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고정훈 기자] 날씨에 따라 선호하는 술은 달라진다. 우리나라에는 여름엔 맥주, 겨울에는 막걸리라는 공식이 붙어있다. 날씨가 더우면 맥주가, 추워지면 막걸리의 소비량이 늘어난다. 이런 기호와 달리 자신이 먹는 술이 어떤 종류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모두 애매한 주세법 때문이다. 이런 주세법으로 인해 막걸리가 전통주가 아니고, 맥주가 맥주가 아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막걸리는 전통주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동안 막걸리가 우리 생활에서 친숙하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걸리는 엄밀히 말해 전통주가 아니다. 주류법상 탁주에 해당한다.

전통주는 주류 무형문화재 또는 식품 명인이 제조하거나 농업경영체와 생산자단체가 생산한 술만 전통주로 인정한다. 막걸리 제조에 들어가는 쌀의 출처도 중요하다. '주류제조장 소재지 관할 지역 농산물을 주원료'로 사용해야 전통주로 인정받는다. 당연히 외국산 쌀을 사용하면 전통주로 인정받기 어렵다.

기타주류에 포함된 국순당 '바나나에 반하나'.(사진=국순당)
기타주류에 포함된 국순당 '바나나에 반하나'.(사진=국순당)

막걸리가 어떤 출신인지 중요한 이유는 두 주류의 대우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정부는 전통주 활성화를 위해 온라인 판매를 허락했다. 탁주인 막걸리는 온라인 판매를 할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통주는 종류에 따라 증류주와 과실주 등으로 나뉜다. 그러나 막걸리는 다른 첨가물이 들어가면 기타주류로 분류된다. 이 경우 막걸리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 세금도 탁주 5%에서 기타주류 30%로 변경된다. 지난 2016년에 일명 과일향 나는 막걸리가 인기를 끌었음에도 업체들이 웃지 못했던 이유다.

주류에 따라 취급점도 달라진다. 현재 탁주는 특정주류도매업자가, 기타주류는 종합주류도매상이 취급하고 있다. 막걸리는 다른 주류와 달리 여름에 상하지 않게 냉동차가 필요하다. 종합주류도매상은 맥주나 소주에 비해 판매량이 적은 막걸리를 판매하기 위해 따로 냉동차를 사야한다. 상대적으로 영세한 특정주류도매업자는 판매를 빼앗기게 된다.

업계관계자는 "주류에 따라 취급점이 바뀌면 양쪽 모두 막걸리 판매를 꺼려하게 된다"며 "이러한 요소가 막걸리 시장의 성장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맥주 업계의 사정은 좀 다르다. 주세법으로 울고 다른 한편으로는 웃기도 한다. 웃는 업체로는 필라이트를 판매하는 하이트진로가 있다. 필라이트는 지난해 8월 5000만 캔, 약 3개월 후에는 1억 캔을 돌파하더니 현재는 누적 판매량이 3억 캔이나 된다. 하이트진로의 최근 3년간 적자를 한방에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필라이트는 맥주가 아닌 발포주, 즉 기타주류에 해당된다. 발포주란 맥주에 들어가는 맥아 함량을 70%에서 10%미만으로 낮춘 주류를 말한다. 이로 인해 주세는 맥주 72%에서 기타주류 30%로 줄어든다. 발포주는 맥주와 알코올 도수에서 큰 차이가 없다. 탄산이 강하긴 하지만 맛도 비슷하다. 소비자들은 "값 싼 맥주"라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시장에 첫 선을 보인 하이트진로를 제외한 나머지 맥주업체들은 우는 얼굴이다. 국내맥주 시장 점유율이 작년 이마트 판매 기준 절반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오비맥주와 롯데주류도 발포주 출시를 고민하고 있다. 특히 오비맥주는 발포주를 생산할 여건이 충분해 시기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발포주 시장이 생겨난 이유로는 세금에 영향이 크다. 현재 국내 맥주는 제조원가에 이윤·판매관리비가 합쳐진 출고가를 과세 기준으로 삼는다. 몇 년적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한 수입맥주는 세를 포함한 수입신고가격이 과세 표준이다. 이는 수입맥주가 수입신고가격만 낮추면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공정한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애매한 주세법 적용은 소주도 마찬가지다. 다른 첨가물이 들어간 소주는 증류주가 아닌 리큐르에 해당된다. 업계관계자는 "술은 특성상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첨가물이 아니라 제품의 원료에 따라 세금의 비율을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에도 개편은 미비할 예정이다. 지난 7월 기획재정부(기재부)는 당초 계획했던 주세법 개정 논의를 2020년으로 연기했다. 주세법이 연기된 이유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현재 심도 있게 논의 중이며, 시장과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바꿔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이트진로 필라이트(사진=하이트진로 홈페이지)
하이트진로 필라이트(사진=하이트진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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