로 불매운동의 대상이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기업들도 있다.

평상시라면 이해찬이 와서 먹을 정도로 좋은 식당이라는 광고 거리가 되었을 것이고, 평상시라면 외국인 투자 유치했다고 칭찬받을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비난의 대상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일상적인 무역리스크는 대금결제, 품질, 가격 등등 해당 기업들 간의 문제이고, 웬만하면 상호 타결로 끝이 난다. 하지만 국제정치로 인한 리스크는 양국가의 기업들이 대부분이 해당되지만, 실제로 기업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두들겨 맞거나 호기를 맞으며 세월이 지나가기만  기다릴 수 있을 뿐이다.

이번 아베가 벌인 한일 무역전쟁에 대하여 그나마 대응책을 만들어 두었던 곳은 삼성전자가 거의 유일한 듯 싶다. 외교부나 산자부에서는 알았는지, 몰랐는지 모르겠지만 전혀 준비되어 있던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고 어느 날 갑자기 툭하고 아베가 아무런 경고 없이 내린 조치는 아니다. 2018년 10월 30일, 대한민국 대법원은 신일본제철(신일철주금)이 강제징용 피해자 4명에게 1인당 1억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한 이후 한일 양 측의 갈등은 위기를 충분히 예측할만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일간의 경제적 갈등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예견되었지만, 서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정부의 실책으로 더욱 짙어진 어둠의 터널로 들어가고 있다. 애초부터 아베의 조치가 합리적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최소한의 이성적 제안마저도 적대시하는 감정의 골만 양국민 사이에서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당분간 확실한 것은 ‘한일 정치관계는 사라지고, 경제관계는 거래관계에 있는 기업들의 우호적 분위기와 상관없이 외생 변수 때문에 불확실해질 것이라는 점’뿐이다.

기업운영에서 최대의 적은 불확실성이다. 또한 최대의 기회는 불확실성에서 온다. 모든 것이 확실하다면 리스크도 없지만, 기회도 없기 때문이다. 발전적 리스크는 감내해야 하지만 퇴행적 리스크는 최대한 피해야 한다. 특히 한국은 대양의 시작이면서 대륙의 시작점에 위치해 있다. 주변에는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등 세계 최대 최강 국가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이제 막 핵을 완성한 불량국가 북한과도 마주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미지의 생산 가능 국가이면서 상당한 자원 보유국으로 알려져 있고, 한국에는 새로운 소비 시장이 될 가능성도 높다. 그들 국가 중에서 그나마 경제적으로 사이가 좋았던 미국, 일본과는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북한은 남한의 돈만 원하고 핵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러한 한국은 지정학적 기회와 리스크가 늘 있어왔다. 그리고 1953년 625전쟁이후 한국은 지정학적 기회를 경제적 성장으로 즐겨왔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일본이 불화수소를 들먹이고, 중국이 사드경제보복을 들먹이고, 북한이 핵을 들먹이고 있다. 반면 현 정부의 정책기조는 친 기업적이지 않아 한국 기업들이 더 큰 퇴행적 불확실성을 겪게 될까 걱정된다.

편평치 않은 글로벌 경제, 특히 서로 친하지 않은 G4가 모여 있는 동북아에서 장사하려면 늘 국제 정세의 흐름에 민감해야 한다. 무역정책은 군사정책과 더불어 국제 정치를 완성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한, 미, 일, 중, 러 그리고 북한, 어느 한곳도 서로 완전하게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국가가 없다. 동북아에서 갈등의 지도가 점점 꼬이고 빡빡해지고 있다. 이제 기업들이 생산과 마케팅도 중요하지만, 국제 정치경제 환경에서 갑자기 그리고 더 자주 날아오르는 불확실성을 머금은 리스크 관리에 이전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신경을 써야할 시점이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