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일명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이 16일 본격 시행된 가운데 유통기업의 서비스업과 도·소매업 종사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한 행보에 나섰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는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 우위를 악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상시 근로자가 5명 이상인 사업장이 이 법의 적용 대상이다. 회사가 피해사실을 신고한 이에게 불이익을 준 사실이 적발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16일 마트노조 이마트지부는 경북 포항시 소재 이마트 포항이동점 앞에서 갑질 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신민경 기자)
16일 마트노조 이마트지부는 경북 포항시 소재 이마트 포항이동점 앞에서 갑질 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신민경 기자)

이에 주요 대형마트의 노동조합(노조)은 그간 내부 접수된 직장 상사의 폭언과 회사 차원의 갑질 등을 고발하며 시정을 요구하는 모양새다.

유통업은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에 기반을 두며 고용규모가 큰 편이다. 또 소비자 접점이 많은 특성 상 직원들은 감정노동을 동반한다. 이런 점에서 유통업은 고용률이 가장 높은 업종임과 동시에 평균 재임기간이 최저 수준인 업종으로 꼽혀왔다. 이번 법 시행이 종사자들의 작업 환경 개선과 장기근속을 보장하는 주춧돌이 될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희망사항'을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곳은 이마트 노조다. 민주노총 산하 마트산업노조(이하 마트노조)는 이날 오후 2시 경북 포항시 소재 이마트 포항이동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세계그룹과 이마트에 사내 갑질 근절을 요구했다.

박선영 마트노조 대구경북지역본부장은 "이마트 포항이동점 관리자는 그간 계산원 조합원들에게 폭언과 반말을 일삼았고 동료 사원과 소비자 앞에서 모욕을 주거나 휴무일 외 근무를 강요하는 등 갑질을 행했다"면서 "회사는 관리자의 직무수행에 이상이 없다고 결론 지을 뿐 피해자 보호조치는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 지역본부장은 이어 "피해 직원은 점장에 이같은 사실을 전하고 인사 조치를 요청했지만 이를 안 관리자가 근무 중 직원에게 찾아와 보복했다"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명확한 분리를 주장했다.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만큼 사회적인 분위기에 응해 해당 관리자에 대한 인사조치와 피해자 보호, 적절한 사과 등을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22일 마트산업노조 롯데마트지부가 롯데마트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신민경 기자)
지난 4월 22일 마트노조 롯데마트지부가 롯데마트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신민경 기자)

홈플러스 노조도 직장 내 갑질 최소화를 위한 집단 행동을 예고했다.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서울본부는 지난달 28일 홈플러스 동대문점 앞에서 집회를 열고 사내 따돌림 등 갑질을 고발한 바 있다. 노조 관계자는 "지난달 집회를 연 동대문점과 현재 합의가 진행 중인 오산점 등 직장 갑질사례가 접수된 지점이 여럿 있다"며 "관련 법이 시행된 만큼 갑질을 행해왔던 관리자들의 향후 대처에 주목하고 만일 부당한 조처가 계속되면 기자회견을 열어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했다.

롯데마트의 경우 노조 안팎에서 부당 해고와 부당 발령 등에 대한 꾸준한 신고가 있어왔다. 지난 4월에는 마트노조 롯데마트지부가 서울 송파구 소재 롯데마트 본사 앞에서 이같은 피해사실에 대한 시정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조 관계자는 "롯데마트 빅마켓 킨텍스점에서 병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힘든 작업을 요하는 부서로 발령을 강요 받은 최송자 사원 등이 사례로 분명 남아 있다"며 "앞으로도 기자회견과 집단투쟁 등의 행보로 심리적인 피해 보전을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 근로기준법은 시행일을 기준으로 이전의 괴롭힘 사안은 처벌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같은 주요 유통기업 노조의 고발 움직임은 갑질에 대한 사회적인 여론을 환기할 목적으로 읽힌다. 오진호 직장갑질 119 총괄스태프는 디지털투데이에 "회사로서는 갑질 행위가 법의 처벌 대상에 드는지 여부를 따져야 할 것이 아니라 괴롭힘 방지를 법으로까지 규정하게 된 사회적 맥락과 취지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며 "구악습을 끊어낼 것인가에 대해 기업이 결단을 내릴 시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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