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주말 아침에 택배가 오면 참 곤란했다. 잠옷 차림으로 택배기사를 마주할 수 없으니 급히 옷을 바꿔 입어야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불편함이 사라졌다. 택배사가 보낸 '위탁장소 지정' 선택지들 가운데 '문앞' 항목에 표시하면 되기 때문. 초인종 소리가 울리고 잠시 뒤에 문을 열면 택배 상품만 문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사와 대면하지 않고도 물건을 받아보니 편하고, 기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이동할 수 있어 좋다. 우리 사회의 높은 디지털 활용도와 개인주의 문화가 택배산업에도 침투한 셈이다. 돌이켜보면 택배산업은 매번 달라지는 시대의 요구를 서비스로 구현하기 위해 변화를 꺼리지 않았다.

인터넷 발달과 궤를 같이 한 택배산업

조선시대 후기에는 파발마가 있었다. 파발마는 긴급한 군사 정보와 공문서 등 공적인 연락을 서둘러야 했던 사람이 타던 말을 일컫는다. 굳이 따지자면 파발마가 택배서비스의 효시인 셈이다. 원조가 내뿜는 비장함을 그대로 차용해, 지난 1992년 한진택배가 파발마브랜드를 선뵀다. 국내 최초의 택배서비스였다. 현재 한진택배는 파발마의 의미를 좁혀 개인택배서비스 특화 브랜드로 활용 중이다.

한진택배 광고
한진택배 파발마 광고 ⓒ한진택배

우리나라에서는 한진이 지난 1994년 처음 익일배송 서비스를 개시했다. 주문하고 하루만 기다리면 물건이 집에 도착했다. 무려 24년 전부터 지금의 빠른 배송 형태를 흉내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당시에는 '삐삐'라는 무선호출기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손바닥 크기의 삐삐에 7942(친구사이), 1010235(열렬히 사모) 등의 숫자암호를 주고 받는 게 유행이었다. 이처럼 1990년대 중반은 '기다림의 미학'이 두드러진 시기다. 속도보다는 낭만이 중요했다. 사람들은 물건이나 상대방의 신호가 자신에게 닿을 때까지 생기는 '시간의 공백'을 기꺼이 '기다림'으로 채웠던 것이다.

하지만 낭만은 속도의 편리에 곧 따라잡혔다. 국내에서는 1997년 말부터 2세대 이동통신의 진화격인 PCS(개인휴대통신) 사업이 시작됐고 이동전화 요금이 대폭 낮아졌다. 이로써 삐삐가 퇴보하고 이동전화 가입률이 증폭했다. 택배산업에서도 속도가 주요 화두로 급부상했다. 1998년 1월부터는 편의점에서 연중무휴로 '24시간 택배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편의점 로손을 운영하고 있었던 코오롱유통과 한진택배가 손을 잡았기 때문인데, 편의점이 택배서비스의 주요 거점 중 하나가 된 것도 이때부터다. 직장인들은 편한 시간에 인근 편의점에 배달할 물건을 맡기면 돼 택배직원을 기다려야 하는 불편이 줄었다.

IMF 불황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후반 택배산업은 활황이었다. 정보통신 발달의 수혜를 직접적으로 받아, 21세기형 산업으로 통했다. 운영 중인 택배업체는 25개에 달했고 빅3인 대한통운(현 CJ대한통운), 한진택배, 현대물류(현 롯데택배)는 각각 20~60%의 매출 증가를 기록했다. 동아일보는 1999년 3월 30일자 기사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택배시장의 팽창에는 인터넷쇼핑과 통신판매의 발달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터넷이나 전화로 구입한 막대한 물량의 상품이 택배업체의 '발'을 이용하기 때문. 기업마다 택배산업에 대한 투자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화물 자동분류, 인터넷을 통한 화물추적 시스템 등 첨단체제를 갖추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의 당시 동아일보 기사 ⓒ동아일보

1999년 말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택배산업의 판도가 크게 바뀌었다. 국내 물류 빅3 업체는 전자상거래 사업팀을 발족시키고 종합인터넷쇼핑몰 시스템을 개발했다. 대한통운의 경우 1999년 9월부터 물건의 위치 추적 서비스를 제공했다. 온라인 쇼핑몰사이트에서 상품을 구입한 소비자들이 대한통운사이트가 아닌 해당 쇼핑몰사이트에서 화물 위치를 추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00년대 후반에는 도서 배송에도 속도 전쟁이 붙었다. 지난 2007년 인터넷서점 알라딘은 당일 주문하고 그날 수령 가능한 '당일 배송' 서비스를 개시했다. 예스24도 같은 방식의 '총알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인터넷 도서 주문은 값이 싸고, 오프라인 구입은 구매와 동시에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각각 일장일단이 있다. 소비자의 수요에 착안해 지난 2009년 5월 교보문고에서는 인터넷에서 주문하고 당일 서점에서 수령해가는 '바로드림' 서비스를 실시했다. 2년 후인 2011년 10월, 영풍문고도 '나우드림' 서비스를 내놨다.

