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석대건 기자] “내일 서울은 괜찮네” 

5살 지훈이(가명)의 하루 일상은 전국 미세먼지 확인으로 끝이 난다. 스마트폰으로 미세먼지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자신이 사는 곳, 할머니 고향, 심지어 자신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의 미세먼지 수치까지 엄마에게 말해준다. 그런 지훈이를 보는 엄마 김 모 씨는 심경은 복잡하다.

영유아의 삶에 스마트폰이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아이들의 스마트폰 친구는 유튜브 

지훈이에게 스마트폰이 허락된 시간은 하루 90분. 엄마 김 씨가 지훈이와 약속한 분량이다. 그는 “알람을 설정하고 울리면 반납하는 방식으로 사용하게 한다”며, “처음에는 울고불고 힘들었지만 아이 스스로 약속을 지켜야 내일도 스마트폰을 만질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고 말했다.

주로 지훈이가 스마트폰으로 보는 건 유튜브다. ‘유라야 놀자’ ‘제이제이튜브’와 같은 장난감 채널의 동영상을 시청한다. 두 채널의 구독자는 약 160만 계정이다. 

(자료=영유아정책연구소)
영유아의 스마트폰 주요 이용 장소
(자료=영유아정책연구소)

특이한 점은 김 씨가 지훈이에게 유튜브를 가르쳐 준 적이 없다는 것. 김 씨도 “아빠가 쓰는 걸 보고 배운 것 같다”고 짐작하는 수준이다. 지훈이는 유튜브 조작 수준은 동영상 목록을 스크롤해 자신이 마음에 드는 동영상을 시청하고 터치로 ‘빨리 넘기기’와 ‘다시 보기’까지 할 줄 안다.

빠른 습득력으로 쉽게 사용하게 된 것. 영유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영유아의 스마트폰 이용률은 53.1%, 스마트폰의 최초 이용 시기는 평균 2.27세다.

약속은 정해져 있지만, 문제는 실제 생활에서 발생했다. 가족 외식을 할 때마다 지훈이는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요구했다. 원하면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

부모는 거부할 수 없는 노릇이다. 김 씨는 “스마트폰을 주면 밥을 잘 먹고, 주지 않으면 산만해져서 식당을 돌아다닌다”며, “둘째까지도 신경 쓰려면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을 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최 모 씨의 가정도 사정은 비슷하다. 최 씨의 딸 재인이 역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즐겨본다. 뽀로로 영상을 우선 보고 끝나면, 관련 영상으로 뜨는 다른 영상으로 이어보는 식. 

놀이라도 본인이 제어할 수 없다면 과의존 이를 가능성 높아

다행히 재인이에겐 스마트폰은 아직 놀이 수준이다. 최 씨는 “아이가 스마트폰을 매일 보니까 자주 찾기는 해도 조금 시켜주다가 적당한 시간이 되면 ‘다른 놀이 하자’ 거나 ‘아이스크림 먹자’고 해서 주의를 돌린다”고 말했다. 

그래도 걱정은 있다. 최 씨는 “TV는 한 프로그램이 끝나면 그만 보는데, 스마트폰은 그만하자고 하지 않으면 계속 본다”고 말했다. 앞서 지훈이 역시 “TV는 유튜브만큼 집중력 있게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놀이처럼 생각한다고 해도, 부모의 제어가 필요한 수준이면 과의존 상태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

과기정통부의 스마트폰 활용 매뉴얼에 따르면, 6세 미만의 영·유아가 스마트폰과 같은 일방적이고 반복적인 자극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좌뇌가 과도하게 발달하여 불균형을 초래하게 되는 ‘유아스마트폰증후군(Toddler Smartphone Syndrome)’증상이 발생한다.

또 정서적으로 부모의 표정과 말에 반응하며 언어능력과 정서를 발달시켜 나가야하는데, 일방적인 스마트폰 영상 아이는 반응 자극을 받지 못하고, 신체적으로는 스마트폰을 조작만 익숙해져 신체 운동 기능이 저하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에 따르면, 만3~9세 유·아동의 스마트폰 중독율이 타 연령층에 비해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
만3~9세 유·아동의 스마트폰 중독율이 타 연령층에 비해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자료=한국정보화진흥원)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 쥐고 산 디지털 원주민?

