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먹지?③] '먹거리 파동' 공방…"기업 탓" vs "언론 탓"
[뭘 먹지?③] '먹거리 파동' 공방…"기업 탓" vs "언론 탓"
  • 신민경 기자
  • 승인 2018.11.1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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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단체 "입증 책임은 기업에…적극적인 해결 선행돼야"
일각선 "보도 前 업체 실책 확증해야"…보도 지침 마련 촉구

[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음식에 관한 한, 소비자의 입맛은 특히 더 보수적이고 예민하다. 그런데 '먹거리 이물질 논란'이 연이어 터졌다. 구입한 제품에서 과오를 발견한 소비자가 이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나 커뮤니티 등에 알리며 비판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른바 '가해자'로 지목된 기업들은 즉각 사과하고 해결에 나서기보다는 해명을 위해 위생검사를 의뢰하는 등 대체로 미온적인 대처를 보였다. 소비자단체들은 이들이 '비위생적인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실적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관건은 대처 방식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의혹이 증폭돼 애꿎은 기업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식품기업 "무죄 입증 하겠다?"

지난 8월 한라산소주 생산 공장의 지하수 수질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분뇨배수 등에서 발견되는 총대장균군도 함께 검출됐다. 이에 식약처는 지난달 11일 한라산소주에 시설 개보수 명령을 내렸다. 한라산소주 측은 "부적합 판정은 물의 장시간 미사용으로 인해 발생한 일시적 현상에 따른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라산소주는 추가적인 논란 불식을 위해 윤성택 고려대 환경지구화학과 교수에 수질 관련 전문용역을 위탁한 상태다. 연구용역의 최종결과는 이달 내로 나올 예정이다.

대상 청정원의 멸균 캔햄 제품인 '런천미트'에서도 세균이 검출됐다. 식약처가 지난달 23일 청정원 런천미트 제품 가운데 지지난해 5월 17일자 제조품에서 세균발육 양성 판정이 나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상 캔햄 전 제품의 생산과 판매가 잠정 중단됐다. 청정원 측은 "멸균 등 제조 공정에 하자가 없었기에 세균이 검출될 리 없다"며 "정확한 원인 규명에 나서겠다"고 했다. 현재 대상은 식약처 현장검사 이외에도 회사 내에서 자체적인 원인 규명 조사를 진행 중이다. 다음 주 말에 결과가 나온다.

지난달 말에는 한 소비자가 남양유업의 '임페리얼XO' 분유를 구입해 개봉하자마자 코딱지로 추정되는 이물질을 발견했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남양유업 측은 지난달 30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분유 제조 공정상 이물질 혼입은 불가하다"며 "외부기관의 이물질 정밀검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증명하겠다"고 전했다. 이에 남양유업 측은 세스코 식품안전연구소와 고려대 생명자원연구소에 의뢰해 받은 조사 결과를 지난 9일 공개했다. 두 검사기관은 "해당 분유이물질은 공정 상 유입됐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측정했다.

(이미지=IFAC)
(이미지=IFAC)

소비자단체 "원인 파악은 후순위…적극적 해결 선행돼야"

이런 가운데 소비자단체들은 '먹거리 논란'에 대한 기업의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주문했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먹거리 논란에는 원인 규명도 중요하지만,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타격 최소화의 관건이 된다"며 "이물 혼입 논란은 모든 기업이 부닥칠 가능성이 있는 문제다. 논란 불식과 소비자 안심을 위한 실마리는 기업이 쥐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지만 최근 먹거리 파동이 일어난 기업들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며 소비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책임 전가 등 잘잘못을 따지는 데 급급하다"며 "해결보다 원인에 집중하는 대처 방식은 시간 지체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생존과 건강 문제와 직결된 '먹거리 산업'은 소비자의 일상과 매우 밀접하다. 때문에 소비자로부터 이물질이나 세균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되면, 소비자들은 일단 해당 의혹을 사실로 인지하게 된다. 이때 논란의 주체가 된 기업은 "진상 규명을 하겠다"며 소비자와 대치할 것이 아니라, 즉각 사과하고 해결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원인을 파악하는 일은 후순위다. 논란이 일면 즉시 해당 제품의 제조·생산일자와 유통현황을 파악해 소비자들에게 제품 이물질이 유발할 수 있는 문제점을 알리고, 리콜(결함 보상) 서비스 제공과 회수 조치 여부를 결정해 빠르게 안내하는 등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 윤 총장의 의견이다.

이향기 한국소비자연맹 부회장도 "문제의 진상규명 시 입증 책임을 소비자에 떠넘겨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먹거리 파동에 휩싸인 기업들은 대개 논란이 일면 "제조 공정상 하자가 없어 억울하다"며 "제조 공정의 투명성을 입증해 내겠다"는 입장을 보인다. 이는 이물질을 발견한 소비자가 해당 이물질 발현 원인을 규명하는 주체가 되도록 압박하는 일과 다름 없다는 게 이 부회장의 주장이다.

이 부회장은 "기업들은 최신 제조 설비를 갖추고 해썹(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에서 인증을 받아 큐시(품질관리) 제도를 잘 운영하고 있다. 이물질이 나왔다면 억울할 수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균 검출과 이물 발견 논란은 꾸준하다. 일련의 사건들은 기업이 제조 공정 환경에 자만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고 지적했다.

