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블라인드 채용의 공공부문 도입이 본격화하면서 민간부문 확장 적용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를 계기로 민간기업에서도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도입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정부가 이를 위해 추진한 활동은 전무하다. 또 학계 전문가들은 민간기업의 구조상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전면 채택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어, 제도의 실효성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잡음을 걷어내려면 정부가 구조화면접과 교육 지원 등에 관한 세부 방침을 확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지난해 7월 5일 정부는 '평등한 기회·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발표하며 모든 공공기관에 한해 블라인드 채용 도입을 의무화했다. 공공기관은 지난 2015년부터 국가직무능력표준 기반의 채용 지침에 따라 전형 과정에서 차별의 소지가 있는 항목들은 모두 가리도록 권고받은 바 있다. 하지만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전면 실시 방침으로 학력과 사진 부착 등의 항목 누락이 의무화된 것이다.

블라인드 채용이란, 사용자가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의 외모와 학력, 가족관계, 신체조건 등 업무와 무관한 정보를 수집하지 못하도록 한 채용방식이다. 그대신 직무 수행이 요구하는 지식과 실력 평가에 집중한다.

정부, 민간부문 확산 노력한다지만...

정부는 블라인드 채용의 공공부문 적용 의무화를 공시한 작년 7월부터 '민간부문으로의 확대'도 함께 언급했다. 당시 정부가 배포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에는 민간기업 도입을 위한 계획이 뭉뚱그려 서술돼 있다. 관계부처는 민간 확산을 위해 현장과 전문가의견을 반영한 블라인드 채용 가이드북을 마련한다고 적시했지만, 1년 4개월이 지나도록 민간기업 블라인드 채용 가이드북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또 직무 분석을 통해 면접 도구 개발을 지원하는 컨설팅과 인사담당자 교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민간기업 도입에 대한 정부차원의 지원은 활발하지 않다.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

정부의 방침이 뚜렷하지 않은 탓에 민간부문의 경우 일부 기업들이 '블라인드'의 의미를 살려 기업 상황에 맞게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혹은 정부 방침 이전부터 자체적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한 기업들도 더러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달 17일 대기업의 블라인드 채용 현황을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주요 대기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활용하고 있었다. 

일부 직무에 한해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도입하는 기업이 가장 많았다. 한샘의 경우 영업직에 한해 '홈 리더 전형'으로 신입사원을 공개채용했는데, 지원자는 사진, 나이, 출신학교, 어학점수 등을 기재할 수 없게 돼 있다. 한샘은 영업직 지원자의 업무에 대한 관심과 직무 적합성, 열정 등만 평가한다고 명시했다. 종근당 또한 제약영업 신입사원 지원자에 한해,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해 왔다. 

신입사원 가운데 일정 인원에 한해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차용하는 기업들도 있다. SK그룹의 계열사인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주) C&C의 경우 지난 2013년부터 'SK 바이킹 챌린지' 전형을 들여, 최소한의 개인정보와 이야기 중심의 자기소개서만을 받았다. 서류 합격자는 심사위원 앞에서 10분 동안 자유 형식의 발표를 하며 역량을 보여준다. 최종 선발된 지원자는 2개월 동안 인턴 기간을 거친 후 역량 평가를 통해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게 된다.

대기업들이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블라인드 채용' 가운데 대부분은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 추진 방안 발표 이전부터 존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들의 특수 채용 방식을 블라인드 채용의 범주에 넣을 것인가에 대한 찬반이 일고 있다. 

정조원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창출팀 팀장은 "정부가 의도한 이른바 '스펙 타파' 채용을 미리 실시한 대기업들이 일부 있다. 이들의 방식도 블라인드 채용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반면 윤호상 인사PR연구소장은 SK와 롯데, KT 등의 경우 기존에 기업 차원에서 제한적으로 특수 채용 방식을 진행해 왔다. 정부의 발표 이전부터 기업들이 나름대로 이야기 중심의 채용 노력을 기울였던 것인데, 이는 현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의 성과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일부 대기업이 자체적으로 정량적 지표를 가리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이러한 움직임을 '민간기업이 블라인드 채용에 나서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비약이라는 것이 윤호상 소장의 의견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공공기관에서도 블라인드 채용으로 인해 '묻지마 채용'이 성행하고 있었다. 윤호상 인사PR연구소장은 "서류와 면접이 블라인드 형태로 진행되다 보니, 공정성이 배제돼 비리가 빈발한다"고 말했다. 지원자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부여하고 실력만으로 채용하자는 블라인드 채용이 오히려 친인척 채용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기관 특성상 공정성이 강조되는 공공부문의 채용 과정에서 면접관의 전문성 부재 문제도 부각된다. 현재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채용을 외부 헤드헌팅 업체에 맡기고 있다. 약 일주일의 시간을 면접에 할애할 수 있는 전문가를 면접관으로 섭외하기 때문에, 면접관의 전문성 파악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의 한계

