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석대건 기자] “규제 샌드박스는 우리 정부가 처음 가는 길입니다.”

지난 10일, 규제 샌드박스 시행 브리핑을 마친 이진수 과기정통부 인터넷제도혁신과장은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정부 스스로도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크다는 걸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규제 샌드박스 역시 또 하나의 규제라는 볼멘소리가 벌써 나오고 있다. 

긁어 부스럼 혹은 빚 좋은 개살구

IT 플랫폼 스타트업 대표는 “긁어 부스럼”이라며,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서비스도 괜히 신청했다가 시간만 더 끌게 된다”고 규제 샌드박스 신청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규제 샌드박스 신청 시 최대 60일 이내 심의 결과를 알려줘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 통과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두 달을 허비할 바엔 차라리 심의를 신청하지 않겠다는 것. 

또 “가만 두면 있는지도 모를텐데, 애매한 규제를 괜히 건들었다가 확정된 규제로 만들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관성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제도는 제거보다는 제재에 가까웠다.

해당 기업 대표는 제도 존재 여부와는 별개로 사업을 진행하겠다며 “사업을 하다가 문제가 되면 그때 보면 고민하면 된다”고 관계자는 덧붙였다. 

대기업 군도 마찬가지다. 우선 관망하는 분위기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규제 샌드박스 진입 여부에 대해 "규제로 인해 당장 힘들다고 분야는 없다"며, "(규제) 샌드박스에 들어갈 만한 게 없다"고 지난 21일 밝혔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사진=SK텔레콤)

심의위원회가 어떻게 시장을 대체하나?

기업인들은 사업성에 대해 판단하는 심의위원회의 역할에도 불만을 내비쳤다. 

모빌리티 관련 업계 관계자는 “사업 혁신의 여부는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라며, “만약 심의위원회에서 안된다고 했다가 시장이 나갔더니 성공하면 어떻게 보상하느냐”고 말했다.

이어 “규제혁신을 손톱 밑에 가시라고 뽑는다고 하는데, 이미 가시는 사업자 등록 전에 따져 보고 시작했다”며 지적했다. 사업은 도박이 아니라는 것이다.

헬스케어 관련 스타트업 관계자는 “헬스 케어 분야 역시 카풀처럼 분명 큰 이슈가 될 것”이라며, “규제 샌드박스가 카풀 문제를 해결하면 그때 고민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현재 카카오모빌리티는 카풀 서비스를 전면 연기했으며, 규제 샌드박스 신청 여부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규제 샌드박스 발표 이후, 신청 관련 문의가 폭증했다고
과기정통부는 밝혔다. (사진=규제 샌드박스 홈페이지)

정부도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하지만 정부로서는 방법이 없다. 규제혁신의 열쇠를 기업에 넘긴 셈이다. 심의의 첫번째 절차는 기업의 신청으로, 기업이 신청하지 않으면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는다. 

전봇대에 비유하자면, 이명박 정부는 자의적으로 뽑고 심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뽑을 전봇대를 알려주면 뽑아주겠다는 것. 의견 수렴의 창구를 열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탓 일변도'의 기업의 무책임한 태도에도 문제가  대한 지적도 나왔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기업들도 정부 규제 탓만 하면서 자기들 말만 들어달라고 했지, 제대로 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카카오톡을 봐도, 그들은 정부가 규제를 풀어서가 아니라 기존 기업 틈새에서 혁신 아이템으로 성장한 것”이라고 밝혔다.

2010년 출시된 카카오톡은 출시 초기, 와이파이 기반으로 요금제에 상관없이 무제한 통화와 문자를 제공해 기존 통신사들의 불만 대상이 됐다. 그러나 현재 카카오톡의 국내 점유율은 약 95%에 달한다. 

정부 관계자는 규제 샌드박스에 대해 “정부도 나름 강수를 둔 것”이라며,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되면 시행하게 될텐데 이해관계자 갈등을 정부가 모두 받아야 하고, 내부적으로도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다”며 토로했다. 

첫 발자국일까? 또 헛발질일까?

백범 김구 선생이 인용한 조선 후기 시인 이양연은 '눈길 함부로 걷지 말라며, 그 발자국이 뒷사람의 길이 될 것’이라 적었다. 

결국 규제 샌드박스가 광복 이래 이어져온 규제 일변도 정부 정책을 풀어낼 첫 발자국일지, ‘규제 전봇대’ ‘손톱 밑 가시’를 이은 규제 헛발질의 연속일지는 기업과 정부 사이 불신 해소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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