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올해 등기이사 명단에서도 누락됐다. 지난 2013년 사내이사직을 포기한 이후 7년째 미등기 임원으로 경영활동을 하고 있다. 미등기 임원은 의사결정에 따른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운 대신 이사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정 부회장은 총수로서 신세계와 이마트의 실질적 경영을 이끌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에선 정 부회장이 '권한은 행사하되 책임은 지지않는' 등 수년째 책임경영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계에선 의견이 상반된다. 일각에선 미등기 임원으로서 과감하고 혁신적인 경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에 기대를 가지는 반면, 책임경영을 등진 권한행사는 후진적 방식이라는 평가가 있다.

7일 재계에 따르면 신세계는 오는 13일부터 신세계건설을 시작으로 상장사 총 7곳의 정기 주주총회를 연다. 14일 신세계푸드·신세계아이앤씨, 15일 이마트·신세계, 18일 신세계인터내셔날, 19일 광주신세계 순으로 개최한다. 특히 15일 열리는 신세계 주주총회에선 감사·영업보고 뒤 장재영 신세계백화점 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이 처리된다.

재계 "권한은 행사하면서 책임경영은 회피···법 앞에 총대 메야"

하지만 지난달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접수된 신세계 상장사 7곳의 '주주총회 소집공고'를 확인한 결과, 각 사내이사 선임안에서 정 부회장의 이름은 전무했다. 올해도 미등기 임원으로 경영에 나선다는 의미다.

앞선 2010년 3월 정 부회장은 신세계 등기이사에 새로 선임돼 총괄 대표이사를 맡았다. 이듬해 5월 신세계와 이마트가 별도 법인으로 분리된 뒤부터는 양사의 대표이사직을 각각 맡았다. 그러다 지난 2013년 2월 돌연 양사 등기이사직을 포기했다. 정 부회장이 동생인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의 제빵 계열사를 부당지원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때였다. 당시 회사는 "전문경영인에 의한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정 부회장이 등기이사직 사임을 택했다"고 밝혔다. 반면 일각에선 '일감몰아주기'로 인한 법적인 책임을 피하기 위한 정 부회장의 선제적 조치였다는 시각도 있었다.

ⓒ신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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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정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여부'가 그의 '회사 내 입지와 영향력'의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신세계는 이달 초 온라인 신설법인 쓱닷컴(SSG.COM)을 출범시키며 전자상거래 시장 선점에 본격 나섰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열린 '온라인 신설법인 신주 인수 계약 체결 발표식'에서 "지금까지 그룹 성장을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가 담당했다면 앞으로는 쓱닷컴이 이끌게 될 것"이라며 "그룹의 핵심역량을 집중해 온라인 사업을 오프라인 사업을 능가하는 핵심 유통채널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자상거래와 관련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정 부회장은 지난달엔 미국 서부지역 출장길에 올라 미국 내 전례를 살피기도 했다. 그레그 포란 월마트 미국법인 최고경영자와 만나 점포운영방식에 관한 설명을 듣기도 했다. 최근에는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시내 고급 백화점인 봉 마르셰의 내부 점포들을 돌아본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정 부회장은 수년간 미등기 이사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이 맡은 사업부문에선 적극적인 경영활동을 보이고 있다. 그룹의 주요 경영사안을 진취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좌우함과 동시에 이에 따라 부수적으로 발생 가능한 법적 책임은 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때문에 재계에선 그가 의도적으로 책임경영을 회피하고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 나설 권한은 발휘하면서 회사에 대한 책임은 감면 받길 원하는 듯하다"며 "진정 기업혁신을 위한다면 혜택만 취하려하기보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처럼 직접 법 앞에서 총대를 멜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학계 "공식 부회장 직함에 맞게 책임도 공식적으로 져야"···일각선 "과감한 결단 위해선 탈법 필요" 주장

현재 신세계에서 정 부회장만 미등기 임원인 것은 아니다. 이명희 신세계 총괄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 역시 올해 등기이사로 선임되지 않았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지난해 12월 낸 '대기업 집단 지배구조 보고서'에서 신세계그룹을 두고 "그룹 상장사들 가운데 총수가 임원으로 등록된 계열사가 전무하단 점에서 지배구조의 책임경영 관련 개선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원재환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총수가 잘못된 경영판단을 했을 때 바지사장들이 법적 책임을 지는 건 구태의연하고 후진적인 방식"이라며 신세계의 책임경영 회피 행보에 유감을 드러냈다. 원 처장은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의 큰 맹점 가운데 하나가 권한과 책임을 함께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라면서 "부회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경영 일선에서 적극적 활동을 보이고 있다면 당연히 등기이사로도 등재돼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권한 행사는 경영 책임과 비례하게 간주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수열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도 "전문경영인이든 총수든 지배구조상 지지를 받아 기업의 실질적 의사결정권자로 뽑힌 자라면 등기이사로서 공식적인 권한을 갖고 경영을 해야 옳다. 법적 제약이 있다고 해서 경영방식이 무조건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아니다. 주주들이 기업에 원하는 바를 책임있게 수행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반면 정 부회장이 수년간 미등기 임원직을 유지하는 근거를 '의사결정의 자율성과 혁신성'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주요 경영사안에 관한 의사결정 시,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야 총수가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전용욱 숙명여대 글로벌사회교육원장(전 세종대 대외부총장·경영대학장)은 "최근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족벌경영에서 전문경영과 소유의 분리체제로 전환하는 추세"라면서 "현장경영에 전문경영인들을 앞세운다면 대주주는 굳이 사내이사직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어 전 원장은 "신세계가 혁신경영으로 앞서나가고 있는 것도 그가 등기이사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법적 책임의 밖에 있는 총수가 그렇지 않은 인물보다 더 자유롭게 회사의 방향성을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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