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고정훈 기자] 전선업계 불황은 우리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다. 이미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세계적인 흐름이다. 그동안 전선업계 불황 원인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다양한 요인이 거론돼 왔다. 이 여파로 전방산업이 침체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새로운 일거리가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전기동(구리) 가격 하락은 전선업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전기동은 전선 제품 원가의 60% 정도를 차지한다. 물론 다른 업계도 원자재 가격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

'부진의 늪' 빠진 전선업계 

전선업계는 전기동 가격이 오르면 매출 상승으로 이어진다. 정유 가격이 오르면 항공·화학 업계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과는 정반대다.

구릿값이 상승하면 제조 원가도 오르지만, 이를 반영해 납품 단가를 올리기 때문에 매출도 뛴다. 반대로 전기동 가격이 내려가면 더 내려갈 것을 대비해 구매자의 구매 심리가 위축된다. 전기동은 2012년 이후 줄곧 하락세를 보였다.

불황은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LS전선은 2016년 기준 매출 3조755억원, 영업이익 811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도보다 매출 12.4%, 영업이익 30%가 하락했다.

초고압케이블(사진=LS전선 홈페이지)
초고압케이블(사진=LS전선)

대한전선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적자로 인해 재무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결국 2015년 IMM 프라이빗에쿼티(PE)에 팔렸다. 2016년 기준 대한전선은 매출 1조3470억원, 영업이익 487억원이다. 전년에 비해 매출은 11.7%가 감소했다. 

중견·중소기업은 더욱 상황이 안좋다. 국내 산업의 부진은 전선업계로 이어졌다. 계약금액을 초과한 전기동 가격 때문에 대형 프로젝트를 포기하거나, 파산하는 업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불황이 계속되자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은 최고경영자 세미나를 열고 현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 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전선 제조업 가동률은 72%에 머물렀다. 이중 대기업 가동률은 68%다. 중견·중소기업 가동률은 각각 85%, 70%로 대기업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다.

해외시장서 돌파구 찾는다

그러나 최대 3차에 이르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생산구조 때문에 가동률은 50% 이하라는 평가가 많다. 김상복 조합 이사장이 “우리 업계 대부분 업체들이 매출 하락과 수익감소에 시달리고 있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할 정도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국내 주요 전선업체들은 사업 조정에 나섰다. 수익률이 좋지 않은 사업은 접고, 고부가가치사업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정체기를 보이는 국내를 넘어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주요 업체들이 이같은 방법을 택한 이유로는 초고압케이블과 해저케이블이 일반 제품보다 전기동에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이는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사업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또한 해저케이블 생산은 진입장벽이 높아 생산할 수 있는 업체가 드물다.

LS전선은 유럽, 아시아 지역으로 시장을 확대했다. 지난해 3700억원대의 싱가포르 초고압 케이블 프로젝트를 따냈다. 이어 이탈리아, 덴마크, 아시아지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 2018년에 따낸 해외수주만 총 7건이다. LS전선의 올 상반기 매출은 14581억원으로, 영업이익은 361억원이다. 작년 대비 각각 11.1%, 4.3% 상승했다. 

LS전선, 베트남 이어 미얀마에 공장 설립

이 과정에서 LS전선은 해외 생산법인을 세워 비용 절감을 확보했다. 그동안 국내 업체가 해외시장에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가격 경쟁력이 거론됐다.

LS전선은 지난 2015년 베트남 생산법인인 LS전선아시아를 설립했다. 계열사인 LS-VINA와 LSCV를 앞세워 동남아시아에 케이블을 공급하겠다는 의도다. 두 계열사는 현재 베트남 전선시장에서 1위를 기록 중이다.

LS전선 미얀마 공장 조감도.(사진=LS전선)
LS전선 미얀마 공장 조감도.(사진=LS전선)

베트남은 한참 도시화가 진행 중이다. 이에 인프라구축에 따른 에너지 수요가 매년 10%씩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LS전선은 미얀마에 공장을 설립 중이다. 앞서 2017년 가온전선과 함께 현지법인을 설립해 자회사로 편입했다. 미얀마에 있다고 알린 LS전선 관계자는 “현재 미얀마 도시화는 30%로 정도로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높다"며 "14일 미얀마 공장 완공식이 열릴 예정"이라고 했다. 

대한전선도 올해 중동지역에서 약 708억원 규모의 초고압케이블 프로젝트를 수주한 데 이어 6월에는 싱가포르 전력회사로부터 약 816억원의 초고압케이블 전력망 구축 프로젝트도 따냈다.

대한전선은 시설 노후화로 인한 북미시장을 노리고 있다. 미국 케이블 시장은 세계 전선업체들이 모여들어 경쟁이 치열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전선은 지난 10월 249억원 규모의 배전용 케이블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 자체는 크지 않지만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첫걸음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한전선 '시설 노후화' 북미시장 공략

대한전선은 2017년 400kV 이상급 초고압 케이블의 매출을 전년 대비 5배 이상 늘렸다. 또한 배전 해저케이블을 수주하는 등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군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는 실적으로 이어져 대한전선의 올해 상반기 실적이 대폭 개선됐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현재 국내와 해외 사업 비중은 각각 40%, 60% 정도"라며 "앞으로도 해외 사업에 좀 더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업계는 당분간 이 같은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프라 투자 확대가 늘어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과 중동에서 30년 이상 노후 전력 케이블을 교체할 것으로 업계는 내다봤다.

대한전선 전력 케이블(사진=대한전선 홈페이지)
대한전선 전력 케이블(사진=대한전선 홈페이지)

또한 지난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출범 이후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구리 가격도 빠르게 오르는 중이다.

이밖에 5G 광통신, 특수선 시장과 남북관계 호전도 긍정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내수 시장의 불황과 성장이 더뎌 해외로 눈을 돌리는 업체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이런 현상은 내년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현재 업체들이 하나 둘 좋은 성적을 내는 만큼 내년에는 상황이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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