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최근 서울 용산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본사에 들렀다. 졸려서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평소 보지 못했던 로봇이 기자 앞을 지나쳤다. 복부 쪽에 자기 몸만 한 큰 화면을 매달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잠이나 깰 겸 회사 돌아가는 소식도 접하고자 가까이 갔다. 눈을 마주치고 앞에 서니 신나게 움직이던 로봇도 멈춰섰다.

회사 정보와 구내 동선을 일러주는 안내로봇이다. 이름은 아모레봇. 현재 시범 운영 중이어서 추후 명칭이 바뀔 수 있다고 한다. 첫 화면을 누르니 "아모레퍼시픽의 본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는 문구가 들렸다. 

ⓒ신민경 기자

이어 화면에 뜬 '사옥 둘러보기'를 눌렀더니, 사회와 공동체, 직장, 역사 등 4분류로 나뉘어 각각 영상과 사진, 글이 떴다. 먼저 사회 범주를 누르고 영상을 감상했다. 영상은 아모레퍼시픽 본사 신사옥 건축물의 사회적 의미를 설명했다. 건축을 통해 자사의 역할과 가치를 보여주고자 했다는 것인데, 필로티와 루프 정원,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등이 그 예다. 신사옥 건물 정면 외벽은 햇빛을 막는 나무 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유선형의 수직 알루미늄 판이 외벽을 이루는 재료로 사용됐다. 이러한 건축물 구상의 가운데에는 사회적 가치의 환원이 있다는 게 아모레퍼시픽의 설명이다.

공동체 범주에선 아트리움에 관한 설명이 주를 이뤘다. 아트리움이란 일반 시민에게도 개방된 공간을 일컫는다. 영상에서 최보민 아모레퍼시픽 운영담당자는 "아모레퍼시픽 신본사의 로비와 지상층 일부는 시민에게 개방돼 있다"며 "아트리움은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직장 범주에선 사내 직원들이 직접 사옥 내 담화공간인 '허브'와 운동을 할 수 있는 '아모레퍼시픽 피트니스' 등을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역사' 범주에선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시기와 신사옥 준공시기 등을 개괄적으로 톺아볼 수 있었다. 제공된 정보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의 선대회장인 서성환은 지난 1945년 개성에서 창업해 1956년 서울 용산구 한강로에 건물을 세웠다. 이어 지난 2017년엔 미용업체로서 용산의 상징적인 건물로 거듭나기 위해 같은 부지에 다시 신본사를 건립했다. 

아모레퍼시픽에 관해 기자가 아는 것이라곤 서성환 선대 회장이 미술에 조예가 깊었다는 점과 그의 수집품이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다뤄졌다는 것뿐이었다. 또 설화수와 헤라 등의 고급브랜드와 에뛰드 하우스, 이니스프리 등 로드숍(길거리 매장) 브랜드를 동시에 품은 화장품·생활용품 기업이라는 사실만 숙지한 상태였다. 하지만 약 10분 동안 로봇의 이곳저곳을 눌러 감상함으로써 본사의 건물 외관 모티프와 준공 역사, 구내 입점 가게들의 개략적 위치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로봇을 비치한 목적은 잘 모르겠지만, 비용을 상쇄할 만큼의 소비자 인지 효과는 충분히 달성할 듯 싶다. 

로봇이 보여준 영상의 소리가 커 재생하기가 민망했다. 같이 간 동료가 너무 시끄럽다며 로봇의 귀를 막아버렸다. ⓒ신민경 기자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사옥 둘러보기'를 누르자마자 나타나는 범주 4가지에 관한 영상의 소리가 아주 크다. 한 안내데스크 직원은 "로봇 화면에 준비된 모든 영상들의 소리가 본관 전체에 울릴 만큼 크다"면서 "방문객들이 재생했다가 깜짝 놀라곤 한다"고 말했다. 기자도 영상을 틀 때마다 구내에 크게 번지는 소리크기가 자꾸 신경 쓰여, 내용에 몰입하지는 못했다.

아모레퍼시픽에 따르면, 사옥은 지하 7층, 지상 22층 규모로 대지면적은 1만4525㎡(약 4400평)다. 직원이 아닌 방문자도 본사 지상 3층과 지하1층까지는 둘러볼 수 있다. 하지만 꽤 넓은 구내 면적 탓에 매일 들르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목적지를 찾다가 길을 잃을 가능성도 크다. 아트리움 1층(로비)에는 오설록,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의 로비, 박물관 기념품 판매가게, 소규모 전시공간인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캐비넷, 예술서적 전문도서관인 아모레퍼시픽랩(apLAP) 등이 있다. 기자와 같은 '길치'를 위해 이런 안내로봇을 만들어 화제를 더한 것 같다. 

로봇을 둘러보다 보니 갑자기 뱃속에서 '구라파 전쟁'이 벌어졌다. 아침도 먹지 않고 출근한 탓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복을 초래한 것은 결국 몇분이라도 더 자겠다며 이불을 꼭 붙잡고 있던 기자의 게으름 탓이었다. 우울한 기분으로 무엇이라도 사 먹을까, 아모레로봇의 화면에서 '업장/시설찾기' 단추를 눌렀다. 수많은 음식점과 카페, 편의시설이 눈 앞에 나타났다. 각 매장 별로 대표음식의 사진과 설명이 간략히 나와 있어, 바로 어느 곳을 선택할지 결정할 수 있었다.

'리김밥'을 선택했다. 고급스런 김밥을 아침으로 먹으면 기사가 잘 써질 것 같아서다. '리김밥' 매장을 손으로 누르니 작은 알림창이 추가로 떴다. 영업시간과 전화번호, 주차권 제공 유무와 위치 등이 적혀 있었다. 그 아래 '위치 안내' 단추를 누르니 갑자기 "좌측 정면에 있는 하향 에스컬레이터를 타세요. 지하 1층 에스컬레이터 하차 후 왼쪽 앞 방향으로 가세요"라는 안내음성이 흘렀다. 확실히 음성 안내를 받으니 길을 찾아가기가 쉬웠다. 

로봇이 신기한 아이와 동행자가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신민경 기자

안내 받은 김밥집에 들어가 김밥 2줄과 국물 떡볶이, 달걀 덮밥을 시켰다. 배부르게 먹고 난 후 다시 1층 로비로 올라갔다. 방정 맞던 로봇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얌전히 안내데스크 옆에 위치해 있었다. 그 옆에서 로봇의 프로그래밍을 진행하던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하루 중 특정 2시간은 로봇이 쉬어야 하는 시간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오늘은 특수한 상황이지만 보통 평균적으로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로봇이 충전된다. 한 번 충전하면 하루 정도 돌아다닐 수 있다"며 "충전을 마치면 다시 안내데스크 주변을 스스로 돌아다니도록 프로그래밍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모레로봇 주변에는 늘상 아이들이 자리한다. 아모레로봇은 '말하는 로봇'에서 '길을 안내하는 로봇'으로 진화했다. 수시로 다른 눈 모양이 입력돼 보여지는 '귀여운 표정'은 덤이다. 엄마와 아빠 손을 잡고 걸어가던 아이들도 로봇을 발견하면 즐겁게 뛰어간다. 손으로 로봇의 이곳저곳을 만지고, 듣고, 본다. 곁에 있던 어른들도 '미용업체 로비에 들어선 길안내로봇'이 낯선지, 가까이 다가가 몇번 눌러본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본사를 방문하는 모두에게 잠깐의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만으로도 아모레로봇의 등장은 유의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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