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지난 27일엔 종일 여름비가 내렸다. 비오는 날만큼 커피 생각이 절실해지는 때도 없다. 더구나 이날은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이었다. '앞으로 나흘 더 고생해야 한다는 데'란 생각이 미치자 기자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정나미가 떨어졌다. 만일 주파수가 삶을 이끄는 주된 요소라고 한다면 이 시기는 '지지직 하는 잡음' 정도에 지나지 않을 듯했다. 날씨 탓인지 요일 탓인지, 아니면 조울기질이 도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어수선했다. 라디오 전파를 탄 운명적인 노래와 위로 몇 마디가 이 우울한 기분을 풀어줬으면 했다.

오후 5시께 비를 피해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자리 잡은 '모카라디오'에 들렀다. 이달 24일 첫 개장한 새 건물이다. 동서식품은 해마다 맥심 모카골드 제품을 활용해 이색 팝업카페를 개장하는데 올해 매장은 라디오를 주제로 꾸며졌다.

(사진=신민경 기자)
서울 마포구 합정동 소재 팝업카페 모카라디오. (사진=신민경 기자)

모카라디오 건물은 한적한 동네에 홀로 우뚝 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다. 건물의 색감은 오로지 노란색과 흰색으로 이뤄져 있어 따스하고 감성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1층 카페룸 안으로 들어서니 진행요원 3명이 주문대에 서 있다. 주문대도 노란색 오디오 스피커를 테트리스처럼 조합한 듯한 모습이어서 보는 재미가 있다. 메뉴판엔 맥심의 '모카골드 마일드'와 '모카골드 라이트', '모카골드 심플라떼' 총 3개가 적혀 있는데 기자는 모카골드 심플라떼를 주문했다. 무료라 몇잔을 마시든 값을 내지 않아도 된다. 

주문과 거의 동시에 모카골드 심플라떼 한 잔과 사연 신청서 한 장을 받아 들었다. 커피맛은 의외였다. 달큰한 맛을 기대했지만 되레 단맛이 가려지고 고소함이 강하게 느껴졌다. 같이 받은 과자 '리츠'와 '오레오 웨하스 스틱'과 함께 먹으니 합이 잘 맞는 듯했다. 소비자들이 무슨 커피를 가장 많이 찾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요원은 "익숙한 맛인 마일드와 라이트보다는 고소한 풍미가 진한 심플라떼를 압도적으로 많이 주문했다"고 답했다.

커피를 마시며 사연 신청서에 짧은 고민과 신청곡을 적었다. 기자는 "예전에 아무 걱정 없이 연극·영화 보러 다녔는데 취직하고 그 횟수와 시간이 크게 줄었어요. 다시 취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된다면 좋겠어요"라고 적고 신청곡으론 '크라잉넛-순이 우주로'를 썼다. 무심코 속마음을 적었는데 다 쓴 글을 보니 고민은 아닌 것 같다. 양자택일, 혹은 취사선택의 문제를 DJ한테 주고 하나를 골라달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창피했지만 설마 바로 읽힐까 싶어 그대로 냈다.

그리고 카페룸을 벗어나 바로 맞은편 방인 '라디오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안지예 DJ가 마침 내 사연을 읽고 있었다. 안 DJ는 "잠을 줄이고 영화와 연극 보세요. 그리고 꾸벅꾸벅 졸면서 회사에서 혼나는 거죠. 그러면서 평범한 회사생활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는 걸 깨닫고 자제하게 되실거예요."라는 대답을 해주었다. 우문현답이었다. 막상 직접 쓴 사연이 현장에서 읽히고 공유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안절부절 못하는 날 보고 사연의 주인공이라는 걸 알아차린 안 DJ는 내 눈을 보면서 엄지를 들어보였다. 그간 라디오에 보낸 수많은 문자를 보냈지만 한개도 읽히지 않았는데 오늘 비로소 소원 성취했다. 개장한지 나흘째 되는 날인 데다 날씨 때문인지 현장은 한적했는데 실내에 청취자 수십명이 함께했더라면 더 실감나고 흥미로웠을 듯 싶다.

