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1994년 당시 SK케미칼은 세계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 원료 물질을 개발했다. 그리고 애경산업은 해당 제품을 유통하고 판매했다. 하지만 개발사와 유통사 모두 살균제 원료의 인체 유독성 검증에는 소홀했다. 지난 2011년 11월부터 현재(12월 14일 기준)까지 환경부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를 써 다치거나 사망해 신고한 피해자는 총 6239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확인된 사망자만 1374명이다. 또 지난 14일 갱신된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통계에 의하면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이 만들고 애경산업이 유통한 '가습기메이트'를 썼던 피해자는 1362명으로 추산된다. 피해자와 사망자 규모가 천 단위다. 피해자들 스스로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을 참사로 부르는 까닭이다.

하지만 SK디스커버리과 애경산업은 이같은 대규모 피해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는 질문에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은 해당 참사의 원인이 밝혀진지 5년 만인 2016년에 들어서야 전담 수사팀을 꾸렸다. 현재까지 옥시레킷벤키저와 롯데마트, 세퓨 등 몇몇 업체의 일부 임원만 기소돼 책임을 지고 있는 상태다. 지난 2월 12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SK디스커버리와 애경산업을 가습기살균제 표시광고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3월 29일 검찰은 가습기메이트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 지지난해 9월부로 5년간의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해서다. 검찰의 처분에 불복한 피해자들은 지금까지도 양사의 사과를 요구하며 1인시위 등 집중행동을 벌이고 있다. 

피해자·시민단체만 바쁘다

지난달 27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모여 가습기메이트를 개발한 SK디스커버리과 판매한 애경산업을 상대로 검찰에 재고발했다. 양사가 가습기살균제의 원료로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와 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를 사용해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는 것이다. CMIT·MIT성분 함유 제품의 단독사용자 245명 중에서 정부지원금을 받는 이는 10명에 불과다. 복수사용자 120명을 더해도 총 130명이 1·2단계로 인정 받아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나머지 90% 이상의 피해자들은 정부 지원금을 일절 못 받고 있었다.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시민단체 임원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양사에 대한 검찰의 적극적 수사가 이뤄질 때까지 집중행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달 11일에는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의 진상조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26일 직권조사 개시를 의결했다. 지난해 11월 24일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 문지방을 넘은지 13개월 만이다. 특조위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 참사의 내막을 밝히기 위해 올해 3월 출범했으며 활동기간은 1년이다.

특조위는 지난 17일부터 서울 도봉구와 마포구와 협력해 가습기살균제의 추가 피해자 찾기에 나섰다.  방송과 옥외광고물을 통해 홍보하고 잠재 피해자 등록을 위해 지역상담소를 운영한다. 지난 21일에는 가습기넷(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전현희 의원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구제를 위한 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는 1·2단계, 3·4단계 피해자들과 피해자단체 대표, 하미나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관 등이 참석해 정부의피해자 구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모의했다.

1인 시위 중인 전현희 의원 ⓒ신민경 기자
1인 시위 중인 전현희 의원 ⓒ신민경 기자

SK디스커버리-애경, 흡입독성시험 결과 내세워 책임 회피

질기도록 끝나지 않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가운데에는 흡입독성시험이 있었다. SK디스커버리과 애경산업이 무책임의 명목으로 내세우는 것도 바로 이 시험의 결과다. 

SK디스커버리가 제조하고 애경산업이 유통한 가습기메이트의 주 원료는 CMIT와 MIT다. 이에, 지난 2011년 정부는 SK디스커버리이 제조한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 관해 흡입독성시험을 진행했다. 이때 CMIT와 MIT 성분을 흡입한 쥐들에게서 폐 섬유화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고, 이에 따라 가습기 메이트의 인체 유해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1994년 당시 치러진 이 시험에 쓰인 장비와 환경, 조건 등은 모두 실제 피해자들의 상황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당시 호흡기가 약했던 아기와 임신부 등은 오랫동안 하루종일 독성 화학물질을 들이마셨다. 그러나 이들의 오랜 흡입기간은 시험 조건에 반영되지 않았다. 반영 조건과 시험 환경이 미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검찰은 해당 시험 결과를 토대로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일부 기업들의 책임을 면제해줬다.

최근 들어, 7년 전 진행된 흡입독성시험에 모순이 있음을 증명하는 논문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지난해 8월과 올해 10월에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각각 등재된 대구가톨릭대 GLP센터 논문들과 애경산업 제품을 쓴 쌍둥이자매 병증을 연구한 서울아산병원 연구팀이 지난 10월 발표한 논문이 양사의 주장을 반증한다. 또 2012년 영국 의학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MJ)과 2013년 의학지 콘텍트 더마티티스에 실린 연구결과, 2014년 영국 루이샴 병원 연구팀 논문 등이 CMIT·MIT의 유해성을 지적했다. 지난 2월 SK케미칼·애경산업 등에 표시광고법 위반으로 과징금을 부과하고 고발 조치를 한 공정위 자료에서도 CMIT와 MIT의 인체 유해성이 확인됐다.

