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석대건 기자] 최초의 컴퓨터는 파스칼이 세무사를 위해 만들었던 기계식 계산기였다. 의미 그대로 동사 ‘계산’이라는 ‘Compute’와 동사의 주체를 나타내는 접미사 ‘-er’가 만난 컴퓨터였다. 물론 이전에도 계산하는 인간을 ‘컴퓨터’라고 붙이긴 했지만, 지금 시대 우리가 인식하는 기계적 장치로서 컴퓨터의 의미는 파스칼이 최초다.

파스칼 이후 약 4세기가 지난 2019년의 세상에서 컴퓨터의 역할은 단순히 사칙연산과 같은 ‘계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후 데이터센터의 설비부터 손안의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컴퓨터가 없는 곳이 없는 시대가 왔다.  웹검색, 길찾기, 채팅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을 계산하고 있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컴퓨팅하고 있다.

데이터 시대, 감각은 유효하지 않아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비즈니스가 곧 컴퓨팅. 신시장 진출부터 인사 · 홍보 · 영업 등 전략 수립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데이터가 활용되고 있으며, 그 주역은 컴퓨팅이다. 과거 ‘오너의 감각’이라는 이름으로 치장된 주먹구구식 경영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클라우드의 확장세는 이같은 시대적 변화를 방증한다. 가트너에 따르면, 2019년 퍼블릭 클라우드 매출은 17.5% 상승하는 한편, 2022년까지 이러한 기하급수적인 상승이 계속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특히, 일반 엔터프라이즈의 인프라를 클라우드로 지원하는 IaaS(Infrastructure as a Service)의 부문의 경우, 2019년 전 세계 매출이 27.5%가 성장한다고 밝혔다. 

시드 내그(Sid Nag) 가트너 리서치 디렉터는 “기업들이 퍼블릭 클라우드의 흐름에 합류하고,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를 도입함에 따라 기업 운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클라우드 관련 서비스가 필요하다”며,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클라우드 매출의 상승은 곧 기업의 컴퓨팅에 대한 니즈와 같다. 이는 단순히 컴퓨팅 한 분야의 성장이 아닌, 기업 생태계 비즈니스의 변혁을 의미한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는 새로운 주인공을 탄생시킨다. 

유지·보수라는 이름으로 ‘망하지도 않지만, 성공도 못한다’며, 기업으로서는 굴욕을 감수해야 했던 컴퓨팅 기업들이 변화된 세상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사내 발주에서 기술 주도 기업을 변신하는 컴퓨팅 업계

가장 먼저 유지보수의 색채를 버리고 있는 기업은 삼성SDS다. 

우선 기존 고객의 컴퓨팅 기반을 클라우드로 옮겼다. 삼성SDS는 ‘12년부터 지난해까지 삼성 계열사를 대상으로 클라우드 전환 작업을 진행했다. 

디지털 전환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은 것. 삼성SDS가 삼성전자에 의존하는 매출은 2018년까지 70%을 상회하지만, 이는 과거 유지보수에 따른 비용가 아닌 클라우드 전환 투자인 셈이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SDS 엔터프라이즈 클라우드’를 출시하고 기업의 프라이빗과 퍼블릭을 모두 포함한 멀티 클라우드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또 홍원표 사장 체제 아래, 인텔리전트 팩토리, 클라우드, AI·Analytics, 솔루션의 4대 IT전략 사업 확장을 공공연하게 내세우고 있다. 컴퓨팅 기반 기술을 바탕으로 응용만 된다면 어디라도 공격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삼성SDS는 SI 기업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솔루션인 인텔리전트팩토리 플랫폼 ‘넥스플랜트’, 블록체인 플랫폼 ‘넥스레저’, AI 분석 플랫폼 ‘브라이틱스 AI’, 블록체인에 AI를 더한 금융 플랫폼 ‘넥스파이낸스’ 등을 출시한 바 있다.

컴퓨팅 기업이 IT 융합을 주도하는 시대가 도래했다.(사진=Thales)

삼성SDS가 컴퓨팅에 기반한 확장이라면, LG CNS는 클라우드 컴퓨팅 집중을 선택했다. 

LG CNS는 LG그룹의 클라우드 전환 컨트롤타워를 맡는다고 지난 3월 발표했다. LG 전자 등 주요 계열사 시스템을 퍼블릭 클라우드로 70% 이상 전환하고, 이외 프라이빗 클라우드를 포함해 5년 이내에 90% 이상 전환할 예정이다. 

LG CNS '이미 경력은 많다' 

또 지난해 11월 우정사업본부의 우편정보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전면 재구축 사업의 주 사업자이기도 하며, 대한항공의 전사 시스템을 AWS 클라우드로 이전하는 작업 중이다.

