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격투기의 시대, 끊임없이 창조하라” 
3T(IT·NT·BT)와 3T(재능·기술·관용)의 결합, 그것이 핵심
  

이어령 석좌교수는 시대의 키워드를 제시해 온 당대 석학이다. 그는 초대 문화부 장관을 맡았으며, 이화여대 석학, 명예교수, 성결대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1970년대는 신바람 문화, 80년대는 서울 올림픽 행사를 통해 ‘벽을 넘어서’, 90년대는 정보화시대, 2000년대는 디지로그 선언을 통해 시대적 화두를 제시해왔다. 그는 지금도 웹2.0시대 기업과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런 문제를 전략적으로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 것에 대해 구상중이다.

당대의 석학 이어령 교수가 ‘신바람 문화, 벽을 넘어서, 정보화, 디지로그(Digital + Analog)’에 이어 찾은 2008년의 키워드는 ‘창조’다. 이 교수는 빌 게이츠가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 연설문에서 사용한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ms)에 대해 얘기를 꺼내면서 창조야말로 앞으로의 디지털 시대를 이끌어갈 키워드라고 제시했다. 

이 교수는 지금의 시대가 이전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이종격투기 시대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이종격투기가 단순히 열리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에 적합한 새로운 규칙(Rule)이 나오고, 그것에 따라 새로운 창조적 발상 등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 끊임없이 창조하는 것이 시대의 키워드라고 이 교수는 제시한다. 더불어 그것을 위해서는 정보기술(IT), 나노기술(NT), 생명공학(BT) 등 3T와 재능(Talent), 기술(Technolgy) , 관용(Tolerance) 등 3T가 어울릴 때만이 세계를 이끌 수 있는 기업, 그룹이 탄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5월 창간기념호 인터뷰 후 6개월이 지났지만 참여, 공유, 개방으로 규정되는 웹2.0에 대한 그의 열정은 여전했다. 이번호에는 무엇보다 신년을 맞이해 IT업계에 덕담을 부탁했다. “IT는 사랑과 같은 것. 사랑은 젊은이들의 특권. 젊음을 가진 자가 IT를 할 수 있다. IT를 하는 사람은 정월이라는게 없다. 매일 매일 새로운 것이다. 즐겁게 일하라”  

2008년 디지털 시대 화두는 무엇이 있을까요. 정보화, 디지로그 등 많은 화두를 던지셨는데 이번에는 어떤 화두를 생각하고 계신지요. 

빌 게이츠가 지난해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요소가 불거져 나온 가운데 인상적인 연설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창조가 화두입니다. 창조적인 정치, 창조적 사회 등등, ‘창조적’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알고 있던 창조와는 달라야 하죠. 예전 창조는 어느 부분을 개선하거나 혹은 좋은 것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지금 제가 말하는 창조는 그런 수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연구하고 만드는 폭 넓은 의미의 창조입니다. 예를 들어 이전 같으면 별 다섯 개 음식점에서 주는 대로 먹다가 맛을 모르면 ‘내가 부족하구나’라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메뉴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골라 먹는 시대가 됐습니다. 

프로슈머라는 말은 다 아시죠. 기업이 푸시(push)하는대로 가 아니라 이제는 가져와라(pull) 시대가 됐다는 것입니다. 또 이전 창조는 생산자와 기획자에게만 요구됐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소비자들의 창조적 소비, 창조적 선택이 필요합니다. 소비자가 직접 생산을 하는, 창조를 하는 시대의 임계점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전과 다른 창조가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까. 시대의 변화가 있었다면 무엇이고, 창조를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지금의 시대는 이종격투기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전 권투, 레슬링 등 하나의 경기가 아니라 이제는 레슬링, 권투, 유도, 스모 등이 혼재된 이종격투기가 인기입니다. 벽이 무너진 것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권투나 유도 등 이전 규칙을 갖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도 이종격투기에 맞게 새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도 이종격투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70년 대 레슬링 선수인 안토니오 이노끼와 프로복싱 선수 무하마드 알리와의 격투가 있었죠. 경기가 시작했는데 이노끼는 링에 누워서 절대 일어나지 않으려 했죠. 잘못 맞으면 못 일어날까봐. 

또 알리는 잡히면 안되니까 근접하지 않으려 했고 결국 경기는 싱거웠습니다. 룰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당시 누워서 돈 버는 놈은 창녀와 이노끼 밖에 없다는 얘기를 했던 것이 이런 경우죠. 당시에는 싱겁게 끝났지만 이제 몇만명이 들어오는 것으로 변했습니다. 이제 전례가 이렇듯이 그래서 재미를 봤다는 식의 성공(success) 스토리는 끝났습니다.  MS, 구글 등의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창조를 향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입니다.

창조를 위해서는 갖춰야 할 요건이 무엇이 있을까요. 

3T와 3T의 어울림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T 3형제가 있습니다. 정보기술(IT), 나노기술(NT), 생명공학(BT)가 대표적이죠. 또한 한 유명학자가 말한 또 다른 T 3형제가 있습니다. 재능(Talent), 기술(Technology), 관용(Tolerance)이 그것이죠. 

