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만든 사람의 것이라기보단 그 음식을 맛본 사람의 것입니다. 저마다 음식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고 입맛도 천차만별입니다. 저도 수많은 음식의 소유자들 가운데 한 명일 뿐이어서 근엄한 자세로 후기를 남기기 꺼려집니다. 고민 끝에 생각해 낸 묘수가 농담입니다. 기자라고 해서 언제나 도학자처럼 정숙한 태도로 밥을 먹진 않으니까요. 닭 한 마리 주문해도 서로 다리 먹으려고 승강이 벌이는 각박한 세상입니다. 음식을 앞에 두고 농담 몇 마디 건네다 보면 잠시나마 각박함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저와 농담 몇 마디 나누지 않으시렵니까?<편집자주>

신민경 기자.

[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퀴퀴한 담배냄새에 찌든 어두운 PC방의 모습은 과거가 됐다. 흡연구역과 금연구역이 엄격히 분리된지 오래다. 이제 가게 안엔 달콤한 포도향이 짙게 풍긴다. 무한 근거리 무선망이 24시간 내내 운영되고 언제든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다. 

PC방에 자주 가는 편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컴퓨터게임을 할 줄 모른다. 영화보러 간다. PC방에서 영화를 보는 까닭은 2가지다. 하나는 1편 보는 데 1만1000원이나 내야하는 영화관이 부담스러워서다. 또 하나는 제대로 자세를 갖추고 관람을 시작해야 중도에 끊지 않고 끝자막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몰입은 영화 관람의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다. 집단이 함께하는 영화관에서 몰입이 가장 잘 된다. 하지만 편당 1만원을 상회하는 비용을 지불할 자신이 없는 기자는 그 돈을 넷플릭스 월 이용료와 PC방 이용료에 투자한다. 영화가 보고 싶으면 인근 PC방에 가서 넷플릭스 영화를 본다.

PC방엔 사람이 많고 개인마다 안락한 의자가 마련돼 있다. 한 공간에 갇혀(?) 일시정지도 못하고 끝까지 봐야하는 상황을 얼마든지 연출할 수 있는 것이다. PC방이 '문화 살롱'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미드 프렌즈를 감상하며 피시방 주문 음식을 먹고 있다. ⓒ신민경 기자
미드 프렌즈를 감상하며 PC방 주문 음식을 먹고 있다. ⓒ신민경 기자

최근 인천 연수에 위치한 아이센스리그 PC방을 찾았다. 아이센스리그 PC방은 전국에 가맹점 500여곳을 뒀다. 연수점에는 8세대 커피레이크 계열의 코어 i5 고사양 컴퓨터가 즐비했다. 고성능 그래픽카드인 GTX1080가 탑재돼 있어 영화 관람도 신속하고 선명하게 즐길 수 있다. 전 좌석에 7.1채널 헤드셋과 이중 마우스가 구비돼 컴퓨터 이용이 편리했다. 마음에 드는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은 후 기존에 가입했던 정보로 로그인을 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무인 선불기 키오스크로 가서 신용카드로 5000원(6시간)을 충전했다. 시간당 1000원이고 6시간 등 장시간 결제부터는 할인이 적용된다.

이용시간을 꽉 채우고 나니 애꿎게도 빈 배 속이 연방 꼬르륵거렸다. 그제서야 아침밥을 거르고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컴퓨터 화면 상단의 '상품 주문' 단추를 누르고 매운치즈삼겹덮밥과 복숭아 아이스티, 갈비튀김만두를 주문했다. 우동장국과 단무지는 밥류 주문 시 무료로 제공된다. 총 9000원이다. 주문방식은 간단하다. 먹고 싶은 음식들을 선택해 주문목록에 담은 후 결제수단을 정해 주문 단추를 누르면 된다. 주문 시 요청사항도 입력할 수 있다. 매운 음식을 못 먹는 기자는 "최대한 안 맵게 해주세요"라고 덧붙였다.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미국드라마 '프렌즈' 시즌1의 9화를 보기 위해 넷플릭스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극중 레이첼이 "베일로 가는 티켓을 샀다"며 기뻐하는 장면이 나오는 가운데 음식이 배달왔다. 주문한지 15분 만이다. 음식을 받자마자 피시방 직원에게 신용카드를 건넸고, 직원은 계산대로 가서 결제 후 카드를 돌려줬다. 요리하기 귀찮고 무작정 쉬고 싶을 때 'PC방 식사'는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직접 이동하지 않아도 앉은 자리에서 주문과 결제, 식사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센스리그 PC방은 지난해부터 먹거리브랜드인 '쉐프앤클릭' 사업을 개시했다. 아이센스그룹 본사가 직접 개발한 음식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인데, 음식 판매가 PC방 전체 매출의 40%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단순한 가공식품이 아닌, 제대로 된 한 끼 음식들을 판매하기 때문에 점심과 저녁 시간대에도 소비자들이 좌석을 이탈하지 않고 컴퓨터 이용에 집중한다. 게다가 '혼밥'(혼자 먹는 밥) 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PC방에선 대담해진다. 서로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컴퓨터 게임만 즐기고 있기 때문에 쫓기듯이 주변 살피며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