LG CNS는 국내 IT서비스 기업 중 최초로 '클라우드 인티그레이터(클라우드 통합 사업자)’ 를 선언한 바 있다. 

주요 파트너가 해외는 AWS와 국내는 메가존인 점도 주목할 만하다. AWS는 이미 글로벌 클라우드 부문의 강자이며, 메가존은 600여 명의 기술 인력을 보유한 클라우드 강소기업이다. 협업을 통한 집중 전략이다. 어느 기업이라도 컴퓨팅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클라우드 환경으로 가고자 한다면, LG CNS가 쉽게 마이그레이션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영섭 LG CNS 사장은 “LG CNS는 협업 체계를 공고히 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며,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 고객들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유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반대로 클라우든 시장은 커질 것이고, LG CNS가 공략하겠다는 의미다. 

금융권 클라우드 확대 정책 또한 LG CNS에게 호재다. 

본격적인 움직임은 벌써 시작됐다. LG CNS는 AWS와 ‘한국형 금융 클라우드 모델’로 금융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프라이빗(private)과 퍼블릭(public) 클라우드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로, 개인정보 등 중요 고객 정보를 포함하는 계정계와 같은 영역은 프라이빗 클라우드로 관리하면서 거래 기록을 관리하고 분석하는 정보계와 같은 영역은 퍼블릭 클라우드로 구성된다. 국내 IT 정책 및 관련 국내 법/규제를 반영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미 LG CNS는 카카오뱅크의 뱅킹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한 바 있기 때문에, 금융권의 선택지는 LG CNS로 쏠릴 수밖에 없다. 

'확장'하는 삼성SDS, '집중'하는 LG CNS, '선도'하는 SK C&C

앞서 양사가 컴퓨팅 기술을 기반으로 확장하고 집중했다면, SK C&C는 ‘선도’하고 있다.

SK C&C는 클라우드 컴퓨팅의 미래라고 불리는 ‘쿠버네티스’ 기술을 이끌고 있다. 쿠버네티스는 소규모 분산 컨테이너형 아키텍처 서비스다. 지금의 엔터프라이즈 시장이 ‘크고 빠르게’를 위한 클라우드 컴퓨팅이라면, 앞으로는 ‘작고 능숙하게’로 바뀐다는 것. 

또 쿠버네티스는 오픈소스 시스템으로, 오픈소스는 IBM이 인수한 글로벌 1위 기업 레드햇이 주도하고 있다. SK C&C는 이 IBM과 협력해 국내에서 클라우드 사업을 전반을 추진 중이다. 클라우드가 미국 등 IT 시스템 선진국에서 도입된 지 4~5년 후 국내에 확산된 것을 고려한다면, SK C&C는 2024년 이후를 보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자율주행차 등 하나의 기기 자체로 고성능의 컴퓨팅을 담당해야 하는 엣지 컴퓨팅 기조는 앞으로 SK C&C의 전략에 손을 들어준다.

(사진=futurumresearch)
(사진=futurumresearch)

더불어 SK C&C는 게임 산업에도 공들이고 있다. 삼성SDS와 LG CNS가 대규모 엔터프라이즈 유치에 신경 쓰는 데 비해, 특화된 산업군을 위한 컴퓨팅을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게임은 이미 충분한 잠재력을 가진 산업군이다. MS는 게임 기업 고객을 확대하기 위해 게이밍 특화 테크 센터를 개소할 정도다. 

이러한 전략 토대로 SK C&C는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트래픽을 차지하는 게임 ‘배틀 그라운드’를 공략해 주요 클라우드 제공자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또 IBM 데이터센터와 연계돼 글로벌 서비스에도 제한이 없다는 점을 제시하면 국내 게임 사업자를 고객으로 맞이하는 중이다. 지난 2018년 국제 게임 전시회 '지스타’에도 참가해 게임사 전용 클라우드 서비스를 공개한 바 있다. 

사실 SK C&C의 ‘선두’ 전략은 IT시스템 기업이지만 SK 그룹 아래 속해 있는 이상, 삼성SDS와 LG CNS와 동일한 전략을 취할 수 없으며, 게다가 SK텔레콤이라는 거대 통신 회사가 같은 식구로 있다 보니, 클라우드나 AI 등 서비스 부문에서도 다소 겹친다는 점도 ‘제 살 길’을 위한 판단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연계성이다. 이는 현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이전 SK C&C 대표로 재직할 당시 “IT 인프라 구축을 서포터 해주던 역할에서 벗어나 아마존, 구글 등 테크 기반 기업과 경쟁하겠다”고 선언에서도 찾을 수 있다. SK C&C가 컴퓨팅 기술을 가진 이상, 그 가치는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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