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석대건 기자] 문재인 정부는 ‘규제 혁신’을 내세우며, 그 핵심 정책의 하나로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시행 중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말 그대로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모래 놀이터, 기업이 신청하면 정부가 열어주는 방식이다.

이전 정부는 입맛대로 골라 규제를 없애려 했기에 유야무야 됐던 ‘전봇대’ ‘손톱 밑 가시’ 뽑기의 시행착오를 겪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지가 과했던 것일까? 기대가 컸던 탓일까? 제도 초기부터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 설명회에 참석한 스타트업 대표는 “결국 또 서류 싸움 아니겠느냐?”며 서류 작업에 대해 토로했다. 정부가 규제 혁신한다며 꺼내든 제도 역시 다른 지원 사업과 같이 서류 일색이라는 지적이었다.

기업이 규제 샌드박스를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신청 트랙에 맞춰 ▲ 신속처리는 2건 ▲ 임시허가는 4건 ▲ 실증규제 특례는 4건의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추가로 임시허가 트랙과 실증규제 특례 트랙의 경우, 사업자등록증 등 신청하는 기관(단체)의 현황자료와 신청기관 인감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규제 혁신을 내세우며 야심차게 추진 중인 규제 샌드박스의 출발이 원활해 보이지 않는다. 혜택을 받기 위한 과정이 서류과정이 복잡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규제 혁신을 내세우며 야심차게 추진 중인 규제 샌드박스의 출발이 원활해 보이지 않는다. 혜택을 받기 위한 과정이 서류과정이 복잡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글쓰기 수업이라도 받아야할 판" 

우선 신속처리 트랙은 1) 신청서 2) 기술 · 서비스에 대한 설명서의 2건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모빌리티 스타트업 관계자는 기술 · 서비스를 설명하는 방식이 모호하다고 밝혔다. 그는 “신청서를 적는 내내 글쓰기 수업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잘 설명해야 무난하게 통과 될텐데 걱정이다”고 토로했다. 이어 “처음 투자받기까지 3~40번은 거절 당했다”며, “공무원이 투자사보다 융통성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덧붙였다. 

신속처리 트랙은 규제 샌드박스 혜택을 받고자 하는 기업이 사업 관련 규제가 애매할 경우에 신청하는 트랙으로, 신청서를 받은 관련 부처는 규제 여부를 30일 이내에 답변해야 한다. 

그 기간동안 별도 회신이 없으면, 규제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기업은 ‘임시허가’ 트랙으로 전환해 신청할 수 있다.

스카이캐슬도 돈, 샌드박스 신청도 돈

더욱 모호한 신청은 임시허가 트랙이다. 임시허가 트랙에 필요한 서류는 1) 임시허가 신청서 2) 사업계획서 3) 임시허가 신청 사유 4) 기술 · 서비스의 안정성 검증 자료 및 이용자 보호방안 등 4건이다.

임시트랙 신청서에 대한 기업인들의 볼멘소리도 많았다.

콘텐츠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 대표는 “사업계획서에서 ‘사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적으라는데, 솔직한 말로 수익 아니겠느냐”며, “말 들어보니 국민 편의가 중요하다고 하니 최대한 잘 써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들을 설득해달라는 것인데, 결국 말발 좋으면 장땡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지난17일, 카카오페이와 KT가 '고지서 모바일화' 관련
1호 ICT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했다. (사진=KT) 

또 중소기업으로서는 어려운 자료 요구에도 불만이 나왔다.

‘기대효과’를 적어야 하는 작성란과 관련, “수치가 나올수록 좋다”는 정부의 답변에 대해 그는 “관련 연구도 발주하고, 여러 측면에서 추정치도 내보고 싶지만 모두 돈”이라며, “직원도 많고 연구기관도 잘 갖춘 대기업 상황처럼 인식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것까지 적어야 하나?”

실증규제 특례 트랙의 경우도 임시허가와 비슷한 불만들이 나왔다. 다만, 실증규제 특례는 현행 법 · 제도에서 금지하고 있거나 안정성에 염려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을 이유로 신청하기 때문에 요구 수준이 더 높았다.

헬스케어 기업 관계자는 “신청서 작성 내용 중 발생가능한 시나리오로 피해 구제 방법을 적으라고 나온다”며, “물론 사업하려면 보험도 들고 해야지만 중소기업으로서는 과하다”고 밝혔다. 

이미 법에서 정해놓은 필수 대책은 마련했음에도, 모든 상황을 기업에게 책임지라는 꼴이라는 설명이었다. 해당 관계자는 “고민하다 보니 도박하는 느낌 마저 든다”며, “신청할 사업을 꼭 하는지 다시 고민해봐야겠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구태의연한 신청 서식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IT 관련 대기업 관계자는 “현황자료에도 보면 특허까지 적으라고 나왔는데 특허청 검색하면 나오지 않느냐”며, “왜 일을 더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임시허가 트랙과 실증규제 신청기관 트랙에 필요한 현황자료에는 ‘주요 사업’ ‘주요 인허가 사항’ ‘보유기술 및 특허’ ‘재무상태’ ‘조직도’ ‘주요인력 현황’ 등 7가지 사항을 추가로 적어야 한다.

정부도 이러한 신청서 작성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있다.

이창훈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규제 샌드박스팀 팀장은 “종이 서식이 아닌, 인터넷을 통해 신청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개선할 예정”이며, “신청서를 전문적으로 컨설팅해줄 인원도 배치했다”고 설명회에서 밝혔다. 규제 샌드박스 컨설팅 그룹은 8인으로, 변호사 2명·인터넷기업협회 2명·NIPA 4명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여전히 규제 샌드박스의 길은 멀어 보인다. 

규제 샌드박스 법률 상담을 위해 또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자료=규제 샌드박스 홈페이지)

지난 29일, 규제 샌드박스 홈페이지에는 일반 상담과 별도로, ‘법률 상담’을 시작한다는 공지가 올랐다. 일반 상담이 규제 샌드박스 신청방법이나 서류 사항에 대한 내용이라면, 법률 상담은 법 관련 사항만 따로 보겠다는 것. 문제는 또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1호 규제 샌드박스 신청에 대한 IT 스타트업 대표의 지적은 지금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무리 상징성을 고려하더라도 고지서를 모바일로 만드는 신청인데, 그걸 종이로 주고받는 건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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