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양대규 기자] 반도체 분야 중에서 국내 대기업들이 가장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곳이 바로 시스템 반도체 분야다. 국내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시장에서 고속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분야가 바로 메모리 반도체 분야이기 때문이다.

두 업체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성공을 바탕으로 비메모리 반도체에서 ‘생산’의 영역인 파운드리(Foundry) 산업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파운드리는 반도체에서 중요한 ‘설계’를 제외했기 때문에, 메모리 반도체의 생산 노하우를 십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시스템 반도체의 설계 영역에서는 국내 기업들의 영향력이 미비한 수준이다. 그나마 삼성전자가 직접 설계하는 엑시노스 SoC(Syste on Chip)의 경우, 점유율이 높은 자사의 모바일 기기에 탑재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150여개의 팹리스가 있지만 대부분 중소·영세업체들이다.

(자료=KEIT)
반도체 시장 전망(자료=KEIT)

시스템 반도체, 전체 반도체 시장 매출 70%

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 포함)는 전체 반도체 시장 매출의 70%를 차지한다. 지난해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2018년 기준 메모리 시장 규모는 1568억 달러(약 179조 원), 비메모리 시장은 2337억 달러(약 266조 원)로 전망했다. 하지만 전 세계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3~4%에 불과하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불황으로 국내 경기에도 적신호가 켜지자, 정부는 국내 시스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지난 3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경쟁력이 취약한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경쟁력을 높여 메모리 반도체 편중 현상을 완화하는 방안을 신속히 내주길 바란다”고 지시했다.

현재 정부는 시스템반도체 개발을 위해 대규모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공동으로 1조 5000억원 규모의 지능형 반도체 R&D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청했다. 기획재정부는 ‘2019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지능형 반도체 R&D에 300억원의 예산을 반영했다.

CPU 등 컴퓨터의 두되를 담당

시스템 반도체는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컴퓨터의 CPU처럼 데이터를 분석, 계산, 처리하는 비메모리 반도체를 뜻한다. 사람 명령에 따라 IT 제품의 동작을 조절하거나, 사람의 명령이 없더라도 스스로 IT 제품을 유지하고 관리해 준다. 컴퓨터의 ‘두뇌’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IT 제품의 전원 공급, 스마트폰과 TV 화면, 냉장고와 세탁기 등의 제어, 센서를 통한 인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사물인터넷(IoT), 스마트 팩토리, 가상현실(VR) 등의 새로운 기술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부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마이크로컴포넌트 ▲로직 IC ▲아날로그 IC ▲주문형반도체(ASIC) 등으로 나뉜다. 마이크로컴포넌트는 대부분 알고있는 CPU와 초소형 제품에 들어가는 MPU, MCU가 포함된다. 로직 IC는 논리회로로 구성된 반도체를 말한다. 모바일 AP가 대표적이다.

아날로그 반도체는 각종 아날로그 신호를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는 디지털 신호로 바꿔주는 반도체다. 최근 IoT의 발달에 따라, 센서와 함께 공장이나 자동차, 사무실 등 여러 곳에서 사용된다. ASIC은 TV나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다. 범용적인 마이크로컴포넌트와 달리 특정 영역에만 활용되는 반도체다.

(자료=퀄컴)
(자료=퀄컴)

시스템 반도체, 우수 설계 인력 확보 필수...기술 진입장벽 높아

규격화된 메모리 반도체는 하나의 기업이 설계에서 제품 생산까지 모두 수행하는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종합 반도체 기업)이 효율적이다. 시스템 반도체는 수요자의 요구나 제품이 다양하기 때문에 공정별로 특화된 기업에 의한 분업화에 적합한 제품이다. 중소·벤처기업 입장에는 메모리보다 시스템 반도체 산업에 진입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전 세계 시장에서 인적·물적 자원이 풍부한 IDM이나 팹리스 대기업과 경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고도의 기술력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보유한 핵심 기술 인력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대표적인 기술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이다. 시스템 반도체 설계를 위해서는 고도의 공학적 전문지식이 필수적이므로 기술적 진입장벽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수학·물리학·화학 등 기초과학이나 컴퓨터 과학에 대한 이해와 전자회로 이론·통신이론·신호처리이론 등 다양한 공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 모든 영역에서 높은 성과를 보이는 대만은 지난 20여년 간 실리콘밸리 출신의 자국 엔지니어를 12만 명을 자국으로 불러들였다. 그 결과 세계 2위의 팹리스 강국의 자리를 차지했다. 시스템 반도체 산업 발전에 있어 우수한 설계 인력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시스템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 산업의 비중이 전체 산업의 20% 이상 증가하고 있으며, 설계 IP 시장의 증가율도 매우 높다”며, 시스템 반도체 산업에서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안 상무는 “지난 20년간 정부 주도로 육성해 왔으나, 우리업계는 경쟁국 대비 기업개수, 규모, 인력확보 등에서 매우 취약하다”며, “기반기술 측면에서도 해외에서 이미 개발된 반도체 설계도면(IP)을 조합해 반도체를 설계하는 수준이고, 이에 매년 3000억 원 이상을 로열티로 지급하고 있다. 국내에는 글로벌 수요기업인 가전·완성차업체 등이 있으나 대부분 외국산을 사용, 국내 반도체산업과의 연계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의 엑시노스(사진=삼성전자)

모바일 AP에서 퀄컴 스냅드래곤의 대항마로 삼성전자가 개발한 엑시노스도 ARM에서 개발한 마이크로아키텍처의 라이선스를 구매해 설계하고 있는 상황이다.

안기현 상무는 국내 팹리스는 2006년까지 양적·질적 성장을 통해 2조 원 규모의 산업을 형성했지만, 거기서 멈췄다고 말한다. 특정 고객에 편중된 제한된 내수시장, 규모의 영세성, 핵심 인력 부족 및 생태계 간 협력체계 부족, 가격경쟁력 취약 등이 그 이유다. 국내 장비의 국산화율은 20%이고, 소재·부품 국산화율은 50%에 불과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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