류영진 식약처장이 지난 9월, HACCP 인증업체 (주)조인을 현장점검차 방문해 알가공품 제조공정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식약처)
류영진 식약처장이 지난 9월 해썹 인증업체 (주)조인을 현장점검차 방문해 알가공품 제조공정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식약처)

앞선 먹거리 사건들에서 이물을 발견한 소비자 측과 이물이 발견된 제품을 만들고 유통하는 업체 측은 합의점을 쉬이 도출하지 못했다. 이는 양편 가운데 어느 쪽이 '입증 책임'을 질 것인가에 대해 판단을 내리지 못한 까닭이다. 이와 관련 이 부회장은 '중립적인 공인 검사기관'이 설치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업과 소비자로부터 독립된 기구가 소비자로부터 이물질을 수거한 후 어디서, 어떻게 들어갔는지 규명해 발표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며 "기구를 통하면 최초 발견 이물질이 업체나 중간자의 선제적 개입이 없어 공정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혹을 사실로 만든 언론 탓"

하상도 한국식품위생안전성학회 부회장(중앙대학교 식품공학과 교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전국민적 먹거리 파동'으로 인한 폐해의 팔할은 언론의 경솔한 보도 관행에 있다고 본다. 하 부회장은 "기업의 초동대처가 미흡한 것을 지적할 것이 아니라, 언론의 성급한 보도 욕심을 비난해야 한다. 언론에게 기업의 과실 여부는 중요치 않다. 소비자가 제기한 의혹이 사실인지 확인이 안 된 상태에서 먼저 보도를 한다. '이미지'가 곧 생존 수단인 기업에게 위생 논란 보도는 치명적이다. 혹시 나중에 무죄가 입증이 돼도 그 기업은 소비자에게 '유죄'로 남는다. 때때로 일부 언론의 '아님 말고'식 보도가 기업의 꼬리표를 결정할 수도 있다"고 했다. 

사실 여부에 관계 없이 크게 확산하는 '먹거리 이물질 논란'에 있어 기업이 받을 '실적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도 지침 마련도 주문했다. 시민들은 식품 섭취의 소비자로서 알 권리가 있고 기자들은 정보를 공개할 의무가 있지만, 두 권리 사이에서 애꿎은 기업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 부회장은 "사회적으로 파장이 일 가능성이 있는 식품사건에 한해 언론사들이 정보공개 원칙에 따라 사실 확인이 된 부분만 보도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며 "사전 검증과 사실 확인이 안 된 식품사건 보도에 대한 규제가 제도권에 흡수되지 않는 한 기업들의 피해 사례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고 언급했다.

김형중 전 대구지방식약청장도 "애꿎은 기업들이 먹거리 파동으로 결딴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언론의 공정 보도를 촉구했다. 김 전 청장은 "건강과 위생 등 예민한 국민적 문제에 관해 언론은 특히 균형 있는 보도를 해야 한다. 보도 전에 식품제조업체가 진짜 실책을 범했다는 확증을 확보해야 한다"며 "소비자의 신고 가운데에는 해당 기업에 원한을 품은 전 직원, 블랙컨슈머(이익을 얻기 위해 악성민원을 고의적으로 제기하는 소비자)의 거짓 신고도 많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소비자가 제품의 이물질 혼입으로 건강상·정신상 피해를 입었을 경우, 배상을 위해 명문화된 법률로 피엘법(PL법·제조물책임법)이 있다. 제품의 결함 등으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에게 제조자가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2년 7월부터 시행됐다. 김 전 청장은 "식품에 불순물이 혼입돼 피해사실이 확인되면 피엘법에 의거해 기업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배상해야 한다. 효력이 큰 법률이기에 어차피 기업들은 보건 위해 시 제도·경제·사회적으로 압력을 받는다"며 "그렇기 때문에 건강 관련 정보에 관해서는 언론사들이 보도 속도의 완급을 잘 조절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내 위생관리 지침 만들어야"

일각에선 먹거리 이물질 논란에 휩싸인 기업들이 주위의 빈축을 받아들이고 위생 인식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현섭 전 오리온 사내이사는 "제과 등 식품에 이물질이 발견되면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또 이런 문제가 논란이 될 때마다 소비자의 불만 신고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며 "소비자의 보건 의식 수준이 오르는 것이다.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논란을 반면교사 삼아 사내 보건 관련 지침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오리온의 경우도 6년 전에는 원가 개선 등에만 크게 집중했다"면서 "하지만 오리온 제과의 이물질 검출 사례가 확산하고 비난 여론이 일자 심각성을 인지하고 품질관리에 주력했다"고 덧붙였다. 

김현섭 전 이사는 오리온에 사내이사로 취임한 후 회사 내에 위생 관련 위해요소를 막기 위한 지침을 만들었다. 그는 "제과류는 해썹 인증 의무대상이 아니었지만, 자발적으로 요청해 인증을 받았다. 독립적인 심사를 받기 위해 해외의 공인기관에서 위생 검사도 받았다"며 "이후 이물질 검출사례가 크게 줄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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