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백연식 기자] 오는 22일 열릴 예정이었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법안심사 2소위원회 회의가 결국 취소되면서 합산 규제가 계속 일몰 상태를 유지하게 됐다. ICT(정보통신기술) 및 미디어 관련 법안을 다루는 법안2소위는 이날 유료방송 합산규제 재도입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유료방송 합산규제란 특정 사업자(KT와 KT스카이라이프)를  합산한 시장 점유율이 33.33%(1/3)를 넘는 것을 규제하는 것으로 다시 도입될 경우 KT 또는 KT스카이라이프는 다른 통신사와 달리 다른 케이블TV 사업자를 인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난 1월 국회 과방위 법안2소위에서 합산규제 재도입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해, 2월로 연기됐지만 3월로 다시 미뤄지고 결국 취소되면서 재도입의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다. 관련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합산 규제 재도입에 계속 일관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얼마 전 과기정통부는 국회에 낸 보고서를 통해 합산규제와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 규제는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강조하기도 했다.

국회 과방위 의원간 의견이 엇갈리는 사안의 경우 주무 부처의 의견이 상당히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과기정통부가 최근 들어 합산규제는 물론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 규제 폐지가 바람직하다고는 급진적인 의견을 낸 것에는 최근 통신사와 케이블TV간에 이뤄지고 있는 M&A(인수·합병) 때문으로 풀이된다.

합산 규제 재도입, 최근 반대 입장 내는 과기정통부 

지난 19일 조동호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 과방위에 제출한 인사청문 서면질의 답변서를 통해 “미국, EU(유럽연합) 등 선진 외국의 규제 동향을 감안하고 유료방송 시장의 자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합산규제를 재도입하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의 과기정통부 입장을 유지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 달 국회에 ‘위성방송의 공적 책무 강화 방안’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합산규제와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 규제는 폐지가 바람직하다며 당장 이번 달부터 시장 점유율 규제 폐지와 M&A 관련 심사 기준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방송법 · IPTV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과기정통부는 조동호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문제가 마무리되면 법 개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민원기 과기정통부 2차관 역시 지난 1월 과방위 법안2소위에서 합산 규제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원기 차관은 “일몰된 법을 다시 연장하는 것은 참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접근해야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며 “스카이라이프가 처음에 만들어졌을 때 공적인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데, (최근 딜라이브 인수 검토 등)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는 것들에 대한 걱정이 있다. 그 부분은 사후규제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유료방송 M&A 활성화하고 싶은 정부, "여당도 이에 동의"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방송정보통신 수석전문위원이 최근 발행한 ‘위성방송의 공공성 회복 및 공적 책임 강화 방안에 대한 평가와 제언’이란 정책이슈 리포트에 따르면 앞서 2015년 처음 합산규제를 도입할 당시 미래창조과학부(현 과기정통부)는 무조건 3년 일몰로 끝내야 한다는 입장이 아니었다. 3년 일몰 후 시장상황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합산규제를 계속할 것인지, 일몰로 끝낼 것인지를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었다. 또한 과기정통부는 2015년 11월, 2016년 6월 두 차례에 걸쳐 유료방송 합산규제를 규정한 통합방송법안을 제출 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18년까지 합산규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한 바가 없었고, ‘국회에서 논의하면 그 결과에 따른다’는 정도의 입장만 반복해 왔다. 과기정통부가 지난 2017년 8월 유료방송 시장점유율 합산규제 연구반을 만들었는데, 연구반에 참여한 10명 중 5명은 합산규제 반대, 2명은 합산규제 찬성, 2명은 중립적 입장, 1명은 위원장으로서 적극적으로 의견 표명이 없었다. 정부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연구반을 운영해놓고도 이에 대한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올해 들어 정부가 합산규제 재도입에 대해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하고, 더 나아가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 규제 폐지까지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에는 최근 이뤄지고 있는 유료방송의 인수·합병(M&A) 때문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현재 LG유플러스는 CJ헬로 인수를 결정하고 정부 당국에 인가를 신청했고, SK텔레콤 역시 자회사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딜라이브는 매각을 원하고 있는데 KT는 딜라이브 인수를 위한 실사까지 최근 진행할 정도로 관심이 있었다. 만약 합산규제가 재도입 될 경우, 앞서 설명한 것처럼 KT나 KT스카이라이프는 딜라이브는 물론 어떤 사업자도 사실상 인수하지 못한다.

정부 부처 고위 관계자는 “KT계열이 합산 규제에 묶인 상태에서, (규제가 없는)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다른 케이블 사업자 M&A를 진행해 유료방송 가입자를 늘릴 경우 이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나올 수 있다”며 “이것에 대해 상당수 여당 의원들도 공감하고 있는 분위기라 합산 규제가 재도입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안정상 수석위원은 정부의 시장 점유율 폐지 추진에 대해 “(시장 점유율 규제는) 방송의 공공성, 공익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임에도 불구하고 폐지를 추진하겠다는 것은 규제기관으로서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이는 방송시장을 3개 이동통신사가 장악, 현재의 통신시장처럼 고착화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통신사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장점유율 규제가 폐지될 경우 장기적으로 유료방송시장은 3개 IPTV사 중심의 시장으로 변질될 것이고, 시장독과점으로 인한 사업자 다양성 감소 및 소비자 선택권 제한(요금인상, 개별SO 등 중소사업자 시장 퇴출, PP사 협상력 약화, 불합리한 약관 정책 등)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8년 상반기, 유료방송 가입자와 시장 점유율 (표=과기정통부)
2018년 상반기, 유료방송 가입자와 시장 점유율 (표=과기정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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