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경제 문제와 연계시킨 것은 대단히 현명하지 못한 처사다. 결국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을 경고한다. 정부는 국민의 힘을 믿고 엄중한 상황을 헤쳐나갈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한국과 일본이 무역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역사 갈등을 비껴가지 못하면서 양국 경제가 어려움에 직면한 상태다. 일본의 선제 조치와 맞물려 격화한 소비자들의 반일 감정은 일본산 제품의 불매운동으로 치닫고 있다. 이 여파로 일본계 유통기업 곳곳에선 신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에 대항할 시민의 움직임으로 불매가 최선인지에 대해 학계의 시선은 두 갈래로 나뉜다.

(사진=신민경 기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가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제품 판매중지를 선언했다. (사진=신민경 기자)

지난 4일 일본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관련 핵심소재 3종의 대(對)한국 수출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우리 대법원이 과거 강제징용 피해에 있어 일본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자 우리 정부도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를 통해 "일본측 제재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국제법을 위반한 보복적 성격을 띤다"며 "WTO 제소를 비롯해 외교적 대응 방안을 적극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맞받았다.

이후 국내 소비자와 판매자는 '일본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단결했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는 지난 5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제품 판매중지를 선언했다. 이들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무역보복하는 일본을 규탄하는 의미에서 단순 불매를 넘어 판매 중단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한국마트협회 회원사 3000여곳은 영업현장에서 아사히와 기린, 삿포로 등 맥주와 마일드세븐 등 담배류 전량을 반품처리하고 발주 중단에 돌입했다. 김성민 한국마트협회장은 "전부 점포 매출을 견인하는 제품들이라 큰 손실을 감수해야할 텐데도 일본 규제에 대한 반감이 단합을 이끌어낸 듯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대표적 의류기업 유니클로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명동점과 광화문점 등 앞에서 연일 1인 시위를 펼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광주 광덕고등학교 학생 150여명이 교내 태극기관 앞에서 '일본 제품 안쓰기 운동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일본제품 정보와 대체 국산품 정보를 보기 쉽게 나열한 '노노재팬' 사이트가 생겨 주목을 받고 있다.

유니클로 전경.
유니클로 전경. (사진=신민경 기자)

"사지 않겠다"는 소비자와 "팔지 않겠다"는 상인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일본계 유통기업들은 파장이 자사 매출에까지 번지진 않을까 곤혹스러워하는 눈치다. 유니클로와 일본 본사 패스트리테일링은 최근 자사 임원이 한국의 불매 움직임을 폄하한 데 대해 지난 17일 공식 사과했다. 유니클로 측은 "앞선 발언의 취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변함 없이 소비자분들께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며 "부족한 표현으로 진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밝혔다. 앞서 오카자키 다케시 패스트리테일링 최고재무책임자는 도쿄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한국에서 벌어지는 불매운동은 매출에 영향을 줄 만큼 장기적으로 지속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 매출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최근 집계된 유니클로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30% 줄었다는 게 회사 관계자 전언이다. 편의점 내 매출 기여도가 높은 일본 맥주의 판매량도 큰 폭 하락했다. GS25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아사히와 삿포로 등 주요 일본 맥주의 판매량은 이전 10일 대비 19.4% 감소했다.

소비자들의 의식 확대가 단시간에 수치적인 성과를 냈단 점에서 이를 긍정적인 흐름으로 간주하는 견해도 많다. 원재환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와 달리 현재 기업의 책임의 범주는 고용과 투자 등 경제적인 틀에 갇혀있지 않고 국제정세나 윤리적인 측면까지 확대됐다"며 "소비자는 기업의 이해관계자 일원으로서 불매 권리를 행사하고 일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미지=픽사베이)
일본의 수출 제재에 맞서 한국 내에선 불매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애국심과 반일감정으로 무장한 소비자 불매운동이 과거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중국과 동남아 국가 등으로 확산할 공산이 크다"면서 "일본의 주력 주력 산업들도 글로벌 공급사슬에 복잡하게 얽혀있으므로 되레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일부에서는 확산하는 불매운동을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상호 경제를 위협하는 무역 갈등은 시민의 감정적인 응수가 아닌 외교적 해법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불매운동으로 세계 경제 3위의 대국과의 무역분쟁 조짐을 보다 격화시킨다면 우리 경제가 입는 손실이 막대할 것"이라며 "지난 60년간 우리나라는 일본에서 중간재를 수입해 해외에 수출하는 무역구조를 갖춰왔는데 변수가 닥친다면 재계에 성장 정체가 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도 지난 10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진행한 '일본 경제제재의 영향과 해법 긴급세미나'에서 "중국에서 한국산 불매운동이 일어나 롯데마트가 전면 철수했는데 그 결과 중국인 2만6500명이 실직했지 않느냐"며 "세계의 경제산업은 국가마다 가치사슬로 연결돼 있기에 국내 불매운동이 자국민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불매운동은 최선책보다는 최후의 방책에 가깝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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