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고정훈 기자 ] 서울 송파 소재 삼표 풍납공장의 이전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풍납 공장 일대는 문화재가 발굴돼 예전부터 부지 이전을 추진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전을 앞두고 송파구청과 삼표 간 법정 다툼이 벌어졌다. 현재 애꿎은 공장 레미콘 기사들만 속을 태우고 있는 상황이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송파구는 지난 2일 삼표 풍납공장 이전 관련 보상 협의회를 열 계획이었다. 해당 협의회에는 서울시를 포함해 송파구와 삼표 관계자 등이 참석키로 했다. 하지만 보상 협의회는 결국 무산됐다. 풍납공장 레미콘 기사들이 시위를 벌이면서다. 이날 아침 '보상 협의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송파구청 앞에는 레미콘 차량과 운전기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풍납공장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소속 레미콘 기사들이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풍납공장 레미콘 기사들과 하청업체 직원들의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레미콘 기사들도 협의 대상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 과정에서 레미콘 차량 10여대가 송파구청을 에워싸기도 했다. 한시간이 넘는 시위 끝에 결국 이날 보상 협의회는 제대로 열리지 못하고 흐지부지 취소됐다.

지난 2일 송파구청을 둘러싼 레미콘 차량들. 해당 시위는 보상 협의회에 포함해달라는 주장 아래 진행됐다.(사진=풍납공장 비상대책위원회)

비대위에 따르면 풍납공장 이전으로 일자리를 잃는 사람은 레미콘, 덤프 기사 등과 정비사, 구내식당 직원 등을 포함해 270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보상협의는 풍납 레미콘 기사 등을 뺀 삼표와 송파구, 서울시 등으로 이뤄진 협의체에서만 진행된다. 현행 토지보상법에는 토지 보상 협의 대상을 '토지소유자 및 관계인'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미콘 기사 대부분은 노동법상 개인사업자다. 이들은 회사에 소속돼 있는 것이 아니라 차량을 구입해 직접 운반한다. 이 과정에서 레미콘 기사와 삼표는 1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다. 별다른 사고가 없는 한 매년 진행되기 때문에 사실상 정규직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번 보상 협의회에서는 '별개의 사업자' 부분이 발목을 잡았다. 비대위 김상기 상임이사는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보상 협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송파구는 그동안 레미콘 기사들의 주장에는 전혀 귀울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현재 풍납공장 비대위는 송파구에 정식적인 협상 대상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오히려 개인사업자인 만큼 삼표 측과 대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 상임이사는 "풍납공장 이전이 어려울 경우 당장 생계를 위협받는 건 레미콘 기사들이다"며 "우리도 보상 협의를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이 계속되지 송파구는 한발짝 물러났다. 송파구는 “삼표 측과 보상 협의를 진행하면서 부수적으로 레미콘 기사들의 보상에 대한 논의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그러나 이같은 입장에도 비대위 측은 송파구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송파구가 계속해서 말을 바꾸는 사이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기사들이기 때문이다. 

비대위 소속 관계자는 "모든 레미콘 공장은 생산량에 맞춰 기사들을 계약하기 때문에 공장이 없어지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며 "개인사업자라고는 하지만 레미콘 차는 생산시설인 레미콘 공장이 없으면 일자리도 없어진다“고 호소했다.  또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재를 보전하려는 송파구의 취지를 이해하지만, 무조건 이전을 주장하는 것은 레미콘 기사들의 생존권을 무시한 처사"라고 밝혔다.

풍납 공장 이전 문제가 불거진 건 지난 2013년부터다. 앞서 1997년 발굴조사에서 다량의 유적과 유물이 나오면서 백제의 왕성인 '위례성'일 가능성이 있다는 학설이 제기됐다. 이에 서울시와 송파구는 풍납토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시키기 위한 복원 작업에 착수했다.

서울시와 송파구는 성벽 복원을 위해 2003년 부지 안에 공장이 있던 삼표와 '공장용지 협의 수용 및 연차별 보상에 합의'하고 2013년까지 삼표로부터 공장 부지 64% 매입했다. 그러나 2014년 삼표 측이 돌연 공장 이전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항간에는 사돈지간인 현대차그룹 신사옥(GBC) 건설에 따른 이득을 취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김 상임이사는 이런 의혹에 대해 오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예전 잠실 롯데타워를 건설하던 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때는 레미콘을 24시간 가동해 물량을 맞추는 게 가능했지만 지금은 저녁에는 레미콘 운송이 불가능해 풍납공장만으로는 도저히 물량을 맞출 수 없다"고 했다. 또 "2014년에 공장을 이전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송파구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결국 기회를 놓쳤다"고 덧붙였다. 

삼표가 보상 협의에 불응하자 서울시와 송파구는 사유재산 사용허가 취소와 행정대집행을 통해 공장용지를 확보하려고 했다. 삼표 역시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지난 2월28일 대법원은 서울시와 송파구에 손을 들어줬다. 송파구는 사업인정고시 효력이 만료되는 오는 10월6일까지 풍납공장을 이전한다는 방침이다.

서울 송파구 일대 삼표 풍납공장 (사진=고정훈)
서울 송파 일대 삼표 풍납공장.(사진=고정훈)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