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에 대해 추가 ‘수출 규제’를 단행하며, 업계 일부에서 중국이 반사이익으로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시장을 위협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추가 제재로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면서 일본에서 생산되는 1000여 개의 소재를 수입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고정밀·초미세 공정을 진행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경우에는 높은 순도의 일본 제품이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2일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추가 제재’를 의결했다. 이에 일부 언론과 업계에서는 한국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영역에서 일본의 고순도 소재를 사용하지 못하며 생산에 차질을 빚는 사이, 중국이 반사이익으로 해당 산업의 주도권을 빼앗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국내에 소재를 공급하지 않으면 국내의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일부 생산 차질이 생길 수도 있지만, 이를 통해 지배적인 시장에서의 지위를 잃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산화나 대만·중국·러시아 등을 통한 대체 지역 소재 수급으로 생산량이 일부 떨어져도 국내의 기술력이 현재 중국을 압도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영역은 지난해 4분기부터 이어진 공급 과잉과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시장 침체’로 일부 부진이 지속되고 있지만, 중국이 한국의 기술력을 따라잡기에는 아직도 긴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주도하고 있는 디스플레이 영역은 이미 중국의 위협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는 일본의 수출 규제로 국내 업체들의 생산이 주춤한 사이, 미중 무역전쟁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성장한 중국의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치고 올라올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中, 韓과의 반도체 '기술 격차' 좁히기 어려워

전문가들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D램 영역은 높은 기술력과 생산성이 요구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으로 삼분된 시장에 중국 업체가 진입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분석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 다른 대형 D램 회사가 파산하며 2011년부터 유지된 3개 회사의 독주체제는 차세대 메모리가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지속될 전망이다.

중국에서 반도체 굴기를 통해 D램 공정 개발을 진행하는 업체는 2017년 허페이 창진 루이리, JHICC, 유니그룹 등 세 곳으로 알려졌지만, 2019년 현재 상품 가치가 있는 D램을 양산하는 업체는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신한금융투자 임지용 연구원은 “장비 셋업과 설치, 시운전만 1년 이상 소요될 전망”이라며, “수율을 올리고 공정 최적점을 찾는데 최소 3년 이상 사용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업계는 중국의 기업들이 제대로 된 생산라인을 갖추더라도, 비트당 원가 차이가 커서 시장성이 없다고 분석한다.

또한 최근 D램 시장은 TSV(Through Silicon Via) 공정 기술을 이용한 HBM(High Band Width) 제품이 새로운 주류로 떠올라, 기본적인 기술력이 부족한 중국 기업들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이미지=양대규 기자)
(이미지=양대규 기자)

낸드 플래시 메모리 시장은 D램과는 차이가 있다. 전 세계 시장에서도 D램 3사 외에 웨스턴디지털, 도시바, 인텔 등 6개의 업체가 경쟁하고 있어, 진입 장벽이 D램보다는 낮은 편이다. 지난해 YMTC와 푸젠진화(JHICC), 이노트론 등의 중국 기업들이 낸드 제품 양산하겠다고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기업들의 목표만큼 적층형 낸드 양산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장기적으로 위협요소가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 정부도 반도체 굴기를 통해 YMTC에 대량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36단 양산을 목표로 중국 기업들에 투자와 인력 보강을 진행했다. 칭화유니그룹과 중국국가 IC 기금, 후베이성 지방 IC 펀드가 총 240억 달러(약 29조 원)를 YMTC에 투자해, 후배이성 우한에 3D 낸드 공장을 세웠다. 마이크론 출신 메모리 전문가 50여 명과 국내 대기업 임원 출신 전문가도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낸드 시장은 적층형 3D 낸드 기술이 대세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최근에는 SK하이닉스에서 128단의 낸드를 양산했으며, 삼성전자와 도시바-웨스턴디지털 등도 100단 이상의 제품을 양산 준비 중이다.

지난 5월 D램익스체인지는 중국에서 낸드 플래시 개발을 준비하는 YMTC가 올해 64단 3D 낸드 제품을 예정대로 양산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YMTC가 시장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는 2020년 세계 낸드 플래시 시장의 공급과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D램익스체인지는 “이미 YMTC가 초기 내수 판매에 초점을 맞춰 1분기 일부 고객사와 컨트롤러 공급업체에 샘플을 보냈다”며, “그들은 공장 건설을 마무리하고, 제한된 용량을 32단 제품에 할당했으며, 64단 제품의 대량 생산으로 확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YMTC는 128단 제품도 바로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전문가들은 D램익스체인지의 보고만큼 YMTC가 낸드 플래시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YMTC가 64단 낸드 플래시 제품 샘플을 고객에게 제공했다고 하지만, 아직 공장에서 64단 생산라인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으며, 실질적으로 3D 제품을 양산한 적이 없다는 이유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개발, 샘플 출하 등의 발표는 실제로 양산 후 시장에 판매되기 전까지 큰 의미가 없다”며, “중국의 기업이 직접적으로 64단 이상의 낸드 플래시를 시장에 내놓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의 128단 낸드플래시(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의 128단 낸드플래시(사진=SK하이닉스)

中 디스플레이 굴기 '위협적'

전문가들은 반도체 시장에서는 중국과의 ‘기술 격차’로 시장 방어가 가능하지만, 디스플레이 영역에서는 중국의 추격이 턱밑까지 쫓아왔다고 경고한다. 아직 폴더블 등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에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기술력이 압도적이지만, 대중적인 리지드(Rigid) OLED에서 중국의 기술과 생산력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의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다른 IT 산업처럼 피해를 보지 않고, 오히려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에 디스플레이 패널 회사가 없으며 ▲반도체나 통신 등 기타 기술 산업에 비해 안보 등 주요 이슈와의 상관관계가 낮기 때문으로 보인다.

업계는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하반기부터 OLED 투자와 라인 가동을 본격화할 계획으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등 주요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과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을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OLED 투자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올 하반기에 일본의 수출 규제는 국내 기업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 6월 하나금융투자 김현수 연구원은 BOE 등 중국 메이저 패널 업체들의 하반기 OLED 라인 가동률 상승 및 신규 투자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 연구원은 “하반기 양산 가동 전망되는 중국 업체들의 CAPA(생산 규모)는 약 90K/월 규모”라며, “삼성디스플레이 A3 라인(135K/월)의 2/3에 해당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신규 투자에 대해 김현수 연구원은 2019년 하반기부터 2020년 상반기에 걸쳐, BOE의 세 번째 플렉시블 OLED 팹(Fab)인 월 45K 규모의 B12, 비저녹스의 월 45K 규모의 V3를 중심으로, CSOT, Tianma 등 기타 업체들의 투자가 연쇄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파악했다.

(이미지=양대규 기자)

또한 지난달 10일 중국의 일부 IT 매체들은 애플이 일본 수출 규제의 영향으로 삼성디스플레이의 스마트폰 OLED 패널 생산이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해 BOE에 패널 공급과 관련해 문의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아이폰에 들어가는 OLED는 삼성디스플레이가 거의 독점으로 공급하고 있으며, LG디스플레이가 차세대 아이폰의 OLED 패널 생산을 위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를 단행한 품목 중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가 OLED 패널의 생산에 영향을 미친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두 제품을 공급받지 못해 OLED 패널이 생산을 못 하면, 아이폰 출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애플이 BOE에 관련 내용을 타진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아직 BOE의 제품 품질이나 생산능력이 애플의 조건에 부합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일본의 ‘추가 제재’로 다른 부품의 수급까지 어려워지면 애플은 ‘아이폰’ 생산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중국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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