먼저 재능(Talent)이 있어야 합니다. 다 천재가 돼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천재입니다. 기회를 못 가졌을 뿐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다면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죠. 온달의 경우를 보시죠. 평시에는 바보이지만 전쟁시에는 영웅이 되지 않습니까. 둘째는 기술입니다. 재능만 있으면 뭐하겠습니까. 실천해야지.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IT, NT, BT 3형제가 필요합니다. 셋째로 관용(Tolerance)입니다. 남과 다른 것을 껴안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다른 것을 용납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제갈공명, 관우, 장비가 어떻게 어울리겠느냐. 유비 현덕의 관용입니다. 세 사람이 힘의 합출 수 있는 관용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3T와 3T가 어울릴 때 세계를 이끌 수 있는 기업, 그룹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한국은 더 이상 변두리가 아닙니다. IT, NT, BT 부분에서 우위에 진입했습니다. 이는 앞으로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디지로그 이론으로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 이론은 아직도 유효합니까. 

디지로그 쓸때만 해도 유행어 하나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게임업계를 봅시다.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 그 두 거인을 작은 닌텐도라는 회사가 쓰러뜨리고 있습니다. 닌텐도의 게임 ‘위(Wii)’는 디지로그를 실천한 것입니다. 

그동안 소니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은 디지털 입력을 위해 마우스, 키보드 등을 통해 사이버세계로 갈 수 있었지만 위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친 것입니다. 몸으로 센서 바를 이용해서 직접 움직이면 화면상으로 실현이 가능합니다. 바로 디지로그입니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을 화투 등 딱지나 만들던 회사가 따라잡을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어떤 이론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닐수도 있지만 디지로그는 현실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디지털기술도 아날로그 힘을 얻어야 합니다. 서로가 변화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IT, NT, BT의 나아갈 길이기도 합니다. 

디지털의 미래가 밝다고 합니다. 아날로그와의 결합이 왜 필요한 것이죠.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발전된다 해도 아날로그의 물질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LED TV가 나온다고 하죠. 액정 없이도 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LED TV를 만들기 위한 희귀금속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 금속은 이제 20년후면 다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대체제품이 나오지 않는다면 결국 다시 진공관 시대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얘기죠. 결국 기술결정주의 혹은 기술 만능주의의 설 자리도 잃게 되는 셈입니다. 이와 관련 덧붙여 말하자면 외국은 희귀금속 특례법을 만드는 등 희귀금속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한창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보세요. 이번 대선 과정에서 그런 얘기들이 나오는 것을 봤습니까. 신년 들어 느끼는 것이 있다면 이제 정치에 별 기대를 걸지 말자입니다. 

정부 의존도가 옛날 같지 않으니 ‘정부 없이도 살아가자’라는 생각을 가지면 어떨까요. ‘자신의 능력과 기술결합으로 앞으로를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해 볼때입니다. ‘정치 숙명주의, 정치결정주의에서 벗어나 기술이나 문화에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자’가 신년을 맞아 느끼는 화두입니다.

벌써 웹2.0 버블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웹2.0이 활성화되다보니 이전과 다르게 프로바이더 입지가 좁아졌습니다. UCC, 블로그 등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세상은 앞으로 마이크로 콘텐츠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몇분에 걸친 뉴스보다는 1분, 3분짜리 짧은 콘텐츠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것이죠. 또한 거창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이웃집 아주머니나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물들의 희귀한 장면들이 더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웹 2.0 시대에서는 작은 이야기가 뉴스가 되고 있어 지금까지 시장 경제적인 미디어 환경과는 크게 다릅니다. 따라서 경제 환경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증여경제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갖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나눠주는 재미도 갖겠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장경제인 증여경제를 만들고 있는 것이죠. 이런 것을 빨리 읽어야 새로운 벤처모델이 나올 것입니다.

창조라고 하면 벤처가 먼저 떠오릅니다. 벤처인들이 많습니다.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창조를 왜 하느냐. 기쁨 때문입니다. 우리가 돈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의 벤처는 즐겁기 때문에 하는 거 같습니다. 1억원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1억원의 성취감이 즐거움입니다. 그것이 수단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과정에 즐거운 것입니다. 

우리 말에는 ‘버려’라는 말이 많습니다. 먹어버려, 잊어버려 등등이죠. 버려야 새물이 고입니다. 버리고 또 버리고 새로운 것을 버리고, 창조의 한복판이 되는 것. 보상(reward)이 새로운 도전의 정상화로 가는 과정이 아닙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합니다. 벤처는 목마름입니다. 우물을 파야 합니다. 거기에서 안주해 우물 물을 마시면 안됩니다. 끊임없이 우물을 파는 재미로 사는 것. 갈증입니다. 창조의 열망이고 권태가 없는 그런 사람이 IT를 해야 합니다. 사랑은 20대의 특권이라고 합니다. IT도 사랑과 같습니다. IT는 젊은이의 특권입니다.

IT업계 관계자들에게 덕담을 한마디 해주시죠. 

최근 유행하고 있는 세컨드 라이프의 사례를 봤으면 합니다. 이제 자신의 정체성(self-identity)도 하나가 아닙니다. 복수일 것입니다. IT를 하는 사람도 생각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기술도 좋지만 문학자적인, 철학자적인 가치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창조, 새로운 것이 즐거움입니다. 일의 즐거움이 중요합니다. 뽕도 따고 님도 보는 재미가 있느냐가 중요한데, IT는 뽕도 따고 님도 볼 수 있습니다. 닌텐도 사장은 매일 매일이 새롭다고 합니다. 매일 해가 새롭게 뜨듯이 새로워야 합니다. IT업계 종사자라면 신년이라는 의미는 없습니다. 창조하는 사람은 매일 해가 새롭게 뜨는 것입니다.

이병희 기자 shake@ittoday.co.kr

[IT TODAY 2008년 1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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