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작년 5월 장미대선으로 새로운 노동친화 정부가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결코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겠다"고 강조해 왔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주 52시간 상한제 등 다양한 노동정책을 펼쳤다. 이로써 회사의 갑질과 수직적 구조, 부조리한 제도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이런 목소리가 집단을 이루자 노동조합(이하 노조) 설립이 실현됐다.
선진 노동정책을 가름하는 기준은 노조 조직률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전년비 0.1%p 증가한 10.3%다. 10.3%의 조직률로는 노동운동의 대표성을 담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최근 각 산업군의 선두에 선 기업의 임원들이 노조를 결성해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의 움직임이 여타 기업들의 노조 결성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삼성그룹의 대표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첫 노조가 설립됐다. 회사 창립 이래 49년 만이다. 지난 2월 삼성전자 사무직 종사자 2명이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안양지청에 노조 설립을 신고하고 인가받았다. 제도적으로 노조 구성이 가능한 최소 인원이 2명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노조 설립 통보서를 등기로 받았다.
국내 최대 검색업체 네이버에도 1999년 창사 이후 첫 노조가 만들어졌다. 지난 4월 2일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네이버지회가 노조 설립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네이버 노조는 선언문에서 "회사가 성장하면서 초기 수평적 조직 문화는 수직 관료적으로 변했고 정보기술 산업의 핵심인 활발한 소통문화는 사라졌다"며 "포괄임금제와 책임근무제라는 명목으로 우리의 정당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네이버는 변화가 필요하며, 그 변화는 우리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게임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업계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넥슨도 노조를 결성했다. 넥슨의 첫 노조인 동시에 게임업계 제1호 노조다.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넥슨지회는 지난달 3일 넥슨노조 설립 선언문을 발표하며 공식 출범했다. 이로써 게임 개발 마감을 앞두고 연장 근무와 고강도 노동을 지속하는 게임업계 악습 '크런치 모드'가 개선될 여지가 생겼다. 노동자의 집중을 과용하도록 강요하지 않고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넥슨지회는 공짜 야근과 주말 출근, 빈번한 장시간 노동 등을 야기하는 '포괄임금제'의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노조 황무지였던 게임업계에 넥슨지회가 첫 노조 설립 깃발을 꽂으면서, 열악한 작업환경과 처우에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국내 1위 철강업체 포스코에도 노조가 설립됐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포스코지회가 지난달 17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출범을 공식화했다. 앞서 1988년만 해도 포스코에는 노조원 1만 8000명을 둔 한노총 계열 기업노조가 있었지만, 이후 1991년 노조 간부의 금품수수 비리 등 회사의 방해 조작으로 회원이 대거 탈퇴해 현재 조합원 수는 9명뿐이다. 사실상 무노조 기업이라는 평판을 얻어온 포스코가 이번 새노조 탄생으로 사내 불합리한 억압을 완화하고 건강한 직장문화를 만들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교계(敎界)에도 노조 바람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 불교 최대 종파인 대한불교조계종(이하 조계종)에 종단 최초 종무원 중심의 노조가 결성된 것이다. 민주노총 전국민주연합노조 산하 조계종지부는 지난달 20일 민주노총 회의실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조계종지부는 "종단의 안정과 쇄신이라는 말이 모든 중도를 인질처럼 붙잡았고, 우리의 병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했고, 용기 있게 드러내지 못하게 했으며, 결국 고통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깊은 병을 우리에게 안겨 줬다. 조계종은 무엇을 자성하고 쇄신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종단 쇄신을 말했다"고 말했다. 조계종지부는 이어 "사찰과 중도를 위해 소신 있게 종무를 행하는 중심축이 될 것"이라고 노조 결성 배경을 언급했다.
보안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안랩에도 첫 노조가 생겼다. 1995년 창사 후 23년 만이다. 안랩 노조는 지난 1일 한국노총에 가입 신청을 했다. 지난달 14일 안랩은 사내 보안서비스사업부를 물적분할키로 결정했다고 직원들에 통보한 바 있다. 사업부가 분사되면 안랩 전 직원 가운데 36%가 별도 법인인 자회사 소속으로 바뀐다. 직원들은 예민한 사업부 분사 결정 과정에서 회사가 직원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며 반기를 들었다. 이번 사건이 안랩 내 노조 결성의 배경이 됐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노조 결성 일주일만인 지난 8일, 권치중 안랩 대표는 임직원들에 메일을 보내 사업부 분사 조치 철회 결정을 알렸다. 권 대표는 "수많은 의견 수렴 과정을 토대로 서비스사업부 구성원 상당수가 이번 분할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이사회에 해당 안건을 긴급 상정하고 이번 분할조치 철회를 결정했다"고 했다. 이는 심화한 노사갈등과 직원 반발을 의식한 조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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