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외롭고 처절한 싸움 시작도 안 할겁니다. 대형 자본과 인력을 동원한 대기업에 힘 없는 한 사람이 버틸 재간이 있나요. 여기까지 오는 길이 너무 외롭고 힘들었지만, 가정과 삶이 모두 결딴 난 마당에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진실 하나만 가지고 하루하루 붙잡고 있는 겁니다."

'부당 해고를 당했다'고 말하는 김철준씨는 전남 여수공장에서 7개월 동안 1인 시위를 하다가 올해 상경했다. 그는 지난 10월 29일부터 매일 오전 6시에 서울 역삼동 GS칼텍스 본사 앞으로 출근해 현수막 4개와 배너 3개를 설치하고, 오후 5시에 철수한다. 맡은 임무는 단 하나. 부당해고와 불법파업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지속하는 것이다. 그는 "회사의 흑막을 밝히고 노동자의 권리를 확인하기 위해 시작한 싸움이 이토록 질기고 오래갈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해고자 김철준씨 ⓒ신민경 기자
GS칼텍스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김철준씨. ⓒ신민경 기자

되짚어보는 '2004년 GS칼텍스 노조 와해' 의혹...진실은?

지난 2004년 7월 GS칼텍스(옛 LG칼텍스) 노동자들은 지역사회발전기금 조성,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 창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노동조합이 당시 내걸었던 3가지 핵심요구안은 현재의 시대적 요구와도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파업 당시 GS칼텍스의 당해 매출 순이익은 3400억원이었으나 지역 환원은 도외시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에 노조는 기업이 매년 매출액의 0.01%를 지역발전기금으로 출연할 것을 제안했다. 또 노조는 상주 비정규직 종사자 600명의 처우 개선을 위한 비정규직의 단계적 정규직화를 외쳤다. 공장 증설에 따라 늘어나는 일감을 신규 고용 대신 정규직 인원 축소와 비정규직 인원 증대로 해결하려는 기업에 맞서, 신규 인력 충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는 노조의 3대 요구안을 모두 거절했다. 교섭대상이 아니라는 명목에서다.

현행 노동법에서는 정유업계가 필수공익사업이다. 필수공익사업장인 정유공장에서의 노사교섭이 결렬될 시 노동위원회는 직권을 통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중재에 회부한다. 직권중재제도(이하 중재)는 파업 시 시민생활과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를 대비해 필수공익사업자의 파업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중재 이후에는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파업이 불법으로 간주된다. 

직권에 의한 중재회부 결정이 내려지면 이후 15일 동안 쟁의행위가 제한된다. 위원회의 중재재정이 월권인 경우 당사자는 중앙노동위원회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번복되기 전까지는 단체협약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중재는 사실상 노조의 합법적인 파업 돌입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헌법에 보장된 단체행동권을 제약한다고 볼 수 있다. 사용자들의 교섭 의지를 약화시키고 노사대면을 기피하게 만든다. 사측이 타결보다는 시간 끌기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김철준씨는 GS칼텍스가 중재를 통해 회사 차원의 파업 유도를 공모했다고 보고 있다. 당시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 결정이 내려진 상태에서 파업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불법 쟁의행위 집단으로 몰렸다. 파업 19일 만인 8월 9일 노조는 파업을 철회하며 흰 수건을 내던졌다. 파업 중에 사측에서 고발 당한 조합원 129명 가운데 김정곤 위원장 등 노조 지도부 8명이 검찰에 구속됐다. 또 조합원 23명이 해고됐고 145명은 감봉됐다. 235명이 정직 처분, 247명은 견책 처분의 징계를 받았다. 이로써 노조 조직은 와해했다. 김씨는 회사가 고의적으로 불법 파업을 촉발시켜 노조를 무력화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는 구조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중앙노동위원회를 매수했고, 중노위는 사측의 무리한 구조조정을 사실상 방관했다. 노조 파업에 돌입하자 사측과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주동자를 엄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으며 우리들을 불법파업 선동자로 취급했다"고 밝혔다.

ⓒ신민경 기자
해고자의 민원에 대해 지난달 대검찰청과 대통령비서실에서 답변을 보내 왔다. ⓒ신민경 기자

GS칼텍스, 구조조정-인건비 절감-배당금 합의로 22조원 챙겼나

당시 GS칼텍스 노조의 쟁의활동에 관한 조정 단계에서, 노동조합으로부터 1순위로 배제됐던 변도은 특별조정위원장이 중노위의 직권중재 위원으로 편입됐다. 중노위는 지난 2004년 7월 14일 '적정인원 확보와 고용안정제도 개선은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만료되지 않아 단체교섭 대상이 아니다'는 결론을 냈다. 하지만 변도은 위원장이 중노위를 주재하면서 기존 직권중재안은 철회됐다. 그 대신 같은 해 7월 23일 '인력의 효율적 재배치'라는 새로운 조정안이 타결됐다. 이에 따라 회사는 1500명에 대한 무차별적인 구조조정을 정당화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게 됐다. 김씨는 "사측은 원만한 구조조정 추진을 위해 노조를 무력화하고자 했고 불법파업과 공권력 투입을 위해 공장을 가동정지했다. 이때 조합원이 대량 징계됐다"고 밝혔다. 

먼저 구조조정 문제가 대두된다. 김씨에 의하면 공장증설 전 회사 임직원 수는 2984명으로 이 가운데 정규직은 2690명이었다. 그리고 공장증설 후인 2015년에는 회사 임직원 수 3027명, 정규직은 2811명이었다. 6조5000억 가량의 신규증설로 정규직 인원을 확보하겠다던 회사는 애초에 발표했던 것과 달리 1000명이 아닌 121명의 정규직 인원을 늘렸다. 하지만 이마저도 기존 비정규직에 속했던 87명을 기타로 포함시켜 정규직 인원을 늘린 것으로, 정식으로 정규직에서 고용이 창출되는 자리는 34명에 불과하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그는 대규모 부당 구조조정 뿐만 아니라 주주배당금 합의 항목도 문제 삼았다. 그에 따르면 GS와 칼텍스 간 배당금 합의사항이 이행되면서, 구조조정으로 인한 인건비 절감 비용(15년 간 약 4조6225억원)이 주주들의 배당금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주식공개 후 시세차익 약 18조를 더하면 회사가 총 22조원 가량의 부당이익을 남긴 셈이다.

김씨는 본사 징계위원회에서, 지난 1997년 칼텍스가 요구한 구조조정과 7년 후 GS와 칼텍스 간 연간배당성향을 40% 이상으로 맞춘 항목들로 비춰 볼 때 노조 무력화와 파업 유도는 애초에 계획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가 노조 말살과 주주배당금 합의로 빼돌린 돈이 무려 22조원이다. 사측은 이러한 부당행위가 밝혀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징계위원회 기간과 부당해고 소송기간 등 약 2년 5개월 동안 내가 회사로 출근하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고 말했다.

GS칼텍스 측은 이같은 김씨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해고자가 허위사실이 적시된 문서를 통해 회사에 지속적인 명예훼손을 입히고 있다"며 "그가 주장하는 바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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