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고정훈 기자]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문재인 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강조한 가치다. 여기에는 지난 정권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담겨있다. 그 산물 중 하나가 블라인드 채용이다. 문 정부는 지난해 7월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발표한 이후 연착륙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다. 취지가 좋은 만큼 현재 공기업뿐 아니라 민간기업에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분명 온도차가 있다.

블라인드 채용은 가려졌다는 뜻의 블라인드(blind)와 채용이 합쳐진 단어다. 지원자의 나이와 외모, 출신 지역, 최종학력, 가족관계 등을 보지 않고 오직 역량과 경력 등으로만 채용하는 방식이다. 원래 블라인드 채용은 1990년대 일부 기업에서만 실시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2015년 정부가 관련 내용을 공기업에 권고하면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블라인드 채용의 장점은 분명하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한국교육진흥원 관계자는 "공정한 채용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는 사회적 불신이 해소되는 계기를 마련한다"며 "사회적 신뢰도가 회복하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장점이다. 오로지 지원자의 직무 능력에만 집중해 채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보다 우수한 인재를 뽑을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올해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한 두산그룹 관계자는 "만족한다"며 "내년에도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도입한 민간기업들이 속속 늘고 있다. 지난 15일 한국경제연구원은 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 중 설문조사에 응답한 182개사 가운데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기업이 63개사라고 발표했다. 이중 모든 채용과정을 블라인드 채용으로 뽑는 기업은 23곳이었다. 나머지 40개사는 서류전형과 실무면접 등에 부분적으로만 도입했다.

청년일자리 대책에 대해 발표하는 문재인 대통령(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청년일자리 대책에 대해 발표하는 문재인 대통령(사진=청와대 홈페이지)

블라인드 채용은 사회에 가득했던 채용비리 불만에 대한 대책으로 보인다. 그동안 채용비리는 공기업과 민간기업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지난 1월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방 공공기관 내 채용비리는 1488건에 달했다. 사기업도 마찬가지다. 고위직의 부정 취업청탁 사건은 늘 되풀이 되곤 했다. 어떤 부모를 만나는지가 취업의 성공을 가르는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런 처지를 비관해 자신을 '흙수저, 은수저' 등으로 희화화하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여기에 과도한 경쟁사회도 한 몫 했다. 우리나라는 입시와 취업 등 다른나라보다 더 심한 경쟁에 놓여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타인과의 차별화를 위해 '스펙'을 쌓는 일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한편에선 이런 과도한 경쟁이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그러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타인과 달라야만 살수 있는 사회에서 내려놓으라는 말은 포기하라는 말과 같았다. 블라인드 채용은 이런 '흙수저'들에게 이제는 좀 내려놔도 괜찮다는 위로를 전한 셈이다.

아직까지는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다. 한 온라인 조사에 따르면 남녀 2400명중 절반이 넘는 62.2%가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객관적으로 직무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점과 이제는 경쟁사회에서 벗어나 능력사회를 바라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부작용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도 많다. 앞서 조사에서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은 20.8%에 달했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17.0%다. 부정적인 이유로는 노력한 입사지원자들의 역차별 때문이라고 했다. 공정을 위한 대책이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는 차별로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작년 행정안전부가 배포한 블라인드 채용가이드북(사진=행정안전부 홈페이지)
작년 행정안전부가 배포한 블라인드 채용가이드북(사진=행정안전부 홈페이지)

블라인드 채용의 평가기준이 모호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채용담당자들도 마찬가지다. 도입 시기가 짧아 지원자의 능력을 판단할 객관적인 체계가 잡히지 않아서다. 한 채용담당자는 “학력이나 자격은 그 사람이 업무에 대한 어떤 태도나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하는 최소한의 잣대인데, 이제 어떤 점을 근거로 채용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96개 공공 기관 채용자를 분석한 결과, 하반기 대졸 입사자 7101명 중 비수도권 출신은 3947명(55.6%)이었다. 도입 이전인 같은 해 상반기 5594명 중 3226명(57.7%)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 여성 입사자도 상반기 44.9%에서 하반기 42.4%로 감소했다. 반면 수도권 대학 출신은 2272명에서 3062명으로 늘었다.

원인으로는 수도권과 지방 간 취업 준비 환경이 다른 점이 지적됐다. 현재 국내 주요기업은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기업에서 관련 행사를 해도 지방에 사는 사람은 참석하기 어렵다. 블라인드 채용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대외활동과 국가직무시험(NCS)도 문제다. 지방에서는 전공 관련 공모전이 자주 열리지 않는다. 현재 지방 거주자들은 대외활동을 쌓기 위해 비싼 기차값을 내고 서울로 오는 경우가 많다. 또한 NCS(국가직무능력표준)는 관련 학원이 수도권에 우후죽순 생기면서 또 하나의 입시시험으로 변질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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