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유커(중국인 단체관광객)가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의 족쇄를 벗게 됐다. 하지만 국내 화장품업계는 오히려 덤덤한 모양새다. 왕홍마케팅을 활용해 현지 구매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어서다.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사인 씨트립은 지난 14일 열린 임원 회의에서 '자국민의 한국 단체관광 상품'을 취급키로 결정했다가, 여론에 못 이겨 당일 철회했다. 씨트립은 상하이와 베이징, 홍콩 등 중국 내 중심도시 17개에 지사를 두고 있다. 비록 씨트립은 한국 관광상품을 자사 홈페이지에서 누락했지만, 현지의 일부 온라인 여행사들은 판매를 중단하지 않고 있다. 업계는 씨트립의 결정 철회에도 불구, 여타 여행사들이 순차적으로 한국 관광 상품 판매를 재개할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3월 사드 배치 이후 급감했던 중국인 방한객이 다시금 늘 것으로 예상된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지난 20일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 한 달간 외국인입국자 가운데 중국인이 32%로 가장 많았다. 중국인 총 49만 7048명이 방한했고, 이는 전월(45만 7387명) 대비 108.7%, 전년(36만 9944명) 대비 134.4% 증가한 수치다. 

(자료=법무부 출입국·외교정책본부)
(자료=법무부 출입국·외교정책본부)

사드 보복은 지지난해 4분기부터 본격화했다. 그 결과 지난 2016년 한 해 동안 중국인 826만 8262명이 입국했던 것과 달리, 2017년에는 반토막인 439만 3936명이 기록됐다. 하지만 올해 들어 한류상품에 대한 중국인의 수요가 다시금 개선되고 있다. 작년 1월부터 10월까지 중국인 방한객 수는 총 373만 1184명이었다. 반면 올해 동기간 수치는 이보다 112% 오른 417만 8396명이다.

유커는 화장품·여행업계의 주요 매출을 견인한다. 하지만 최근 중국 소비자들은 온라인을 통해 여행상품이나 화장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돌아온 유커'가 우리 기업들에 미치는 성과 또한 기대치를 밑돌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주요 화장품업계는 '돌아온 유커를 끌어들이기 위해 구상 중인 마케팅 전략이 있느냐'는 질문에 "국내의 유커보다는 중국 현지의 왕홍에 집중코자 한다"며 입을 모았다.

에이블씨엔씨의 화장품 브랜드인 미샤 측 관계자는 "유커의 귀환이 현재까지 체감될 정도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유커를 위한 전략은 세운 바 없고, 중국 현지에서 자사 상품의 영업력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제조하는 LG생활건강 측 관계자도 "사드 역풍을 맞은 지난해 2분기를 제외하고는 꾸준한 호실적을 이어 왔다"면서 유커 맞춤형 전략을 구상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대신 "자사 전략상품인 후, 숨 등의 고급 화장품이 중국 현지에서도 인정 받을 수 있게 현지 차별화한 마케팅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생활뷰티기업인 애경산업은 현지 온라인 판매에 주력한다. 오프라인이 중심이 돼야 하는 유커를 위한 전략이 준비되지 않은 까닭이다. 관계자는 "해외 현지인의 구매력을 향상하기 위해 왕홍(网红·중국판 파워블로거와 인기유튜버)과의 협업을 통한 마케팅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국 왕홍 (사진=simplifyway)
중국 왕홍 (사진=Simplify)

왕홍 마케팅을 활용한 기업은 실효를 거두고 있었다. 염모제와 모발관리 화장품 제조업체인 세화피앤씨는 지난 5월, 중국 왕홍 '콩지에CC'와 함께 타오바오닷컴 등 중국 4개 방송 채널을 통해 생방송 판매에 나섰고 완판이 났다. 이는 한국 화장품과 왕홍의 높은 동반 상승효과를 방증하는 사례다.

왕홍은 중국인들의 구매 품목도 다변화했다. 3년 전만 해도 유커가 구매하는 한국 편의점 상품은 제한적이었다. 바나나우유, 신라면, 초코파이 등 꾸준히 인기를 얻어온 음식이나, 김과 김치 등의 전통 음식이었다. 하지만 지난 7일 편의점브랜드 CU(씨유)가 밝힌 바에 따르면 올해 유커의 구입 품목은 국내 소비자들의 장바구니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간식으로 알려진 '게맛살'과 편의점표 후식 '모찌롤' 등이 매출 상위권에 기록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중국의 왕홍들의 영향권 내에서 비롯된 결과로 보인다. 이들이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널을 통해 최근 한국인이 즐겨 먹는 편의점 음식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커에 대한 화장품업계의 유치 의지가 잦아들고 있는 상황에서, 구매 형태의 변화 문제가 대두된다. 지난해 말 중국전자상거래연구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중국 전자상거래 수입 규모는 1조2000억 위안(약 195조7000억원)으로 전년비 33% 증가했다. 2017년의 경우 이보다 55% 오른 1조8543억 위안(약 302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즉 중국 내 전자상거래의 비율은 매년 전망치를 크게 웃돌고 있다. 국내 화장품업계가 오프라인 관광객 대신 현지 온라인 관광객에 집중하는 이유다.

유커도 국내 방문 의지를 줄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중국 화장품의 질이 자국 상품 수준을 따라잡았다는 점이 이유로 제기된다. 권기대 공주대 산업유통학과 교수(전 대한경영학회 마케팅분과 편집위원장)는 "중국인들의 화장품 복제 능력은 뛰어나다. 정치적 장애요인이 한국과 중국의 간극을 벌였지만, 이에 더해 중국의 모방성과 기술 추격도 유커의 마음을 돌리는 데 한 몫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판매하는 상품에는 동일하게 한국 브랜드가 표기되겠지만, 제조국은 다를 수 있다. 온라인 상에서 구매한 한국 화장품은 중국, 인도네시아 등의 제조품일 가능성이 높다. 방한을 통해 메이드인코리아 글귀가 적힌 제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원조 회귀 심리'를 이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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