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투데이 신민경 기자] 지난 18일부터 평양에서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된 가운데 한반도를 대표하는 기업 총수들이 일제히 방북했다. 4대 그룹(삼성, LG, SK, 현대) 총수들이 방북함에 따라 경제계와 학계 전문가들은 경제협력(경협) 성과를 두고 정 반대의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번 회담을 위해 대통령 특별 수행원으로서 북한을 찾은 경제인은 총 17명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리룡남 내각부총리와의 면담을 진행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9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 정상화를 언급하며 경협 증대에 합의했다. 그간 미국 행정부는 우리 정부에 대북 정책의 속도조절을 주문해 왔으며 북미관계는 지난 6월 정상회담 이후로 교착 상태에 놓여 있다. 북한의 비핵화 달성까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가 지속되는 현 상황에서 이번 '9월 평양공동선언' 단행은 남북 양측이 경제협력과 산업 교류를 본격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19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정상회담과 평양공동선언을 서명한 뒤 가진 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디지털투데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19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정상회담과 평양공동선언을 서명한 뒤 가진 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에 대해 경제계는 이번 재계 총수들의 방북이 남북 경협의 쏘시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부산상공회의소 산업정책팀 본부장은 "북한이 비핵화를 통해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면서 "이번에 우리 측에서 4대 그룹 총수들 비롯해서 주요 간사들이 대거 방북한 것은 곧 우리나라가 북한의 청사진에 응답했음을 방증한다. 북한도 남한의 의지를 확인한 셈이니, 북한의 비핵화가 실현만 된다면 북한 경제발전을 비롯해 남북 경협도 활발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 역시 19일 논평을 통해 "이번 9월 평양공동선언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하고 이로써 남북경협을 위한 논의를 한 것에 의의가 있다. 향후 북미대화를 통해 실질적 진전들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경제계는 경협의 조건이 조기에 성숙되기를 기대하며 상응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고 했다.

반면 학계에서는 이번 방북으로 남북 경협 성과를 속단할 수는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북한 비핵화의 현상 유지를 깨지도 못한 상황에서 남북관계 진전에만 속도를 낸다면 대북제재의 본래 취지를 훼손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박휘락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장은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비롯한 대기업 총수들의 방북을 두고 갖은 우려를 나타냈다. 박 교수는 "UN 안보리 제재가 있는 한 북한 경제에 도움이 될 만한 추진은 어려울 것 같다. 수개월 전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북한의 저의를 알아챘다. 당시 북한의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선언이 사실상 핵무기 완성에 따른 행보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 (사진=삼성)
이재용 삼성 부회장 (사진=삼성)

실제로 지난 4월 20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가 열린 당시 전원회의 결정문을 보면 '핵·경제 병진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과정에서 각종 핵실험과 사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해 핵무기 병기화를 확실하게 실현했다. 핵실험 중지는 세계적인 핵군축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고 명시돼 있다. 이어 결정문에서 북한은 '핵·경제 병진정책 내용 가운데 핵무기는 완성됐으니 경제를 발전시키겠다. 이제 우리는 경제건설에 총력을 기울이는 게 당의 전략적노선이다'고 선언한 바 있다.

박 교수는 "이번 경제인 방북 초청 역시 만일 북한측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면, 북한의 지향성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비핵화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진단했다. 그에 따르면 이번 오너들의 방북으로 인해 한국 경제에 전반적인 위기가 초래될 수도 있다. 박 교수는 "삼성, SK, LG, 현대 등은 전 세계적인 대기업이다. 각 사가 미국에서도 왕성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만큼 UN 경제제재를 무시하고 북한에 투자하기란 쉽지 않다. 북한에 지원한다는 것은 곧 미국 활동 중단을 의미하기도 한다"면서 "이번 총수들의 방북 자체만으로도 미국 내 우리나라 기업 이미지가 하락하거나 주식이 떨어지는 등의 경제리스크를 겪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심상렬 광운대 동북아통상학부 교수 역시 정부가 수순을 고려하지 않고 성급히 수행원에 재계를 포함시킨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가의 정치적인 목적에 경제적인 수단이 희생됐다고 주장했다. 심 교수는 "현재 북미협상이 순조롭지도 않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비핵화를 확답하지도 않았다. 모든 일에는 수순이 있는 법이다. 정치적인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환경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은 북한에 대기업 총수들을 데려갔다는 것이 의아하다. 투자와 경협의 전제는 '안정된 정치 분위기'다. 그러나 대내외 정치가 불안정한 상태에 재계를 대거 투입됐다"며 "정치 성공을 위해 총수들을 희생시키는 것은 국가 경제 전반에 있어 굉장히 위험한 선택이다"고 했다. 

심 교수는 "우리나라와 북한의 기업 환경도 완전히 다르다. 한국의 경우 이윤 중심의 수익구조에서 합리적 의사결정이 중시되고, 주주 개념이 강해 기업은 주주들의 눈치도 적당히 본다. 반면 북한은 당의 명령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전부다. 상반된 두 국가가 경협의 초석을 다지기에, 어느 모로 보나 이번 방북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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