주문한 음식들 가운데 먼저 눈에 띈 것은 단연 매운치즈삼겹덮밥이었다. 매운 맛을 잘 못 견딘다. 하지만 글로 맛을 표현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자는 이미 '잘 아는 맛' 보단 '모르는 맛'을 경험하기로 결정했다. '안 겪은 걸 자꾸 해야 안 해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꾸려면 체험을 바꿔야 한다고' 했던 어느 건축가의 말을 행동에 옮기고 싶은 충동이 들었기 때문이다.

밥을 비비기 시작하자 모짜렐라 치즈가 덮밥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쭉쭉 늘어난다. 그렇게 첫 술을 떴다. 어슷썰기한 대파와 깍둑썰기한 자색양파, 채썰기한 양상추 등이 입 안에서 얇은 삼겹살과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잘게 썰린 버섯도 고기의 풍미를 더했다. 눈물이 날 만큼 매웠지만 꼭꼭 씹어서 천천히 삼켰다. 불닭 소스으로 매운 맛을 냈는지 고추장을 잔뜩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운 맛을 견디기 어려워 끊임 없이 아이스티를 들이마셨다. 

매운치즈삼겹덮밥 ⓒ신민경 기자
매운치즈삼겹덮밥 ⓒ신민경 기자

어릴 적 내게 돼지고기덮밥의 필수조건의 단 하나였다. 돼지고기의 양이다. 고기만 많다면 잘 만든 덮밥이다. 맵냐 안 맵냐, 치즈가 들어갔냐 안 들어갔냐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한 술에 하나의 고기만 얹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아주 만족스러운 한 끼가 됐다. 매운치즈삼겹덮밥은 어릴 적 나의 기준을 완전히 충족할 만큼 돼지고기가 풍성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기자의 입맛엔 어딘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매운 맛을 빼면 남는 게 없다. 음식이 나올 때부터 모래알처럼 퍼져 있던 흰 쌀밥은 딱딱하게 굳어 있어 재료들과 잘 섞이지 않았다. 요금을 더 받더라도 고슬고슬한 흑미밥으로 대체했더라면 더 좋았을 듯 하다. 

매운치즈삼겹덮밥, 질적으로 미흡하기 때문에 양적으로 보상하고자 애쓴 음식이었다. 단품으로 시키면 5500원이고 아이스티와 함께 모음상품으로 주문하면 7000원에 먹을 수 있다. 따로 따로 시키는 것보다 500원 절약된다.

덮밥의 캡사이신이 통각을 자극해 괴롭던 찰나 갈비튀김만두를 집었다. 만두는 총 6개였다. 칠리소스에 찍어 먹으니 만두가 느끼하지 않고 오히려 산뜻했다. 포크로 힘겹게 만두피를 갈랐다. 연한 갈색 고기소가 보이면서 갈비와 파 향이 퍼졌다. 껍질이 두껍지 않아 질감도 좋았다. 가격은 2000원이다. 웰치스 딸기맛과도 어울릴 듯한 착한 간식이다.

지금껏 어떤 배달음식도 기자 집 문지방을 통과한 적이 없었다. '배달음식의 위생상태를 믿을 수 없다'는 가족의 압력을 거스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조금씩 '작은 일탈'을 감행했고 뜻밖의 행복을 느꼈다. 그런 일탈 가운데 하나가 PC방에서 영화를 보면서 음식을 먹는 일이다. 올해 최저시급은 8350원이다. 최저시급은 보통 그 시대의 한 끼 밥값을 의미한다. 오늘 PC방에서 프렌즈 시즌1 전체를 다 보면서 먹은 전체 밥값도 최저시급을 웃도는 9000원이다. 보다 값싼 떡볶이와 참치마요 모음 상품을 구매하면 단돈 5000원에 특별한 취미생활을 누릴 수 있다.

오늘의 음식 앞 농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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