그렇다면 통제된 상태에서 교육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최 씨의 남편은 글자를 읽기 시작한 재인이에게 매일 잠들기 전, 동물 그림과 해당 영어 단어를 가르치는 애플리케이션을 함께 플레이했다.

호기심을 보였던 재인이는 “평소에도 뭘 보면 영어로 뭐냐고 물어보고, 영어 노래를 틀어달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기간은 3달을 넘기지 못했다. 재인이는 그 애플리케이션을 더 이상 찾지 않는다. 

최 씨는 “출판사 같은 곳에서는 지금 아이들이 디지털 원주민이라면서, 전집과 태플릿을 같이 판매하지만 사지 않았다”며, “디지털 기기의 교육 효과는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휙휙 빠르게 화면이 지나가다 보니 글자를 읽어도 자신이 아는 단어만 알고 넘어가거나 창의력이 떨어지지 않나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개별 단어는 파악해도 전체는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 문맹’에 대한 염려다. 

실질 문맹은 지능과는 관련 없는 학습 장애의 일종으로, 문해 즉 글을 읽고 쓰는 연습 부족으로 비롯된다. 실질 문맹은 글을 읽더라도 그 안에서 읽고 싶은 부분, 즉 읽을 수 있는 부분으로만 이해해 결국 잘못된 정보를 습득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이 ‘실질 문맹률’에서 최하위다.

지훈이 엄마인 김 씨 역시 “아이가 스마트폰을 쓰면서 한글도 많이 익숙해지고 아는 것도 많아졌지만 근본적인 학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웬만하면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아예 끊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나쁘니 쓰지 말라고?" 스마트폰 원하는 아이들...그리고 불안한 부모들 (이미지=픽사베이)

부모가 모르는 부모 가이드의 존재

영유아의 스마트폰 사용은 점점 늘어가는데 제대로 된 교육은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김 씨는 자신의 경험으로, 최 씨는 페이스북에서 육아 관련 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있다. 

물론 관련 부처에도 영유아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나 교육은 없다. 여성가족부에서 운영 중인 ‘좋은 부모 행복한 아이’의 부모 교육 매뉴얼에 스마트폰에 대한 내용은 없다. 

이 때문에 지난 2018년 말 ‘영유아 디지털미디어 조기노출 현황과 대책’ 정책토론회에서 이정림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영유아 미디어매체 이용의 법적 규제조항을 구체화하고 부모를 위한 지침 제공, 부모와 영유아 관련 유관기관 실무자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관련 부처의 하나인 과기정통부도 ‘제4차 스마트폰ㆍ인터넷 과의존 예방 및 해소 종합계획(2019~2021)’를 통해 2019년 상반기 중 영ㆍ유아 스마트폰 이용시간 및 활용방법에 대한 최신 가이드라인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7년에 제작된 기존의 ‘스마트폰 바른 사용 실천가이드 활용매뉴얼’의 존재조차 김 씨 등 영유아 부모들은 알지 못했다.

여성가족부는 육아 웹툰으로 '좋은 엄마,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지침서'를 소개하지만, 스마트폰 등 현 영유아 환경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 많다. (사진=여성가족부 '좋은 부모 행복한 아이' 갈무리)

영유아의 스마트폰 미디어 노출 등 총체적인 정책 개선 필요해  

게다가 영유아 관리 사각지대까지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통제권을 가진 김 씨 부부와 최 씨 부부에 비해, 직장 사정으로 인해 온전히 양육을 양가 부모에게 부탁하는 박 씨 부부는 5살 자녀의 스마트폰을 사용 행태를 전혀 알지 못했다.

박 씨는 “할머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쓰게 한다”며, “돌봐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소아과의사회를 중심으로 영유아 및 보호자 대상 가이드 배포하고, 정부 및 기업, 민간단체 370여 곳이 참여해 인터넷 안전 이용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정림 영유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대책 보고서를 통해 “영유아 스마트폰 이용의 법적 규제 조항을 구체화하는 한편, 육아지원기관에서의 스마트폰 예방교육을 의무화”하고, “부모들을 위한 이러닝(e-learning)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스마트폰 등 미디어 노출에 대해 영유아만을 대상으로 한 독자적인 중독 측정 수치를 마련해 관련 정책 개선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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