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석대건 기자] 플랫폼의 역습이 시작된 것일까? 카카오톡이라는 거대  IT플랫폼 안에서 일어난 ‘승리-정준영’ 성범죄가 세상을 흔들고 있다.

“카카오톡도 방조죄 아닌가요?”

대학생 김 모(23) 씨는 “협조하지 않는다면 카카오도 똑같은 범죄자”라고 못 박았다. 플랫폼만 제공했다고 하더라도 ‘승리-정준영’의 성범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카카오가 가지고 있지 않냐”며, “동영상 유포 문제도 카카오톡 안에서 다 지우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승리는 성매매 알선 혐의를, 정준영은 성관계 영상을 불법으로 촬영해 단체 카톡방에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아쉽게도 카카오에는 증거도, 동영상도 없다. 카카오 관계자는 “사용자가 카카오톡에 올리는 모든 메시지, 동영상 등의 데이터는 최대 3일 동안만 보관된 후 삭제된다”고 설명했다. 

3일을 넘긴 후, 카카오톡에 기록된 대화는 사용자 기기에만 남는다. 그 시점에 카카오는 대화, 동영상 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번 사건의 중심인 ‘승리-정준영 카톡’의 진짜 원본도 카카오는 없다.

카카오톡, 뺏길 바에는 지우겠다

하루에도 60억 건 이상의 메시지가 오고 가는 카카오톡이다. 반대로, 이는 60억 건의 데이터이기도 하다. 사용자가 동의만 한다면, 챗봇 등 인공지능 관련 연구에도 충분히 쓰일 수 있다. 왜 카카오는 데이터를 삭제해야 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카카오의 ‘3일 보관 후 삭제’ 정책은 압수수색에 따른 사용자 프라이버시 침해를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지난 2014년 9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사회 분열을 가져온다”고 말하자, 검찰은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수사전담팀'을 구성하고 상시 인터넷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검찰은 만약 허위 사실이나 명예훼손성 메시지가 접수되면 해당 대화 확보, 역추적해 최초 허위 사실 유포자와 확산자까지 검거해 엄벌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대화 내용이 저장된 메신저 회사의 국내 서버를 압수수색할 수 있다. 이때문에 카카오톡 사용자들은 “민간 사찰”이라며, 일부는 해외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으로 망명하기도 했다. 

카카오의 ‘3일 보관 후 삭제’는 여기서 비롯됐다. 카카오(당시 다음카카오)는 “서버에서 대화를 확인하는 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며, “오직 사용자 PC와 스마트폰에서만 볼 수 있다”고 밝혔다.

“IT플랫폼을 껍데기로 만든 건 수사당국"

IT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의 입맛따라 데이터를 요구하고 수사했던 악습이 IT 플랫폼을 껍데기로 만들었다”며, “수사에 관련 데이터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지금도 검경은 데이터를 둘러싸고 알력 싸움 중이다.

현재 경찰은 승리-정준영 등 카톡 대화 복사본 기록의 진위 여부를 하나하나 당사자에 묻고 있다. 원본이 아니기 때문에 불법행위의 핵심인 불법 촬영물 전송 유무에 대한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원본은 검찰이 가지고 있다. 검찰은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수사 의뢰 형식으로 원본을 받았으나, 공식적인 수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

법정에서 승리, 정준영 등 피의자 측이 카톡의 조작가능성을 내세운다면 여론의 비판은 받더라도, 법망에서는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다. 

카카오톡 대화 기록은 스마트폰 수리업체를 통해 공익제보자와 방정현 변호사 등을 거쳐 국민권익위로 전달된 것으로 알려진다. 만약 수리업체가 위법적인 방법으로 카카오톡 정보를 피의자로부터 탈취했다면 증거 능력을 잃을 수 있다.

(사진=카카오톡 갈무리)
카카오는 카카오톡도 일반 대화처럼 다룬다는 대원칙을 버리고, 메시지 삭제 기능을 추가하는 등 데이터 프라이버시 침해와 관련된 모든 끈을 끊고 있다. 그러나 이는 데이터의 공익적 활용도 막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진=카카오톡 갈무리)

데이터, 까다롭고 신중하게 다루는 대전제 있어야

데이터를 소홀히 했던 수사 관행에 대한 비판도 있다.

다른 보안 관계자는 “예전에는 데이터가 필요한 경우가 있더라도 당국은 영장 없이 공문으로만 요청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 정서상 애플처럼 기업이 수사 당국과 대립하지 못한다”며, 국내 기업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려고 않게 됐다고 언급했다. 

그렇기 때문에 “명확한 공익 목적만 있다면 충분히 카카오톡 등 국내 IT플랫폼 기업과 협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5년 애플은 샌버나디노 총기 테러 사건 관련 FBI의 잠금 해제 협조를 거부한 바 있다. 당시 법원도 협조 명령을 내렸으나, 애플은 “개인정보보호 등에 있어 부작용이 크다”며 거부했다.

아울러 향후에도 관행을 없애기 위해 “수사에 관련된 모든 데이터 요구에 있어 영장주의를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영장주의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하기 때문에, 영장에는 처분의 대상, 시각, 장소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야 한다. 그만큼 “데이터도 까다롭고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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