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고정훈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현대제철이 사장급 인사에 이어 단독 대표이사를 선정한다. 신임 대표이사 후보로는 경쟁사 포스코 출신인 안동일 전 포항제철소장이 물망에 올랐다. 그동안 순혈주의를 고집했던 현대자동차그룹의 파격 인사를 두고 반응이 갈리고 있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이 오는 22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안 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한다. 앞서 지난달 15일 현대제철은 생산·기술 부문 담당을 신설하고, 이 자리에 외부 인사인 안 사장을 선임한 바 있다. 만약 주총에서 안 사장 대표이사 안건이 상정된다면, 안 사장은 취임 한달 만에 대표이사로 고속승진하는 셈이다.

안 사장은 1984년 포스코에 입사한 뒤 34년간 생산 현장에서 일한 철강 엔지니어 분야 전문가다. 포항제철소 설비기술부장, 포스코건설 상무, 광양제철소 설비담당 부소장, 기술위원 등을 거치며 수많은 경험을 쌓았다. 업계 관계자들이 안 사장에 대해 입을 모아 ‘철강 전문가’라고 말할 정도다. 

안 사장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는 현대제철에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현대제철은 대내외적으로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놓여 있다. 건설 등 수요 산업이 침체되고, 글로벌 공급과잉과 각국의 보호무역조치 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20조원을 넘는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지만, 오히려 영업이익은 1조261억원으로 전년보다 25% 줄어들었다. 또한 관련업계는 아직 현대제철이 철강 고급재 시장(자동차 강판, 조선, 가전제품 등)에서 포스코에 비해 뒤처진다고 평가한다.

때문에 그동안 안 사장이 포스코에 쌓은 노하우가 현대제품 제품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어 과거 포스코에서 '살림꾼'으로도 활약한 안 사장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다.  

현대제철 안동일 사장 (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 안동일 사장 (사진=현대제철)

그러나 동종업계로 이직한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갈리는 상황이다. 포스코에는 퇴직 후 2년간 경쟁사로 이직을 제한한다는 내용의 ‘이해충돌 방지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안 사장 이직 소식이 전해지고 양대 포스코 노동조합(한국노총, 민주노총)이 즉각 반발에 나섰다. 일부 직원들은 “그간 직원들에게 정보보안을 강조하고, 퇴직서약서 작성을 통해 취업길을 막아놓고는 정작 임원은 경쟁사로 이직했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한국노총 노조는 ‘이게 포스코의 윤리냐? 비리임원 안동일은 배신자다’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반발하고 나섰다. 또한 민주노총 노조도 안 사장의 현대제철행을 철회하라고 맞서고 있다.

논란이 계속되자 포스코는 임직원 설득을 통해 진화에 나섰다. 지난달 19일 사내 이메일을 통해 "현대제철은 경영 이슈를 고려해 철강생산 및 설비 분야 경험이 있는 안 전 사장의 영입을 결정하고 당사의 양해를 구했다"고 전했다. 또 "국내철강업 경쟁력 향상이 필요하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요청을 양해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포스코 해명에도 논란은 진화되지 않고 있다. 현재 양측 노조는 “기술정보 침해가 없을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이어 "기술 유출이란 꼭 문서화로 작성된 부분만 뜻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가 넘어가는 것도 기술 유출이다. 양해를 구한 근거를 제시하라"고 다시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관계자는 "모두가 알다시피 현재 철강업계 상황이 좋지 못하다. 현대제철 입장에서는 문제가 내부에서 해결되지 않아 외부 영입을 통해서라도 상황 타진을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안 사장이 신임 대표이사에 오를 가능성은 높게 점쳐지고 있다. 이에 현대제철 관계자는 "주총에서 결정되는 사안까지는 알지 못한다. 현재 추측성 기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주총이 끝나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 이라고 했다.

당진제철소 전경 (사진=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전경 (사진=현대제철)

한편, 현대차그룹은 이번 현대제철 인사에 이어 주요그룹 신입사원 정기공채 폐지와 현대차 자율복장 도입 등 보수적인 조직문화에서 탈피해 유연한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파격적인 행보는 현대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주도했다고 알려진다. 정 수석부회장은 기업 내부를 이번 기회에 혁신하겠다는 의지다. 지난해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사실상 경영승계 절차에 돌입했다. 이에 이번달 주총에서는 현대차, 현대모비스 사내이사 재선임과 대표이사 선임 등 경영승계 절차와 관련된 안건이 처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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