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백연식 기자]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 SK텔레콤의 자회사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합병 추진 등으로 국내 유료 방송·미디어 업계는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등 신사업의 성장에 대항하기 위한 방편으로 인수합병(M&A)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이는 국내 뿐 만 아니라 해외도 마찬가지다. M&A를 통한 시장 및 콘텐츠 확보 등의 기대가 있는 한편, M&A로 인해 공공성 및 지역성 후퇴의 우려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공공성 및 지역성은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나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합병의 규제 당국 심사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KCA(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의 ‘글로벌 방송·미디어 M&A 동향 : 공공성 및 지역성 이슈를 중심으로’ 보고서와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2014~2018년 방송·미디어 기업 간에 체결된 M&A 건수는 1492건, 이에 따른 거래 금액은 총 5674억 달러다. 전 세계적으로 방송·미디어 기업 간의 M&A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방송·미디어 업계의 M&A 활성화는 OTT 및 IPTV 등 새로운 플랫폼의 성장과 기존 방송 시장의 침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지상파, 케이블 TV 등 기존 유료방송의 파급력이 감소하면서 수익 감소가 우려되는 가운데, M&A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 및 배급하는 방식으로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통신사 또한 방송·미디어 업계의 M&A에 발을 들이는 추세이다. 즉, 통신 기업은 과거보다 파급력이 감소했지만, 여전히 상당한 가입자 수를 보유한 케이블 TV 업체를 인수∙합병해 이용자를 추가 확보한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또한, 미디어와 통신사 간의 M&A도 활발하다. 방송 통신의 융합과 더불어 통신 시장 포화에 따라 새로운 수익 창구가 필요한 통신 업계가 미디어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Deloitte에 따르면 2013년 1월부터 2018년 8월 동안 미국에서 성사된 미디어와 통신 M&A 거래 건 수 중 통신 기업 간 M&A 건수가 15.9%, 케이블 TV 기업 간 M&A 건수가 14.0%로 동종업계 간 M&A가 가장 활발했으나, 통신과 영화 기업 간 M&A가 6.9%, 통신과 케이블 TV 기업 간 M&A가 5.1%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하지만, 방송·미디어 업계의 M&A가 시장에 긍정적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M&A로 인해 거대기업(통신사)이 시장을 장악하면 서비스 요금이 인상돼 소비자 부담을 가중할 수 있고, 불공정거래가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나아가 인수기업이 지역 채널일 경우, 지역 채널이 지닌 콘텐츠의 고유성이 후퇴할 수도 있다. 방송·미디어 업계의 글로벌 M&A의 부작용, 특히 공공성 침해 및 지역성 후퇴 우려로 M&A가 지연되거나 무산된 사례를 정리했다. M&A로 인해 방송의 공공성 및 지역성, 다양성 등이 훼손될 수 있으며 그 피해가 다수공중에게 돌아갈 수 있다. 시장의 독과점이 형성될 경우 어떻게 공공성을 구현할 것이며, 글로벌 기업 등장에 따른 지역 가치와 지역성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이미지=KCA
이미지=KCA

M&A에 대한 공공성 우려-미국의 사례

방송·미디어 업계의 글로벌 M&A에 대한 첫 번째 우려는 공공성 침해 가능성이다. 기업 간 M&A를 통해 시장 독과점이 형성되고, 이에 따른 시장 불공정 행위 증가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국가에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다 부처 승인 절차 및 M&A 승인 거부권 등의 대비책을 마련해 놓았다.

2018년 미국의 TV 방송국 사업자 넥스스타미디어(Nexstar)는 트리뷴미디어(Tribune Media)의 지역방송국 인수를 시도하였다. 인수가 성사될 경우, 넥스스타미디어는 200개 이 상의 방송국을 소유하고, 미국 내 시청 가구 점유율의 39% 이상을 차지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미 연방통신위원회는 한 기업의 시청가구 점유율을 최대 39%까지만 허용하고 있다. 이에 미 연방통신위원회와 미 법무부는 독과점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해, 넥스스타미디어가 보유 한 방송국 일부를 매각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넥스스타미디어그룹은 미 연방통신위원회와 미 법무부의 인수 승인 조건에 따라 15개 시장에서 지역 방송국 19곳을 매각했다. 넥스스타미디 어가 자사의 지역 방송국을 매각하면서까지 트리뷴미디어 방송국을 확보하려 한 이유는 미국 내 사업 지역을 확장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넥스스타미디어의 주 사업 지역은 미국 텍사스였 기 때문에, 사업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뉴욕, LA 등 인구 및 인프라가 집중된 지역에서 사 업을 전개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뉴욕, LA, 시카고 등 대도시에 위치한 트리뷴미디어 지역 방송국을 인수하여 미국 주요 도시에서 사업 기반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미 연방통신위원회 와 미 법무부의 승인에 따라, 2018년 12월 넥스스타미디어는 트리뷴미디어가 보유한 방송국 42곳을 41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공공성에 대한 프랑스 사례 및 이탈리아 사례, 시장 독점 저지 위해 규제 사항 제시...무산된 경우도 있어
 
