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카드수수료 인상을 두고 카드사와 대형마트 간 신경전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학계에선 논란을 불식할 중장기적 대안으로 '여신전문금융법(이하 여전법)의 재개정'과 '카드수수료 산정원칙의 재확립' 등이 제시된다. 일각에선 이 대책들은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을 촉진하므로 지양돼야 하며, 오히려 양편 간 갈등 상황을 제 3자적 입장에서 지켜봐야 한단 주장도 나온다. 

앞서 카드사는 대형마트에 종전 수수료율 1.9~2%에서 평균 0.15%p 인상을 요구, 지난 1일부터 인상된 가맹점 수수료를 적용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요율 인하 방침에 따른 후속 조치로 읽힌다.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는 '카드수수료 종합 개편방안'을 내놓고 카드사가 중소형 가맹점 수수료율을 대폭 인하토록 했다. 적격비용 이하의 요율을 적용 받는 우대 가맹점 범위를 '영세·중소 포함 5억원 이하'에서 '30억원 이하'로 확장하자는 게 개편안의 골자다. 카드사는 연간 매출 5억~10억원 가맹점 1.4%, 10억~30억원 가맹점 1.6%로 수수료율을 하향 조정했다. 30억~100억원 가맹점과 100억~500억원 가맹점의 수수료율도 각각 1.90%, 1.95%로 낮췄다. 이에 카드사는 매출 공백 상쇄를 위해선 대형 가맹점 요율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0월 25일 불공정 카드수수료 차별철폐 전국투쟁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신민경 기자)

반면 대형마트들은 카드사 조치에 대한 수용 불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지난 19일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등을 회원사로 보유한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카드사들은 수수료 산정기준을 비공개로 하고 구체적인 근거도 제시 안 했다"면서 "물가상승에 따른 수익과 이익 증대, 조달금리 감소와 연체채권 비용절감 등 오히려 수수료 인하 명분이 충분하다"고 했다. 또 "대형마트들은 급성장 중인 무점포소매업과 경쟁하며 중소유통과의 상생을 위해 월 2회 의무휴업을 하고 있어 7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다"면서 카드사들이 합리적인 근거로써 수수료 협상에 임할 것을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협상력 우위에 있는 대형마트업계가 카드사들의 인상 요구안에 쉬이 백기를 들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1월부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던 카드사들이 '가맹점 계약 해지'를 내건 현대·기아자동차에 시행 보름도 안 돼 한발짝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 

양편이 협상에서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경우 이들 사이에 있는 소비자들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가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수익성 만회에 나선 카드사들이 무이자 할부, 포인트 적립, 할인 등 소비자 혜택을 점차 줄이고 부가서비스가 많은 제휴카드 발급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이에 학계 전문가들은 대형가맹점과 카드사 간 갈등 해결의 실마리로 '여전법 재개정'과 '카드수수료 산정 원칙 재확립' 등을 언급하고 있다.   

먼저 가맹점 수수료 산정원칙을 갱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해 말 정부는 우대수수료율이 적용되는 우대가맹점 범위를 종전 84%에서 12%p 늘려 96%로 만들었다. 이로써 전체 가맹점 273만곳 가운데 262만6000곳이 우대가맹점이 됐다. 카드 가맹수수료는 정부가 별도 우대 기준을 만들어 요율 인하를 개시한 지난 2007년 이후 현재까지 12차례 인하됐다. 정부 방침이 일반가맹점으로 분류되는 4%에 대한 역차별을 띠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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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의 카드 단말기.(사진=신민경 기자)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전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카드는 투명한 경제순환을 돕기에 정부가 카드사용을 적극 조력하되, 정책적으로 개입해선 안 된다"며 "지난해 말 가맹수수료 하향 조정에 정부가 나섬에 따라 오랜 기간 숙성돼 왔던 카드사와 가맹점 간 요율 체제가 무너졌다"고 했다. 좌 이사장은 이어 "내수 활력에 좌우되는 서민경제를 카드수수료율로 살리려는 계획 자체가 무모했다"며 "시장이 자율적으로 조율토록 가맹수수료 산정원칙을 갱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여전법 개정안이 대형마트업계 등의 담합을 억제하지 못하고 있단 점에서 관련법의 재개정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위는 앞선 2월 브리핑에서 "대형가맹점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거나 부당하게 낮은 요율을 요구하는 등 위법 행위를 하는 경우 처벌을 검토할 것"이라며 대형마트에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여전법 제18조의3항에는 '대형가맹점이 신용카드업자에게 거래상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신용카드업자에게 부당하게 낮은 가맹점수수료를 정할 것을 요구하면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제70조에선 이를 어길 시 해당 기업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법에서 규정하는 '부당하게 낮은' 요율의 기준이 모호하고 처벌금에 해당하는 1000만원 역시 대기업엔 미약한 조치라는 게 학계 중론이다. 그간 이 여전법 18조에 따라 대형 가맹점이 처벌 받은 선례가 없다는 점도 현행법의 '실효성 부재' 비판에 힘을 싣는다. 

김강식 한국공항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당국이 내세우는 여전법은 본래 카드사를 전제로 했기에 여타 업계엔 법적으로 유효하지 않아 대형마트업계에도 위협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며 "대형가맹의 연매출 규모를 고려해 여전법 혹은 이외 관련법에서 벌금을 다시 책정하고, 위법기준도 구체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불필요한 간섭 등으로 인한 '시장 옥죄기'를 거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관련법 재개정과 수수료 재산정 등도 궁극엔 정부 개입의 연장선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상덕 전 여신금융협회 상무이사는 "카드사와 대형가맹의 치킨게임(대립하는 두 집단 중 한쪽이 포기하면 다른 한쪽이 이득을 보고, 양쪽 모두 포기하지 않을 경우 최악의 상황이 도래하는 게임)에 정부가 섣불리 나서면 안 된다"며 "어떤 제도적 장치로도 개입하지 않고 양편이 각자의 수익을 보전하는 측면에서 자율협상을 이루도록 도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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