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유통업계가 공모·상장 리츠(REITs)를 통한 자금 유동화 작업에 팔을 걷어붙였다. 부동산간접투자방식 가운데 하나인 '리츠'는 증권거래소 상장을 전제로 한 일종의 부동산투자회사다. 투자자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집해 부동산을 매입·운용하며 여기에서 발생하는 임대료와 매각차익 등을 투자자들에게 배당한다. 유통업계에선 자사 알짜 매장들을 한데 모아 주식시장에 내놓는 방식으로 부동산에 묶여 있던 자금을 유동화할 계획인 듯하다.

다만 이같은 행보를 본업의 연장선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선 시각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락세인 오프라인 유통사가 리츠로 활성화한 돈을 온라인 등 신사업에 재투자할 수 있단 점에서 본업으로 봐야한단 시선이 있는가 하면, 유통과 제조가 아닌 수익성 부동산회사 신설과 운용에 몰두하는 경향은 바람직한 기업 진로가 아니란 반론이 교차한다. 

롯데쇼핑-이랜드리테일-홈플러스 등 '리츠 추진' 잰걸음

11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쇼핑이 최근 4200억원 규모의 현물출자 추진을 결정하면서 국내 리츠 시장 내 합류를 본격 알렸다. 롯데부동산투자회사인 '롯데리츠'의 설립과 운영을 통해 롯데리츠 신주를 취득하는 방식을 활용할 전망이다. 서울 강남권 노른자땅 소재 '롯데백화점 강남점' 등이 투자대상 부동산이다. 알짜 점포를 현물로 리츠에 넘기는 데엔 롯데리츠를 국내 유통업계를 대표하는 규모로 키우겠단 회사의 의지가 엿보인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롯데는 기존 국내 리츠 대비 차별적 재무 안정성과 높은 신용등급을 보유해 안정적인 배당수익률이 보장될 것이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장기적으로 볼 때 오프라인 유통업 현황은 부동산 가치의 지속 증가를 전망하기 어렵다"면서 "이를 고려해 알짜 점포의 가치가 보장돼 있는 지금 시기에 리츠 전환을 결정했으며 상장 시점은 연내가 되도록 노력 중이다"고 했다.

롯데와 이랜드, 홈플러스 등이 공모·상장 리츠를 통한 자금 유동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진=신민경 기자)
롯데와 이랜드, 홈플러스 등이 공모·상장 리츠를 통한 자금 유동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진=신민경 기자)

그간 규모가 큰 리테일 기업들은 꾸준히 상장 리츠 시장에 발을 담갔다. 지난해 6월 이랜드리테일이 NC백화점 분당야탑점과 뉴코아 일산·평촌점 등 매장 5곳을 한데 묶은 리츠를 상장해 800억원 수준의 자금을 확보한 바 있다. 해당 점포들은 사모펀드 '이리츠코크렙'이 보유 중이었으나 이 펀드가 공모형으로 바뀌면서 상장이 추진됐다. 고정 임대수익에 기반을 둔 이리츠코크렙의 배당수익률은 7% 내외다. 그리고 홈플러스의 경우 대주주 MBK파트너스가 지난해부터 매장 51곳을 기초자산으로 한 '홈플러스 리츠'의 상장을 추진한 바 있지만, 지난 3월 중순께 이를 자진 철회했다. 애초 조 단위의 자금을 공모리츠로 조달 예정이었으나 지난 수요 예측에서 공모액이 종전 계획의 절반에 그쳐서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현재 업황을 지켜보며 꾸준히 자산 재조정 중이다"면서 "추후 재상장 추진을 위해 노력 중이다"고 했다.

롯데와 함께 대형마트 양대산맥으로 간주되는 신세계도 실적 부진 점포 위주로 리츠를 활용할 예정이다. 신세계는 건물에 대한 직접 소유 비중이 높다. 백화점 25%, 이마트 83%, 트레이더스 86% 수준이다. 때문에 롯데가 자산 효율화에 집중한 것과 달리 신세계는 자산 매각을 목표로 리츠에 접근할 계획인 듯하다. 정용진 부회장이 그룹 내 중장기 성장동력을 온라인 사업부문으로 잡았단 점에서 부실 부동산의 매각에 주력해 오프라인 수익성을 개선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나 아직 구체화된 것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업계, '환금성' 높은 공모리츠 통해 자산 유동화 가능...투자자도 원금 손실 최소화

유통업계를 관통하는 이러한 경향은 리츠가 기업에 부여하는 많은 이점들과 연결된다. 먼저 높은 환금성(현금 확보)이 주요하게 언급된다. 온라인구매가 득세하는 환경에서 성장 정체를 겪고 있는 대형 오프라인 유통사들은 자산 매각을 통해 점포 효율화와 현금 확보를 꾀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일부 고액 자산가에 점포 지분 대부분을 맡기면 매장 직원들이 불안정을 느낄 수 있으므로, 공모리츠로써 개인투자자 다수가 점포를 소유하는 게 회사 입장에서도 안전하다. 또 금융기관을 통해 자금을 차입하면 부채비율 증가 등 부정적 요인을 감안해야 하는데 리츠는 보유 자산을 활용하므로 기업 신용 강등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 (사진=신민경 기자)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 (사진=신민경 기자)

투자자 관점에서도 긍정적이다. 투자자들은 리츠를 통해 간접적으로 실물자산인 부동산에 투자하므로 물가상승에 따른 가치 하락을 최소화할 수 있다. 설령 자산가치가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보유부동산 처분을 통해 원금 손실을 회피할 수 있다. 개인 투자자가 소규모 자금으로도 대형 유통사 부동산의 지분을 소유할 기회로도 작용한다. 상장 리츠란 점에서 투자자 역시 필요한 경우 갖고 있는 주식을 팔아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단 장점이 있다.

"성장보단 배당 안정성 집중"...유통업계의 과한 부동산 관심은 '외도'란 지적도

업계가 리츠로 자산을 유동화하고 이를 온라인 등 신사업에 재투자할 것이란 점에서 이같은 행보를 본업의 연장선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심형석 미국 사우스웨스턴캘리포니아대학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노후대비를 원하는 투자자에게 주기적 배당소득을 제공하며 투기위험이 적은 리츠상품은 매력적"이라며 "기업 입장에선 같은 용도로 팔아야 하니 매장 구조조정이 어려웠는데 투자자 다수에게 점포 지분을 쪼개 제공할 수 있어 긍정적이다"이라고 했다. 이어 심 교수는 "고정 자산을 유동화해 보다 전망이 밝은 사업분야에 투자,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려는 것이므로 본업으로 봐야 마땅하다"며 "리테일과 관련해서 소규모 간접투자시장은 더 확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본업에 해당하는 제조와 유통을 제쳐두고 부동산투자회사 설립과 상장에 주력하는 업계 동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리츠는 발생 수익 대부분을 투자자에게 배당하므로 점포의 성장과 개발보다 배당의 안정성이 중시되는 경향이 짙다. 때문에 투자자의 재투자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는 한, 사내 유보(기업 순이익에서 세금과 배당금, 임원 상여 등을 제한 금액)를 통한 성장은 제한적이다. 리츠를 통하면 자산 유동화는 가속화하겠지만 개별 점포의 전망은 전보다 지지부진해질 것이란 얘기다. 김진 한남대 도시부동산학과 교수(한국부동산연구원 연구위원)은 "업계가 스스로도 리테일의 전망을 비관함에 따라 매장 정리를 추진하는 듯하다"면서도 "현금보유량이 많은 롯데 등 유통 대기업들이 굳이 리츠를 활용해 자산 매각과 유동화를 적극적으로 꾀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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