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우리나라 공공기관 다수가 최소한의 장애인 의무고용률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더해 일부 공공기관은 고용률 미달에도 불구하고 100명 미만의 중·소규모 기업이라는 이유로 미준수 부담금도 납부하지 않았다. 공공기관이 장애인 의무고용제도의 허점을 간파해 법망을 피하고 있는 가운데,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코트라 등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 27곳, 장애인 의무고용률 미달 

공공기관은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장애인고용법)'에 의거해 장애인을 상시노동자의 최소 3.2% 수준으로 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어기구 의원이 발표한 '2017년 장애인 의무고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산하 58개 공공기관 가운데 27곳이 장애인고용법을 어겼다.

더욱이 대한무역진흥공사(코트라, KOTRA)와 한국전력공사(한전) 등 대형 기관을 포함한 대부분의 공공기관들은 채용 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따로 평가하지 않고 통합해서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장애인들이 채용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로서 받은 수혜는 단계별 가산점 몇 점 뿐이었다. 

장애인 의무고용률 (자료=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장애인 의무고용률 (자료=한국장애인고용공단)

작년에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달성하지 못한 공공기관은 코트라, 강원랜드, 한전, 석유공사, 한전KDN 등이다. 특히 산업부 산하 한국로봇산업진흥원과 중기부 산하 한국벤처투자는 장애인 고용률이 0%로, 1년 동안 장애인을 단 한 명도 고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대해 한국로봇산업진흥원 관계자는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특별한 사유는 없다. 장애인 지원자가 드물었다"며 "채용 과정에 있어 장애인들에게 전형 단계별로 가점을 부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국벤처투자 관계자는 "장애인 지원자가 더러 있었다"면서도 "장애인 지원자의 경우 가점 부여를 했지만, 평가 과정에서 보다 역량이 뛰어난 타지원자가 있어 장애인 지원자를 채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장애인 의무고용률 미준수에 따른 부담금을 부과 받았냐는 질문에 대해선 "우리는 기관 규모가 작은 편이라 채용 규모도 크지 않다. 그래서 부담금 대상기관이 아니다"고 밝혔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공시한 장애인 의무고용제도에 따르면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등의 사업주가 장애인을 일정 비율 이상 고용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부담금을 부과 받는다. 하지만 부담금 납부의 경우, 상시노동자 100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만 해당 사항이다. 즉 상시노동자가 적고 채용규모가 작은 공공기관은 사실상 장애인 고용을 권장만 받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지난해 장애인 고용률 0%인 한국벤처투자,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이미지=디지털투데이)
지난해 장애인 고용률 0%인 한국벤처투자와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이미지=디지털투데이)

미준수 부담금도 납부 안해

한국벤처투자와 한국로봇산업진흥원 모두 채용 과정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통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작년에 장애인 고용률로 2.4%를 기록하며 기준 비율에는 미달한 코트라 역시 채용 시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에 경계를 두지 않는다. 코트라 인사과 담당자는 "일반채용 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함께 채용하고 있다"며 "단, 장애인은 지원 조건을 완화하거나 단계별로 가점을 부여하는 혜택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대부분 공공기관에서는 장애인 특별 채용 제도를 두지 않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통합 채용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장애인 채용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 공공기관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통합 채용을 진행하는 것은 최선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춘 남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대학에서도 채용시 일반대상자전형와 특수교육대상자전형을 나눠 뽑는다. 공공기관도 채용 모집 인원을 편성할 때 장애인 전형과 비장애인 전형으로 나눠, 장애인은 장애인들끼리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공공기관이 매해 정기적으로 장애인 일정 비율을 채용하도록 특수전형 제도를 정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공공기관 책임성과 미준수에 따른 재제 강화해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장애인 의무고용률 미준수 부담금은 '자진신고·자진납부' 방식으로 이뤄진다. 공공기관이므로 이같은 방식에 응당 응할 수밖에 없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관계자는 "미준수 부담금은 월별로 매겨지는데, 통상 의무고용률이 기준비율에 크게 미달할 경우 해당 기관은 그에 따른 책임으로 부담금을 납부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영춘 교수는 의무고용률을 준수하지 않은 공공기관에 부담금만 지우는 제재에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공공기관이든 민간기업이든 장애인들의 고용보장을 위해 의무고용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사기업에서는 의무 고용을 외면하고 부담금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이윤 추구가 주 목적인 사기업은 차치하더라도 사회적 요구에 대한 공적 책임감을 다할 의무가 있는 공공기관이 장애인 고용을 회피하는 실정이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이어 "공공기관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준수하지 못 했을 경우, 국가 예산을 차등 지원 하는 등 제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장애인식개선 관련 시행령 (출처=국가법령정보센터 장애인고용법 일부개정안)
장애인식개선 관련 시행령 (출처=국가법령정보센터 장애인고용법 일부개정안)

익명을 요구한 한 장애인 인권 부문 교육자는 사업주의 장애인식 개선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작년 말부터 장애인식개선교육이 의무화됐다. 교육자 입장에서 볼 때, 아직까지도 직장 내 사업주와 노동자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고용자부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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