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백연식 기자] 영국이 5G 네트워크를 구축할 때 중국의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 제품을 배제하지 않기로 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미 무역 전쟁 여파 등으로 화웨이 장비 사용 배제 등 압박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주요 동맹국을 대상으로 화웨이 5G 장비 사용을 배제해달라고 요청하는 가운데, 최근 유럽연합(EU)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 있다. 네트워크는 크게 유선망인 코어 네트워크(Core network)와 무선망인 액세스 네트워크(Access network)로 나뉜다. 액세스 네트워크에는 안테나, 기지국 등의 장비가 포함돼 있다. 화웨이는 현재까지 영국의 5G 네트워크 구축에 있어서 액세스 네트워크 부문에 참여를 신청했고, 이번에 영국 정부로부터 참여를 승인 받게 됐다.

23일(현지시간) 영국 언론 가디언은 테리사 메이 총리가 전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외무, 내무, 국방, 국제개발 담당 장관 등과 회의한 뒤 화웨이의 5G 액세스 네트워크 참여를 승인했다. 이에 따라 화웨이는 앞으로 5G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영국 이동통신회사에 무선 기지국 장비를 공급할 수 있다. 영국 정부는 5월 중 화웨이의 취급 기준 등을 포함한 5G에 관한 방침을 발표할 계획이다.

EE나 보다폰 등 영국 통신 회사 대부분은 현재 LTE 네트워크에서 이미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5G 초기는 LTE 네트워크와 5G 네트워크를 연계하는 NSA(논스탠드얼론, 비단독모드)로 진행된다. 만약 영국 정부가 5G에서 화웨이 제품을 배제할 경우, 영국 이통사는 기존 설비를 모두 교환해야 해 많은 비용이 들게 된다.

영국 이동통신사 보다폰은 화웨이를 금지할 경우 수백만 파운드의 비용이 더 들어가고, 5G 출시 자체가 늦어질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니킬 바트라 글로벌 인터넷데이터센터(IDC)의 수석 통신연구책임자는 CNBC에 “3개 벤더(화웨이·노키아·에릭슨)에서 2개 공급자 체제로 간다면 경쟁은 줄어들고 가격은 오를 것”이라며 “미국 통신업체들은 화웨이 배제로 인해 5G에 영향을 받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사정이 어려운 유럽의 경우 보다 저렴한 거래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2012년 화웨이 통신장비가 중국 정부의 스파이 활동에 사용됐다는 미국 의회의 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화웨이의 정보 유출, 안보 위협 문제가 표면화되고 있다. 이후 중국 정부가 자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개인이나 단체를 감시할 수 있는 ‘국가정보법’을 발효(2017년 6월)하면서 세계적으로 정보보안 우려가 더욱 확산되는 상황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중국 정보기관은 정보 수집을 위해 개인 및 단체가 소유한 차량이나 통신 장비, 건축물 등에 도청장치·감시시설을 설치하거나 영장 없이 압수 수색이 가능하다. 즉, 화웨이가 해외 통신기업이나 관공서 등에 납품하는 장비에 백도어(back door)를 숨겨놓고 이를 통해 중국정보기관이 감청하더라도 ‘국가정보법’에 따르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2018년 미국은 동맹국에게 화웨이 장비 사용 금지를 요청했으며 캐나다·호주·뉴질랜드·일본 등 대다수 안보 동맹국(Five Eyes)이 동참하면서 反(반)화웨이 정서가 확대되고 있다. 반면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은 아직 화웨이 장비 배제 여부를 고민하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일부 동유럽 국가는 안보에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5G를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서두르는 영국 이동통신사들은 가성비와 성능이 좋은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게 해달라고 메이 정부에 강력히 요청했다.

그동안 영국 정보당국은 화웨이 배제 방침에 신중한 입장을 가져왔다. 도·감청 전문 정보기관인 정보통신본부(GCHQ)의 제러미 플레밍 국장은 지난달 “중국 기술이 주는 기회와 위협을 모두 이해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화웨이 측은 “화웨이가 영국의 5G 네트워크 구축을 돕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환영한다. 이는 화웨이의 최첨단 5G기술이 영국의 기업과 소비자들이 빠르고 안정적인 네트워크에 액세스 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며 “우리는 영국이 지속적으로 증거에 기반한 접근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영국 정부와 산업계와 협력을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는 입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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