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직장 내에서 공공연한 ‘왕따’다. 단지 성격이 남들보다 조금 튄다는 이유였다. 무시는 같은 팀 사수로부터 시작됐고 급기야 회사 전체로 번졌다. 한번 반발해보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건 차가운 반응 뿐이었다. 결국 A씨는 취업 1년 만에 회사를 떠났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3주가 지났다. 지난달 16일 시행에 들어간 괴롭힘 금지법은 직장 내에서 지위를 이용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막기 위해 개정된 근로기준법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사회 전분야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갑질’이 일어났다. 이는 군대문화와 유교문화, 권위주의 등이 마구잡이로 뒤엉키면서 발생한 문제로 보인다.

지난 29일 동대문구청은 직장 내 갑질 신고센터를 열었다. (사진=고정훈)
지난 29일 동대문구청은 직장 내 갑질 신고센터를 열었다. (사진=고정훈)

괴롭힘 금지법에 따르면 근로자가 10명 이상인 회사는 취업규칙(근로자가 지켜야할 임금, 근로시간 등 구체적인 근로사항을 기재하는 규칙)에 구체적으로 괴롭힘 행위나 피해자 보호조치, 재발방지 등을 명시해야만 한다. 

회사 측이 이를 시행하지 않았을 때는 과태료 500만원이 부과된다. 만약 피해자가 신고를 빌미로 불이익을 받게 되거나, 사건을 은폐할 경우 사업주는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이 내려진다.

현재 괴롭힘 금지법을 대하는 반응은 뜨겁다. 기업들은 관련 교육을 진행하거나 갑질 집중 신고 기간을 두는 등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직장인들도 가슴 속에 ‘사표’ 대신 ‘녹음기’ 하나씩을 품고 다니면서 갑질에 대비하는 중이다.

이에 갑질 신고도 늘었다. 그동안 직장 내 부조리를 제보 받았던 직장갑질119의 제보건수는 하루 평균 65건에서 법 시행 이후 110건으로 뛰었다. 제보 종류도 왕따, 성추행, 폭언, 폭행 등 다양하다.

괴롭힘 금지법에 대한 기업 반응 '적극적'...그러나 애매함은 여전

그러나 이 다양함이 '애매함'으로 돌아온다는 지적도 있다. 직접적인 폭행은 판단이 쉽지만, 폭언 등 간접적인 위해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업무 미흡으로 지적할 경우 타당한 의견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폭언과 모욕으로 느낄 수도 있다.

이에 산업 현장에선 "어떻게 법에 위배되는지 알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이어진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괴롭힘 금지법이 팀 분위기를 얼어붙게 하고 있다"며 "기준이 모호하다보니 일상 대화에서조차 할 말을 고르는 경우가 많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괴롭힘 금지법이 가진 한계에 대해서 말하는 목소리도 많다. 근로기준법은 5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다. 즉 5인 미만 사업장에 다니는 근로자는 피해를 당해도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직장 내에서 일어난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방식도 문제로 꼽힌다. 현재 중소기업에서 일어나는 갑질은 오너 또는 오너 일가가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행 법상 이 문제는 회사의 대표에게 신고해야 한다. 사실상 신고하지 말라는 의미와도 같다. 이외에도 하청업체가 원청에 문제 제기하기 어려운 점 등이 개선사항으로 꼽혔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법 개정이 시급하다. 직장갑질119 오진호 위원장은 "사업주의 갑질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하고, 관련 처벌조항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가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대문구청 직장갑질 신고센터 문성수 팀장도 "제보를 분석해 사례를 보다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며 "시간이 필요한 일"고 의견을 보탰다.

주위에 피해 사실을 적극 알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갑질을 신고할 수 있는 것도 용기다. 그럴 경우 노동청이나 노동조합에 관련 사실을 즉각 알리는게 유리하다"며 "이런 용기가 모여 사회가 보다 수평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16일 고용노동부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시행한다. 관련 내용을 유튜브를 통해 홍보 중이다. (사진=고용노동부 홈페이지)
지난달 16일 고용노동부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시행한다. 관련 내용을 유튜브를 통해 홍보 중이다. (사진=고용노동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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