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박기태 기자] "밥은 먹고 다니냐?" 지난 2003년 상영된 영화 '살인의 추억(감독·봉준호)' 속 명대사다. '살인의 추억'은 1986년 발생한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극중 형사 박두만(송강호 분)은 증거 부족으로 풀려난 살인 용의자 박현규(박해일 분)에게 이 말 한마디를 툭 던진다. 이 말엔 '살인마인 너도 인간이냐'는 의미가 담겼다. 밥을 인간에 빗댄 것이다. 박두만의 눈엔 비인간적 범행을 저지른 박현규가 사람으로 비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 밥 한끼 때우기 힘들던 시절, 아침 인사는 지금처럼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가 아니었다. "식사 하셨습니까"였다. 당시엔 식사 여부를 물으며 서로의 안녕을 바라곤 했다. 밥이 곧 생존이었던 셈이다. 이는 아침 인사가 바뀐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 바뀐 건 메인 메뉴가 과거엔 밥이었다면 지금은 빵, 라면, 스테이크, 치킨, 스파게티, 피자 등등 셀수없이 다양해졌다는 것 뿐이다.

청정원 '런천미트'. (사진=식약처)
대장균이 검출된 청정원 '런천미트'.(사진=식약처)

그렇다. 음식과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주 각별한 관계'다. 먹지 않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살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인간이기에 먹어야 한다는 얘기도 된다.

그런데 음식이 풍부해진 요즘, 아이러니하게도 "먹을 게 없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정말로 먹을 게 없어 나오는 말이 아니다. 걸핏하면 터지는 '먹거리 논란' 때문이다. 최근엔 '청정하다'고 소문 난 술에서 총대장균군이 나왔고, 막 개봉한 분유에서 털이 묻은 코딱지도 발견됐다. 벌써 우리 뱃 속에 들어갔을지도 모르는 통조림 햄에서는 대장균도 검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소비자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업체 상당수가 해썹(HACCP,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인증을 받았다고 한다. 때문에 해썹이 제 기능을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해썹은 소비자가 식품을 안전하게 먹기 위해 위생적으로 관리하는 과학적인 위생관리체계를 말한다. 원재료 생산, 제조, 유통까지 식품의 모든 과정이 관리된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5년 처음으로 도입해 2002년부터 의무화하고, 매년 순차적으로 분야를 늘려가고 있다.

해썹이 제 기능을 못하는 이유론 관리·감독 인력 부족과 업체들의 도덕성 해이가 지목된다. 실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식품안전관리인증원 심사관 69명이 맡고 있는 업체는 1년간 신청 4000곳, 사후평가 7844곳이나 된다. 1명당 업체 170곳을 맡아야 되는 것이다. 게다가 사후관리는 보통 2인1조로 진행되는 데 인력 부족으로 1명만 투입되는 경우도 잦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제대로 된 관리와 평가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경미한 처벌이 업체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유해물질 또는 병을 일으키는 오염된 식품을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가공·조리해 영업정지 등을 받은 판매자에게 과징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이는 불법행위로 얻는 이익보다 적어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아예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어쨌든 먹거리 논란은 비단 어제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과거에도 지속적으로 발생해 왔다. 그렇다고 마냥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 정확한 원인 분석을 통해 시정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먹거리 불안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한끼 먹을 수 있는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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