두 성분에 의한 사망과 건강피해가 역학조사를 통해 확인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성분에 대한 노출과 건강피해의 원인적 연관성이 인정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지난 11월 8일 대구가톨릭대학교 GLP센터와 화학물질독성평가학과는 '가습기살균제 CMIT와 MIT의 기도 점적투여를 통한 임신마우스의 사산에 대한 영향'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냈다.

11월 8일 발표된 GLP센터 측 논문 '가습기살균제 CMIT와 MIT의 기도 점적투여를 통한 임신마우스의 사산에 대한 영향' 자료에서 발췌
11월 8일 발표된 GLP센터 측 논문 '가습기살균제 CMIT와 MIT의 기도 점적투여를 통한 임신마우스의 사산에 대한 영향' 자료에서 발췌

GLP센터 측은 시험 설계 시 최상위 독성결과를 유도할 수 있는 용량이 독성시험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원인적 연관성 확인을 위한 독성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학조사에서 추정된 노출용량이 아니라 건강피해인 '최상위 독성결과' 유도이기 때문이라는 것.

시험 결과 CMIT와 MIT 투여 기간인 7일 동안 새끼를 가진 쥐의 사망률을 측정한 결과 고농도군에서 투여 2일째 2마리가 사망했다. 가장 높은 농도군인 1.5mg에서는 일주일째 되는 날 1마리가 더 죽었다. 저용량군인 0.1mg과 0.5mg에서는 사망한 쥐는 없었다.

CMIT와 MIT를 투여한 후 살아남은 임신 쥐가 낳은 새끼의 출생수와 사산률에 관한 통계도 괄목할 만하다. 0.5mg과 1mg 등 저농도군에 노출됐던 쥐가 낳은 새끼의 사산률은 각각 2.47%와 10%였다. 하지만 1.5mg의 고농도에 노출된 쥐의 새끼는 사산률이 53.8%에 달했다. 또 CMIT와 MIT에 노출된 쥐로부터 출생한 모든 새끼는 저체중을 포함해 사지가 미발달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논문을 통해 고농도로 CMIT와 MIT에 노출된 임신부의 경우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입증됐다. 또 고농도군에 접촉했던 임신부로부터 태어난 신생아일수록 죽은 채 태어날 가능성이 높았으며, 1.5mg의 고농도군일 경우에는 사산아 가능성이 절반을 넘겼다. 또 CMIT와 MIT의 노출은 전신혈관계로의 체내이동뿐만 아니라 폐 이 외의 다른 장기 손상의 여지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연구를 진행했던 박영철 대구가톨릭대 GLP센터장은 디지털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제껏 A연구소의 독성흡입시험에서는 CMIT와 MIT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해당 성분을 쓴 애경산업과 SK디스커버리는 면벌부를 받았다. 수년 전에 쟁점화된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오늘날까지 문제가 되는 데 대한 가장 큰 원인은 잘못된 독성시험에 있다"고 말했다.

박 센터장에 따르면 기존 독성시험의 문제점은 두 가지다. 먼저 역학조사의 결론은 동물실험 결과에 우선한다. 하지만 성분 노출과 인체피해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신빙성 있는 역학조사 자료가 없다는 게 사회적으로 의견이 한 데 응집되지 못하는 이유다. 두번째는 독성시험의 오류에 있다. 독성시험은 가이드라인 독성시험과 인과관계를 위한 독성시험으로 나뉜다. 가이드라인 독성시험은 새로운 화학물질이 개발됐을 시 이로 인한 사람들의 건강피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안전용량을 설정하기 위해 시행되는 실험이다.

즉 실험의 목적은 해당 화학물질로 인한 역학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인체 대비 안전용량을 설정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가이드라인 독성시험에서는 독성이 나타나는 농도와 용량 지점만 찾으면 되기 때문에 독성이 나타나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문제는 기존에 A연구소에서 시행된 시험이 '인과관계를 위한 독성시험'이 아니라 '가이드라인 독성시험'이라는 것이다. 가이드라인 독성시험만으로는 CMIT와 MIT노출에 의한 건강피해 인과관계 여부를 입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박 센터장의 의견이다.

박 센터장은 "가습기살균제 관련 연구와 시험은 가이드라인 독성시험으로 이뤄졌다. 따라서 기존에 A연구소에서 내놓은 자료들을 참고할 수는 있어도 맹신해선 안 된다"며 "인과관계 확인을 위한 새로운 모델을 개발해 독성시험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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