배송과 관련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속도'가 당연한 가치로 자리잡자, 소비자는 다시 질적 만족감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롯데택배는 지난 2009년 9월 물류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카드결제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는 소비자들의 신용카드 사용률이 높아진 현실을 반영한 조처로, 현금에만 국한하던 택배요금의 결제수단이 보다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비교적 최근인 지난해 7월, 한진택배는 위탁배송 정보를 소비자에게 자동 전송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택배 배송 출발 메시지를 받은 소비자는 경비실, 무인택배함, 문 앞 등 위탁장소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모든 택배사가 해당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새누는 우리나라에서 디지털 무인보관시스템을 상용화했다. 지난 2008년부터 국립중앙도서관 등 다수 도서관에 무인보관시스템을 설치했으며 2014년에는 무인택배 보관시스템 보급형을 출시했다. 황선오 새누 대표는 "무인화는 거스를 수 없는 산업 추세다. 택배 수령자는 사람과 보관함 둘 중 하나다. 하지만 무인화가 대중적으로 선호되고 있기 때문에 택배보관함 산업에 큰 가능성이 보였다"며 무인택배보관함 서비스를 시작한 계기를 밝혔다. 이어 "현재 각계에서 무인택배보관함의 수요가 꾸준히 확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소비자들이 직장에서 택배를 받아 따로 보관할 수 있는 무인택배보관함을 내놨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위탁배송 장소지정이 가능해졌다. ⓒ신민경 기자

'택배 빅3'가 4차산업혁명에 대응하는 방식

택배산업은 역사 속에서 인터넷의 발전과 늘 궤를 같이 해 왔다. 4차산업혁명의 물결에 택배산업이 어떤 형태로 편승할지 기대되는 이유다. 국내 주요 택배사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택배에서 굴뚝이미지를 벗겨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먼저 한진택배는 농가와의 협력이 두드러진다. 한진택배는 지난해 농협과 사업 제휴를 했다. 농가 택배지원센터 개설, 산지유통 물류 프로세스 효율화 등으로 전국 농민들이 양질의 택배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외에도 한진택배 관계자는 "올해들어 백암 등 수도권 허브터미널 케파 확대 추진과 자동스캐너 도입, 자동분류기 증설, 간선 최적화 등 운영효율 제고를 위해 많은 부분 노력 중이다"며 "앞으로도 신성장동력 확보와 신규시장 발굴로 다양한 소비자층의 수요를 충족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롯데택배(롯데글로벌로지스)는 내년 3월 1일자로 롯데로지스틱스와 합병한다. 롯데택배는 지난달 29일 충청북도 진천군과 손 잡고 국내 최대 규모의 메가허브 물류센터(물류터미널)를 신설한다. 투자 규모는 약 3000억원대다. 롯데택배 관계자는 "이번 합병으로 해외현지 물류와 포워딩, 내륙수송과 창고운영, 라스트마일 배송을 한 번에 잇는 물류 영역이 확보될 것"이라고 말했다. 택배산업의 디지털화 진척도를 묻는 질문에는 "상하차, 분류기, 창고 등의 자동화와 물동량 예측, 적재율 관리 등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답했다.

CJ대한통운은 지난 4월 'CJ대한통운 스타트업 챌린지리그'를 열었다. 4차산업의 유망 기술인 증강현실(AR)과 이미지 인식과 관련해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이들과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해 물류에 접목하는 것이 CJ대한통운 측의 목표다. 회사 관계자는 "전자상거래의 발전으로 물류센터 내 소량다품종 주문작업이 급증하고 있다. 또 관계사의 주문과 입고, 출고 요청서 등의 단계별 서류가 이미지화돼 관리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AR과 이미지 인식 기술은 물류현장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3월부터 물류 스타트업과의 기술 협업 확대를 위해 300억원 규모의 ICT(정보통신기술)를 운영해 왔다. 앞으로도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물류의 첨단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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