2014년, 프랑스 케이블 사업자 뉘메리카블(Numericable)은 자국의 미디어 기업 SFR과 인수 계약을 체결해 고속 데이터통신망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했다. 인수 심사 과정에서 프랑스 경쟁당국 (French Competition Authority)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인수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뉘메리카블이 SFR을 인수한 후 광섬유 네트워크 구축 사업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과 프랑스 일부 지역에서의 인터넷 통신 시장 독점 우려 때문이었다.

프랑스 경쟁당국은 뉘메리카블의 시장 독점을 저지하기 위해 인수 승인 조건으로 몇 가지 규제 사항을 제시했다. 우선, 경쟁사가 기존 SFR의 광섬유 네트워크 사업 지역에서 광섬유 네트워크를 구축해도 이를 저지할 수 없도록 규제한 것이다. 또한 레위니옹과 마요트섬 등 프랑스 일부 지역에서의 인터넷 통신 시장 독점을 저지하기 위해 뉘메리카블로 하여금 경쟁사에 고속 케이블 네트워크를 개방하고, 자회사의 해당 지역 사업 일부를 매각하라는 규제 방침을 발표했다. 결국, 뉘메리카블은 광섬유네트워크와 소속 케이블 네크워크를 타 사업자들에게 일부 매각하는 조치를 취했고, 2014년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이탈리아의 미디어 기업 스카이 이탈리아(Sky Italia)와 메디아세트(Mediaset) 간의 M&A는 공공성 문제로 무산됐다. 2019년 3월에 이탈리아 공정거래위원회(AGCM)는 위성 방송사 스카이 이탈리아가 메디아세트 방송사의 유료 방송 사업인 R2를 인수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스카이 이탈리아가 R2 인수 시, 이탈리아 미디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2017년 이탈리아 통신규제위원회(AgCom)의 발표에 따르면 이탈리아 유료 방송 시장에서 스카이 이탈리아의 점유율은 무려 77%에 달했고, 여기에 메디아세트의 점유율 21%가 합쳐진다면 100%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었다. M&A 체결에 따른 스카이 이탈리아의 유료 TV 시장 독점 가능성이 높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하에, 결국 양사는 계획을 철회했다.

이미지=KCA
이미지=KCA

지역성 후퇴 문제-채널 제공의 획일화 이뤄져, 미국의 사례는

방송·미디어 기업 간 M&A는 지역성 후퇴를 가져올 수도 있다. 지역 시청자의 특성에 맞는 콘 텐츠를 제공하는 지역 기반 케이블 방송이 거대 미디어 기업에 인수 또는 합병된다면, 채널 제공의 획일화가 이루어지는 대신 방송의 지역성이 후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M&A 규제 기관에서는 지역성을 보장하는 승인조건을 제시해 기존 지역 시장에 활발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글로벌 M&A로 인해 해외 기업이 자국 시장에 침투하여 지역성이 후퇴할 수 있다는 비난을 받은 사례로는 2018년 7월, 미국 케이블 네트워크 기업 컴캐스트(Comcast)의 영국 유료 방송사 스카이(Sky) 인수를 들 수 있다. 컴캐스트가 유럽 진출을 추진한 데에는 자국 유료 케이블 TV 산업이 이미 포화상태였기 때문이다. 미디어 조사 기관 Dataxis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1분기 미국 내 유료 TV 구독자 수는 2016년 4분기보다 61만 2000명이 감소한 1억3000만 명이었으며, 컴캐스트의 시장 점유율은 22.7%로 AT&T(25.3%)에 이어 전체 2위였다.