또 면접관이 외부 인원으로만 충원되면 공정성은 담보하지만 조직적합성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윤 소장은 "전문성이 보장되지 않은 외부 면접관들의 경우, 인재가 조직에 적합한지 판단하는 자체적 기준 또한 모호할 가능성이 높다. 신입직원을 평가하는데 가장 중요한 판단 요소인 학력과 경력도 가려지기 때문에, 이들이 기업의 인재상과 부합하게 지원자를 가려낼지도 의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내부와 외부 면접관이 혼성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공공기관은 이익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보신주의'를 택해, 직원들의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공정성과 효율성을 중시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블라인드 서류전형'의 문제점은 불합격자에게 탈락의 객관적인 근거를 내놓지 못한다는 데 있다. 정량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정성적 요소로 지원자의 역량을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가기준이 모호해지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블라인드 채용을 채택하는 기업은 서류전형을 간소화하게 된다. 궁극에 기업들은 필기시험과 면접전형에서 지원자를 걸러낼 수밖에 없다.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게 되면 웬만한 결격사유가 있지 않는 한 서류전형의 모든 지원자를 통과시킨다. 각 공공기관마다 전형일정이 겹치는 경우가 많아, 지원자들은 필기시험을 볼 기관을 선택해야 한다. 민간기업 입장에서는 필기시험을 두고, 실력 유무를 가릴 뿐만 아니라 전체 인원 수도 감축해 주는 단계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정조원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창출팀 팀장은 "큰 기업의 경우 필기시험장에 많은 지원자들이 모인다. 이는 기업에서 부담하는 장소 대여 비용, 평가인단 비용 등의 증가를 뜻한다. 기업의 성격과 재무상황에 맞게 제한적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하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박정식 미래전략정책연구원장은 민간기업의 부분적 블라인드 채용 혹은 기존 방식의 채용을 비난할 여지는 없다고 주장했다. 박 원장은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은 '이윤추구 여부'에서 크게 갈린다. 민간기업에게 수준 높고 역량 있는 인력을 채용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는 좋으나, 기업의 생존 문제와 직결된 인력채용과 관련해서는 기업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기는 것이 가장 좋다"고 밝혔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블라인드 채용, 민간 확산 어려운 이유

블라인드 채용을 보완해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서 널리 통용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가 구체적인 방침을 제시해야 한다. 블라인드 채용의 모호한 기준과 지원책 때문에, 서류전형과 필기전형, 면접에 이르기까지 기업들은 각기 다른 해석을 전형과정에 적용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5년 공공기관에 NCS(국가직무능력표준) 기반 능력중심채용제도를 도입했다. NCS를 기반으로 직무를 분석해 직무기술서를 공개하고, 인재채용 시 직무관련 필기시험과 구조화된 면접을 실시하도록 장려했다. 구조화 면접이란, 지원자에게 현상에 대한 개인의 생각이나 의견을 묻고, 이에 대한 질문이 꼬리의 꼬리를 무는 형태로 이어지는 것을 일컫는다. '정해진 답'이 없고 지원자의 '논리와 분별력'을 판별할 수 있기 때문에, 압박면접의 대체재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동시에 추진하는 '구조화면접'과 '블라인드 채용'간의 관계에는 역설이 있다. 양편은 상존하기 어렵다.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채택하는 기업들의 경우, 주로 필기시험에서 면접 대상자를 정하고 구조화면접을 치른다. 하지만 지원자를 거를 기회가 필기시험뿐이어서 면접에도 비교적 많은 수의 지원자가 합류하게 된다. 기업들은 여건상 다대다(多對多) 면접방식을 취하는데, 이는 여러 면접관과 피면접자 한 명이 대면하는 상황에서 구조화면접을 이행하려면 아주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정부의 권고대로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해 구조화면접을 보려면, 대규모 지원자들이 몰려 드는 대기업의 경우 면접만 한 달을 넘기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에 대해 윤호상 인사PR연구소장은 "구조화면접의 전제는 다대일(多對一) 면접방식이다. 민간기업 입장에서 블라인드 채용과 구조화면접을 동시에 취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효율적인 방식은 아니다"고 말했다. 윤 소장은 이어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을 전면 도입하고자 하는 민간기업의 경우, 구조화면접은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 잠재 역량과 돌발행동이 유연한 지원자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구조화면접이 해답이다. 인력채용이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관문인 만큼, 시간과 비용을 들이더라도 다대일 심층 구조화면접을 취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