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민간의 재건축, 재개발사업을 착수 단계에서 사실상 규제하는 방안을 상반기에 추진한다. 지난 12일 '도시·건축혁신(안)'을 발표하면서 정비사업 초기부터 층수나 디자인 등 핵심요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민간이 주도적으로 정비계획안을 작성해 자치구 심의를 거친 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다시 통과해야 하는 현행 과정보다 더 먼저 서울시가 엄격하게 개입하겠다는 의사다.

문재인정부와 참여정부 간의 큰 차이 중 하나는 국가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다. 동일한 진보정권이지만 국가의 역할과 비중을 더 강조하는 것이 문재인정부다. 참여정부는 민간의 자율을 나름 존중했고 의사결정에 기업인들의 의사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컸다.

반면 문재인정부는 국가가 모든 것을 주도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낙후지역을 정비하는 도시재생 사업에 뉴딜(New Deal)이라는 명칭을 부여한 것 자체가 이에 대한 첫 번째 방증이다. 뉴딜이란 무엇인가. 대공황이라는 경제적 재앙에 대응한 입법과 정책이었다. 당시 미국의 경우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이 세 명 가운데 한 명에 이를 정도로 경제적 참상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런 특별한 상황에서 가능한 정부주도의 경제정책을 낙후된 도시를 새롭게 가꾸는데 사용한 것이다. 5년간 50조원을 투자한다는 어마어마한 규모지만 민간의 핵심성과지표(Key Performance Indicator)를 도입한 일본과 비교하면 목표나 효과 검증은 막연하고, 지방창생과 같은 시대정신은 보이지 않는다. 이쑤시개를 만드는데 도끼를 들고 허둥대는 셈이다.

심형석 미국 사우스웨스턴캘리포니아대학 교수<br>
심형석 미국 사우스웨스턴캘리포니아대학(SWCU) 교수.

도시·건축혁신(안) 또한 마찬가지다. 민간이 자율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도시정비사업을 관주도로 바꾸려는 시대착오적인 대안일 따름이다. 이 혁신(안)을 주창한 이유 또한 가관이다. 아파트 공화국을 탈피하고자 하는 거창한 시대적 사명을 내걸었지만 왜 아파트 공화국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민간에 맡겨두니 획일적인 아파트만 지어진 것이 아니라 지난 30년만에 아파트가 주도적인 주거형태가 된 것은 우리와 코드(code)가 맞아서이다.

한국인의 주거문화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군집’이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초가집을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프라이버시를 존중할 필요가 없는 형태의 오래된 주거문화가 현재의 공동주택을 만들어낸 배경이다. 우리의 집단적 민족성(culture code)에 맞지 않으면 정부가 강요한다고 사생활이 보장 안 되는 닭장 같은 집단주거시설에 몰려 살지는 않는다. 아파트는 시대적 산물이지 민간이 돈을 벌기 위한 탐욕의 결과물은 아니라는 말이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했으니 모든 것이 내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실패를 잉태한다. 우리나라 재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 자산인 기업을 본인들의 사유물로 생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기업은 영원히 지속되는(on-going) 존재이지 특정 시기 특정인의 소유가 아니다. 이를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사단이 나는 것이다. 서두르고 무리하게 된다. 국가 또한 마찬가지로 특정 이념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싸가지 진보'와 '꼴통 보수' 모두 집권이 가능한 것이다. 누가 집권하면 안되고 누구는 된다는 것은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편협한 자기집착일 따름이다. 정치는 당시의 시대적 정신을 반영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의 집합체일 따름이다. 내 것 남의 것으로 나누는 순간 협치는 물 건너가고 타협은 남의 일이 되는 것이다.

실패학은 이런 문제를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라 진단한다. 반복강박이란 삶을 살아가면서 괴롭고 고통스런 과거 상황을 반복하고자 하는 강박적인 충동을 가리킨다. 매맞는 배우자를 생각하면 된다. 실패가 반복되는 원인을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다. 조직 차원에서는 나는 다를 것이라는 잘못된 자신감이다. 수많은 M&A(인수합병)가 실패로 돌아가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달콤한 유혹은 국내에서만 500조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당신 또한 다르지 않다. 과거 수많은 실패를 다시 또 반복할 따름이다. 국가주도의 디자인 정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관이 개입하면 개입할수록 디자인에서 창의와 혁신은 사라질 것이다. 성냥갑 아파트를 탈피하려는 노력은 예전 서울시장들의 역점 사업이었지만 결실을 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분양가규제의 결과물이 성냥갑 아파트이지 민간에 맡겨둬 생긴 창의성 부족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더 큰 걱정은 고령화 시대 도심 개발이 도시계획의 기본이 돼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3기 신도시계획 등 시기를 놓친 정부로 인해 재건축, 재개발 물량마저 줄어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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