치열한 시장 경쟁에도 불구하고 전체 시장 구독자 수가 감소하자, 컴캐스트는 또 다른 수익 창구 개발을 위해 유럽 전역에서 약 2700만 명이 가입한 스카이를 인수하여 사업을 확장하려 한 것이다. 스카이는 유럽지역 유료 TV 시장에서 최대 가입자 수를 보유한 기업으로, 유럽 TV 프로그램의 다양성 증진을 위해 매년 약 80억 달러를 투자하여 아일랜드 TV 프로그램 Riviera, 독일 TV 프로그램 8 Days 등 자체 제작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었다.

M&A는 2018년 7월에 착수하였으나, 미국 기업의 유럽 유료 TV 시장 장악에 따른 지역성 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등 미국 기업이 전세계 방송 플랫폼 시장을 선도하는 가운데 스카이마저 미국 기업에 인수당하면, 미국 기업이 유럽을 포함한 전세계 플랫폼 시장을 독점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컴캐스트는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작해 유럽 본연의 방송 콘텐츠를 유지함과 동시에 비(非)영어 콘텐츠의 다양성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비영어권 국가 중 특히 독일을 염두에 둔 결정으로 보인다. 독일 인구는 약 8300만 명으로 러시아를 제외하면 유럽 최대 인구를 자랑하지만, 스카이 가입자 수는 520만 명 수준으로, 독일 등 시장 잠재력이 높은 유럽 국가에서 더 많은 가입자 수를 확보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던 결정이었다.

또한, 기존에 스카이가 진출한 국가(영국, 아일랜드,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외의 유럽 지역으로도 사업을 확장해 유럽 전역에 유료 TV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등 인수 후 나타날 지역성 후퇴 우려를 잠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컴캐스트는 M&A 경쟁자였던 폭스(Fox)를 제치고 인수 계약 체결에 성공했다. 아직까지 컴캐스트는 기존의 유럽 방송 콘텐츠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다양성 유지 및 지역성 후퇴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LG유플러스와 CJ헬로 인수합병 설이 나오면서 통신-방송 융합이 주목 받고 있다. KT(스카이라이프) 등과 연계된 합산규제 일몰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된다.

지역성 우려에 대한 북유럽과 스페인 및 네덜란드 사례...알뜰폰 매각 조건 내걸어

2014년 12월 북유럽 통신기업 텔레노어(Telenor)와 텔리아소네라(TeliaSonera)는 덴마크 시장에 합작회사를 설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텔레노어는 당시 덴마크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한 노르웨이 통신기업이었다. 한편, 텔리아소네라는 스웨덴 통신기업 텔리아(Telia)와 핀란드 기업 소네라(Sonera)가 설립한 다국적 합병법인으로, 당시 덴마크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 3위를 기록하던 기업이었다.

북유럽 통신 시장을 주름잡는 두 기업의 합작기업 설립은 덴마크 현지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2015년, 두 기업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산하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합병 승인 불허를 통보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합병 승인 거부 이유는 통신요금 인상 가능성, 이에 따른 고객의 이동통신서비스 선택권 축소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덴마크 통신 시장에서 각각 2위와 3위의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합작 회사를 설립할 경우, 현지 통신 기업의 지역 시장 경쟁력과 다양성이 감소할 것을 우려한 결과였다.

2014년 스페인 이동통신사 텔레포니카(Telefonica)는 네덜란드 이동통신사 KPN으로부터 독일 이동통신사 에플루스(E-Plus)를 인수했다. 당시 에플루스는 독일 내에서 2400만명, 텔레포니카는 19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하며, 독일 이동통신 시장에서 3, 4위의 시장 규모를 차지하고 있었다.

독일과 유럽연합(EU)의 규제 당국은 독일 기업의 경쟁력 감소와 지역 시장 후퇴를 우려해 텔레포니카 측에 이동통신망 30%와 주파수 일부를 신규 업체 및 경쟁 업체인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 알뜰폰)에 매각해야 한다는 승인 조건을 걸었다. 이에 동의한 텔레포니카는 2014년 7월 에플루스와 인수 계약을 체결했지만, 인수 직후 총가입자 수가 독일의 1위 이동통신사 T모바일을 제쳐 최대 사업체로 발돋움하게 되면서 결국 독일 이동통신 시장의 지역성이 후퇴했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