(사진=신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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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커피를 주문했던 카페룸으로 들어가 '포토마통'이란 사진 부스(즉석 사진기)로 다가갔다. SNS 사진 인증 행사에 참여해서 받은 믹스 머그를 들고 라디오 디제이(DJ)처럼 사진을 찍은 뒤 사진을 출력 받았다. 일평생 '셀카(자신의 얼굴을 스스로 찍은 사진)'도 두어장 찍을까 말까한 기자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열심히 머그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맥심 머그와 단 둘이(?) 찍은 즉석사진을 손에 넣고 자신감이 붙은 기자는 2층으로 올라가 '뮤직룸'으로 향했다. 2층 입구쪽 한 요원이 '직접 광고 문구를 녹음해 모카골드 라디오 광고를 만들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평소 같았으면 '말도 잘 못하는데 무슨 목소리 연기냐'며 일언지하에 거절했겠지만 요긴한 기삿거리가 될 것 같아 수긍했다. '소비자 체험'을 위해 '체면'을 포기했으니 '기자 정신'의 안부를 물을 정도는 해낸 셈이다. 기자는 '저는 입맛이 아이 같은데 직장 동료들은 다들 아메리카노만 시켜요. 모든 카페메뉴에 모카골드 커피가 생겼으면 좋겠어요.'라고 직접 광고 문구를 만들어 두 번에 걸쳐 녹음했다. 이 문구 앞과 뒤에는 각각 '모카 골드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는 순간들'이란 인트로와 '당신은 언제인가요? 커피이즈골드, 맥심모카골드'의 엔딩 문구가 더해진다. 녹음 시엔 주변 소리를 차단해야 하기 때문에 문을 닫고 진행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됐다. 또 지도 요원이 녹음 방법을 친절히 안내해 큰 어려움 없이 끝냈다. 직접 목소리 연기를 선뵈고 자리에서 녹음본을 들으니 '내 목소리가 가진 매력'을 온전히 체감할 수 있었다. 녹음 체험에 참여하니 머그 한 잔을 또 선물로 받았다.

(사진=신민경 기자)
(사진=신민경 기자)

이어선 CDP(시디 플레이어)를 이용하기 위해 1인 책상 형식으로 이어진 테이블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았다. 책상 한 개마다 한 개의 CDP가 구비돼 있었다. 재생 버튼을 누르니 곧바로 루마니아 연주가 게오르그 잠피르(Gheorghe Zamfir)의 곡 외로운 양치기(Einsamer Hirte)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책상 한 편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대여섯권이 놓여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번 매장 내부 인테리어나 운영 책임자가 하루키의 대단한 팬인 것 같았다. 개중에서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란 책을 집어 아무 페이지나 펼쳤다. 

'바다 수영의 즐거움은 조금만 먼 바다로 나가도 아무도 없다는 데 있다. 수영장은 복닥거리고 옆 레인에서 경쟁을 걸어오기도 해서 성가시지만 바다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제 나름의 페이스로 느긋하게 마음 내키는 대로 헤엄칠 수 있다. 피곤하면 누워서 하늘을 봐도 된다. 갈매기가 가로지르고 하얀 여름 구름이 떠 있는.'

무심코 읽은 대목이지만 공감이 갔다. '수영장'엔 거리에 즐비한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을, '바다 수영'엔 모카라디오를 투영해 봤다. 모카라디오는 날마다 이른바 '지옥철'에 지친 몸을 싣는 직장인들에게 고요하고 따스한 위로를 선사하는 공간이다. 치열한 인간관계 정립과 업무 강도 속에서 숨 쉴 구멍을 마련해 준다. 그리고 여기서 몇 발짝 걸어 나가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끌시끌한 일상이 있다. 초록색 인어와 빨간색 왕관, 심지어는 파란 병으로 대표되는 카페에서 느끼는 감정은 여기서만큼 인간적이지 않다. 음악과 커피가 가득한 모카라디오에서만큼은 마음 속에 묻어뒀던 짐을 내려놔도 된다. 이곳은 오는 7월 17일까지 열린다. 적어도 약 두 달 동안은 우리에게 '돌아올 곳'이 생긴 셈이다.

관계자 말로는 지난 26일 일요일엔 하루 방문자수가 1000명을 웃돌았다고 한다. 기다림 없이 둘러보며 조용히 커피를 마시거나 사연을 신청해 노래를 들어보고자 한다면 평일 전 시간대 방문을, 북적이는 분위기에서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면 주말 방문을 권한다. 1층 카페룸에선 비교적 착한 가격대에 아이스 스텐 텀블러와 에코백, 틴케이스, 메시지 연필세트, 티셔츠, 오디오 등 맥심 기념품도 판매하고 있다. 3층엔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루프탑도 마련돼 있다.

(사진=신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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