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박기태 기자] 현 시대의 최대 화두는 '공평하고 올바름'을 뜻하는 '공정'이다. 채용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블라인드 채용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은 지원자의 나이와 외모, 출신 지역, 최종학력, 자격증, 가족관계 등을 보지 않고 오직 역량과 경력으로만 채용하는 방식이다. '스펙'이 아니라 직무 능력에만 집중해 직원을 뽑는 만큼 공정성을 담보하는 방안으로 여겨진다.

블라인드 채용이 확산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채용의 불신이 가득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실제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11월1일부터 12월22일까지 지방 공공기관 489곳에 대해 특별 점검했더니 채용비리가 1488건이 드러나기도 했다. 공기업이 이 지경인데 민간기업은 더 말해서 무엇하랴.

금융권에선 채용 비리로 인해 수장들이 무더기로 교도소 담벼락 위를 걷고 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았고,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 겸 부산은행장, 박인규 전 DGB금융지주 겸 대구은행장 등은 재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몇몇 대기업엔 아예 단체협약(단협) 조항에 '정년 퇴직자나 장기 근속자의 자녀를 신규 채용때 우선 채용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채용 비리는 그동안 취업을 위해 쏟은 시간과 땀을 허사로 만든다. 상대적 박탈감과 씁쓸한 좌절감을 안긴다. 이는 타인에 대한 분노로 번져 종국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그만큼 공정경쟁을 가로막는 채용 비리를 뿌리 뽑아야 한다.  

그렇다면 블라인드 채용이 해법이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은 부족하다. 현 상태의 블라인드는 오히려 친인척 채용 등 비리를 부추기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가족관계 등을 보지 못하기에 친인척 등을 사전에 걸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윤호상 인사PR연구소장은 "서류와 면접을 블라인드 형태로 진행되다 보니, 오히려 공정성이 배제돼 비리가 빈발한다"고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선류전형 불합격자에게 탈락의 객관적인 근거를 내놓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량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정성적 요소로 지원자의 역량을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웬만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서류전형을 통과시키다 보니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을 치르는 지원자가 늘어난다. 그만큼 기업 입장에선 장소 대여 등에 따른 비용이 가중되고, 아주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비효율적이라는 얘기다.

"공정한 채용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는 사회적 불신이 해소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한국교육진흥원 한 관계자의 말이다. 우리 정부가 채용 비리 근절에 두팔을 걷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 블라인드 채용은 '눈 가리고 아웅' 식에 불과하다. 공정성을 담보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스펙만 가려 보지 않는다고 공정성이 담보되진 않는다. 또 다른 사회적 불신을 야기하지 않도록 점 더 촘촘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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