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고정훈 기자] 지난해 12월부터 후판 가격을 놓고 조선업계와 철강업계간 기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철강업계는 원재료 가격 상승과 가격 정상화를 이유로 톤(t)당 가격을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조선업계는 아직 업황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격 인상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가격 협상이 시작된지 5개월이 넘었지만 좀처럼 서로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는 모습이다. 다만 다음 반기 협상을 앞두고 있는 만큼, 이번달 안에는 구체적인 협상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철강업계와 조선업계는 후판 가격에 대한 물밑 협상을 진행 중이다. 후판은 선박 제조에 쓰이는 제품으로, 선박제조 원가의 10~20%를 차지한다. 이미 철강업계는 지난 5반기 연속 후판 가격을 올린 바 있다. 조선업이 살아나고 있어 가격을 올릴 때가 됐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조선업계는 잇따라 수주 소식을 알리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제철에서 생산하고 있는 후판. 현재 조선업계와 가격 협상 중에 있다. (사진=현대제철 홈페이지)
현대제철이 생산하고 있는 후판. 현재 조선업계와 가격 협상 중이다. (사진=현대제철 홈페이지)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조선업 호황기였던 2000년대 중반에는 후판이 톤당 100만원 정도 했다. 그러다 조선업계가 불황에 빠지면서 가격을 내려 손해를 감수하기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5반기 연속 가격이 있었지만 원재료 가격 등을 생각해보면 아직도 낮은 수준이다"며" "이번 인상안은 조선업황에 따라 결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후판 가격은 지난 5반기 동안 톤당 약 30만원이 올라 현재 70만원 중반 수준으로, 철강업계는 톤당 5만원 정도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인상 움직임에 조선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지난달 7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후판 가격 인상이 시황 회복기에 있는 조선업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조선협회는 이날 성명에서 “조선업황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후판 가격은 지속 상승해 조선업계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선박 발주량이 최근 2년간 점진적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6년간 평균 발주량은 여전히 평균 이하라는 것이었다.

또 “올해 대형 조선 3사 후판 소요량은 510만톤 내외로 예상되고 톤당 5만원이 인상되면 고스란히 2550억원의 원가 부담을 지게 된다”며 “선가가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후판 가격 인상은 조선업계의 생존을 위태롭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현재 조선업계는 후판 가격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중국 등 외국산 후판을 수입해 대체하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중국 조선소들은 자국 내 후판 가격 하락으로 다시 경쟁력을 회복하는 중이다. 자칫 잘못하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국내 조선업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산 후판 가격이 흔히 알고 있는 인식만큼 저렴하지 않고, 국내산 후판보다 크기도 작아 사용하기 어렵다"며 "조선사들이 협상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중국산 후판 수입이라는 카드를 이용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일반적으로 후판 가격 협상은 협회 등 대표단체가 아닌 개별 업체들이 자율적으로 진행한다. 주로 반기마다 재협상이 이뤄진다. 따로 협상일을 잡아두기보다는 상시적으로 만나 조율하는 방식이다. 

지금처럼 가격 협상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어도 후판은 계속 공급된다. 이후 업체별로 가격 협상이 끝나면, 협상 전에 공급했던 후판 가격은 소급 적용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후판 가격 협상은 매번 늦춰지는 일이 다반사"라며 "업체마다 개별적으로 협상하고 있어 서로 예민한 부분이 있다. 때문에 가격이나 협상 과정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외부에서 봤을 때는 진척이 없는 걸로 오해할 수 있다"고 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도 "가격이 정해지면 이전에 공급 받은 후판을 소급 적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협상일이 중요하지는 않다"며 "그러다보니 (협상이) 매년 늦춰지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달 안으로 '타협안을 내놓지 않을까'하는 전망이 나온다. 다음 반기 협상을 앞두고 있어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예전 협상 과정을 보면 보통 반 년안에 협상이 마무리됐다"며 "곧 다음 반기 협상이 다가오는 만큼 이번달 안으로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고 갈 기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서울 포스코 본사 전경
서울 포스코 본사 전경(사진=고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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